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역1939 앞의 콘트라베이스 조형물. /최갑수
음악역1939 앞의 콘트라베이스 조형물. /최갑수

봄 입구, 가평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경춘선이 지났던 가평역에는 ‘음악역1939’라는 복합 문화 공간이 들어서 있다. 옛 무궁화호 열차도 전시해 놓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1980년대 추억이 오롯이 떠오른다.

가평은 북한강이 흘러가는 곳, 그 강변에 자리 잡은 도시다. 경기도에서 내가 사는 파주와 정확히 대각선으로 반대편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몰고 퇴계원을 지나니 ‘춘천’이라는 표지판이 나온다. 서울에서 나고 자라고, 학교에 다녔던 옛 직장 동료에게서 ‘경춘선의 낭만’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서울에 대해 잘 모른다. 경남 김해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파주로 온 나는 경춘선이라는 철로가 있다는 걸 신문사에서 여행 기자를 시작하며 알게 됐다. 그 철로를 따라 청량리역에서 출발한 기차가 대성리와 강촌 등으로 MT를 떠나던 청춘을 가득 싣고 철로를 따라 달렸다는 것도 취재 여행을 다니며 알게 됐다. 지금은 볼 수 없는 통일호와 무궁화호가 느린 속도로 덜컹거렸다고 한다. 

그 옛날 무궁화호가 지나던 곳

통일호와 무궁화호는 부산에 살 때 타본 적이 있다. 동해남부선도 운행했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삼랑진을 지나 느리게 달렸다. 가평역도 경춘선 무궁화호가 지나던 역이었다고 한다. 경춘선과 함께 낭만의 상징이었던 가평역은 2010년 12월 경춘선 복선 전철이 개통되면서 문을 닫았다. 기차가 더 이상지나지 않고, 사람이 찾지 않는 텅 빈 플랫폼은 금세 잡초가 우거졌다. 가평역은 서울에서 들어오는 길목에 있는지라 사람이 유독 많았는데, 그 사람이 찾지 않으니 유독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다. 그래서일까, 가평역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나왔고 다양한 개발 방안이 쏟아졌다. 결국 가평군은 음악역1939라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자고 의견을 모았다. 1939는 가평역이 처음으로 영업을 시작한 연도다.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최갑수 시인, 여행작가, ‘우리는 사랑 아니면 여행이겠지’ ‘밤의 공항에서’ 저자
음악역1939는 공연장, 스튜디오, 영화관 등의 시설을 갖추고 다채로운 공연과 행사를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이다. 주변에 철길공원과 산책로, 야외무대, 로컬푸드 판매장, 어린이 놀이 체험 시설 등도 함께 들어서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음악역’이라는 이름을 단 것일까? 가평 하면 ‘잣’을 떠올리겠지만, 사실 예로부터 음악으로도 유명한 고장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제인 강변가요제가 가평에서 열렸다. 강변가요제는 대학가요제와 함께 젊은이를 열광시켰던 가요 경연 대회의 양대 산맥이었다. ‘담다디’의 이상은과 한국 가요계의 전설인 이선희도 강변가요제 출신이다. 가평군은 이런 음악적 특색을 살려 가평 뮤직빌리지 사업을 진행했고 그 결과 음악역1939라는 독특한 공간이 탄생했다. 추억을 떠올리고 옛 음악을 들으며 운전하다 보니 금방 가평에 도착했다. 
음악역1939 인근에 있는 무궁화호 기관차. /최갑수
음악역1939 인근에 있는 무궁화호 기관차. /최갑수

음악역1939에 도착하면 커다란 콘트라베이스 조형물이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는다. 콘트라베이스는 재즈 연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다. 가평 자라섬이 매년 세계적인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이라는 걸 안다면, 콘트라베이스가 왜 이곳 음악역1939 앞에 서 있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최고 수준의 음악 복합 문화 공간

음악역1939는 단순히 폐역을 리모델링한 공간이 아니라 음악 복합 문화 공간이라고 봐야 한다. 3만7257㎡의 넓은 부지에 400억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들여 조성했다. 연간 수준 높은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명한 가수의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뮤직비디오 배경으로 등장할 때도 있다.

