

① 중국은 미국 등으로 향하는 희토류와 관련 원자재 수출을 제한한다는 대응책을 꺼냈다. 그러나 중국이 자체적인 반도체 설계와 제조 장비 개발 역량을 가속하는 게 미국에 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 있다. 만일 중국이 수출제한을 받지 않을 경우보다 더 빠른속도로 반도체 격차를 줄일 수 있다면, 미국의 수출제한 조치는 효과가 없거나 오히려 역효과를 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중국의 반도체 개발 노력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프랑스의 1960년대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프랑스 정치·경제계는 미국이 경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고 봤다. 언론인 겸 정치인인 장자크 세르방 슈레베르(Jean-Jacques Servan-Schreiber)는 프랑스가 미국의 ‘경제적 속국’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고, 미국 다국적기업의 유럽 시장 침투를 우려했다. 그는 1964년 미국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이 프랑스 컴퓨터 기업 CMB(Compagnie des Machines Bull·이하 불)를 인수한 사례를 꼽았다. 당시 샤를 드골(Charles de Gaulle) 프랑스 대통령은 미국 주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에 반발, 통합 사령부 휘하에 프랑스군을 두길 거부했다. 이어 프랑스는 나토 통합군 지휘 체제에서 탈퇴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1964년 프랑스 원자력청(CEA)에 대한 IBM과 컨트롤데이터코퍼레이션(CDC)의 첨단 컴퓨터 수출을 차단하게 된 배경이 됐다.
두 회사의 대형 메인 프레임 컴퓨터는 미국과 당시 소련만 갖고 있던 ② 수소폭탄 개발을 위한 계산에 필수로 사용되는 것이었다. 만일 프랑스가 이 컴퓨터를 활용해 수소폭탄 같은 열핵 폭탄(熱核 爆彈)을 가질 수 있다면, 미국의 이해관계에 반하는 독자 국방 체계를 추진할 수 있었을 것이고, IBM과 CDC 제품 역설계(Reverse Engineering)로 프랑스의 상업용 컴퓨터 기술력을 높여 GE의 불 인수에 대한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을 것이다.
프랑스 정부는 (미국의 대형 컴퓨터 수출제한에 대응해) 1966년 플랑 칼큘(Plan Cal-cul)이라는 국가 컴퓨터 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하고, 첫 5년간 프랑스 컴퓨터 산업에 1억프랑(현재 약 15억유로의 가치)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1억프랑 중 절반인 5000만프랑을 연구개발(R&D) 보조금 형태로 기업에 직접 지원했고, 나머지 절반에 대해서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저금리 대출과 보증을 제공했다. 또 두 개의 프랑스 기업을 합쳐 CII (Compagnie Internationale pour l’Informa-tique)라는 국가 주도 정보기술(IT) 기업을 탄생시켰다. 해당 정책은 드골 대통령이 직접 추진했다. 그는 세계적인 군사·경제력을 동시에 갖추는 것이 프랑스의 위상을 유지하는 데 필수라고 봤다. 여기에 오늘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의 기술 패권을 강화하려는 모습과 유사한 부분이 많다.
하지만 플랑 칼큘은 궁극적으로 프랑스를 컴퓨터 강국으로 만들지 못했다. 프랑스 관료는 기업과 협력하기보다 CII를 지나치게 통제해 경영·투자·감독·소비자 역할을 모두 맡았다. 경쟁이 치열한 상업 시장 대신 관급 계약에 의존하도록 했고, 결국 기업 경쟁력이 악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또 프랑스 정부는 프랑스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팅 기술을 가졌다고 평가받았던 불을 플랑 칼큘 전략에서 뺐다. 불이 미국 기업인 GE에 인수된 탓이다. 결과적으로 국가 안보와 경제 목표가 충돌하면서 프랑스 정부의 정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다면 플랑 칼큘이 실패한 것이 미국의 수출 통제가 먹혔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다. IBM 같은 기업은 사업 손실을 막기 위해 미국 정부 방침에 적극적으로 반발했고, 일부 수출 허가를 얻어내기도 했다. 또 미국 내 IBM 공장에서 프랑스 지사로 기술 정보를 계속 흘려보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도 프랑스 연구진이 기술 정보에 접근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다. 프랑스는 최신 컴퓨터를 직접 구매할 수는 없었지만, 살짝 이전 모델을 대체재로 활용할 수 있었다.
미국의 수출제한은 결과적으로 프랑스의 수소폭탄 개발을 단지 몇 년 지연시킨 것에 불과했다. 프랑스는 1968년 8월 폴리네시아(프랑스령)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했다. 수출 통제도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했던 것이다.
최근 미국의 중국 반도체에 대한 수출제한은 프랑스 사례보다 효과적일 수는 있다. 그러나 딥시크 등장은 미국의 제재가 예상만큼 효과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미국의 반도체 수출제한이 원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중국의 기술 독립을 가속할 것인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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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중국은 2023년 12월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제한 조치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을 고시했다. 해당 수출 금지 및 제한 기술 목록에는 ‘희토류의 추출·정제·가공 등 기술’이 포함됐는데, 이 기술에는 희토류 추출·분리 기술, 희토류 합금 재료 생산 기술, 사마륨코발트(Sm-Co) 자성체 제조 기술, 희토류 붕산 칼슘 제조 기술 등이 들어갔다. 희토류는 전기차, 배터리 등에 사용되는 17개 희소성 광물(스칸듐, 이트륨 네오디뮴 등)을 뜻하는데 중국이 전 세계 희토류 공급망을 사실상 지배하고 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중국은 2022년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를 차지했고, 가공과 정제 규모까지 따지면 90%에 달했다. 서방국가는 지난 몇 년간 중국산 희토류 의존을 줄이기 위해 자체 생산을 확대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희토류가 상당히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이는 우크라이나에전쟁 지원 대가로 매장 희토류에 대한 접근권을 요구하고 있다.
② 수소폭탄은 핵융합을 활용한 핵무기로, 핵분열을 이용한 원자폭탄보다 더 위력이 강력하다. 프랑스는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 핵무기와 소련의 위협 속에서 자체 핵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는필요성을 느꼈고, 핵무기 개발을 목표로 1954년 프랑스 원자력연구소(CEA)를 설립했다.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1958년 핵 독립을 선언,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프랑스도 처음에는 원자폭탄을 개발했지만, 1963년부터 더 강력한 수소폭탄 개발에 들어갔다. 당시 미국과 소련이 이미 수소폭탄을 보유하고 있었던 데 따른 것이다. 이후 1968년 8월 24일 프랑스는 프랑스령 폴리네시아 무라로아에서 진행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하면서 수소폭탄의 완전한 개발을 알렸다. 프랑스는 1992년 마지막 핵실험을 끝으로 공식적인 핵실험을 진행하고 있지 않으며, 2000년대 들어 핵무기 기술현대화와 비핵화 정책에 대한 국제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