음악인은 이곳이 창작과 공연을 함께할 수있는 세계 수준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도 그럴 것이, 팝의 전설 ‘비틀스의 녹음실’로 유명한 영국 애비로드 스튜디오 등 글로벌 유명 녹음실 300개를 만든 샘 도요시마가 녹음실을 설계했다. 믹스룸과 편집실 등도 갖추고 있다. 국내 아날로그 녹음 시스템으로는 최고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음악역1939 홈페이지를 통해 유선 문의와 이메일 신청을 하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아이들의 체험 학습 공간으로 적합하며 음악을 부담 없이 경험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음악역1939 가까이에는 무궁화호 기관차 한 대와 객차 한 량이 전시돼 있다. 문이 열려 있길래 내부로 들어가 보니, 예전에 타던 무궁화호와 똑같은 공간이 펼쳐진다. 덜컹거리며 느리게 지나던 그때 그 시절 열차에 올라탄 것만 같은 기분이다.


1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무대가 되기도 한 프티 프랑스. 2 프랑스 풍으로 꾸며진 실내. /최갑수
1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의 무대가 되기도 한 프티 프랑스. 2 프랑스 풍으로 꾸며진 실내. /최갑수

가평에 숨은 프랑스 마을

청평댐에서 남이섬 방향으로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다 이런 산중에 뭐가 있으려나 싶을 때쯤 빨간 지붕을 얹은 하얀 건물들이 보인다. 가평 산골짜기에 난데없는 유럽풍 건물이 한눈에 들어온다. 프티 프랑스다. ‘꽃과 별 그리고 어린 왕자’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프랑스 남부지방 전원마을의 분위기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프티 프랑스란 ‘작고 예쁜 프랑스’란 뜻이다.

꼭 둘러봐야 할 곳은 생텍쥐페리기념관이다. 생텍쥐페리의 탄생과 성장기 그리고 죽음까지 일대기를 다양한 사진과 이야기로 설명한 것은 물론 ‘어린 왕자’ ‘야간 비행’ 등 작품 해설과 뒷얘기가 잘 정리돼 있다. 여기에 전시된 어린 왕자를 펜으로 그린 스케치, 소혹성에 앉은 어린 왕자에게 채색까지 한 그림은 1946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원본이다. 세계에서도 몇 점 없는 작품이어서 눈길이 간다.

프랑스전통주택관에도 들러보자. 150년 전 프랑스 고택을 그대로 재현했다. 의자, 침대, 욕조 등 가구뿐 아니라 기둥, 기와, 바닥, 창까지 프랑스에서 공수했다. 화장실 변기도 재현돼 있다. 중세 시대 마을의 침입자를 감시하던 망루는 전망대로 이용된다. 전망대에서는 마을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호명산과 청평 호수가 한눈에 들어온다. 주변 야생화와 어울려 더없이 아름답다. 오르골 하우스도 프티 프랑스가 자랑하는 공간이다. 태엽을 감아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 내는 오르골을 전시해 놓았다. 


여행수첩

음악역1939 내부. /최갑수
음악역1939 내부. /최갑수
음악역1939는 가평터미널에서 도보 3분 거리다. 가평역에서는 도보 15분, 차로는 5분 정도 소요된다. 주차장이 넓어 차로 방문하기 좋다. 가평의 청평댐에서 남이섬까지 북한강을 따라 달리는 24㎞ 길이의 청평호반길은 수도권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이자 수상 레포츠를 즐길 수 있는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 자리한 수상 레포츠 업체는 모두 250여 곳. 북한강 상류에 속해 오염원이 없고 병풍처럼 둘러싼 높은 산자락이 바람을 막아 수면이 호수처럼 잔잔하다. 가평은 서울과 가까운 관계로 특별한 지역 음식은 별로 없다. 대신 북한강을 끼고 있으니 당연히 매운탕이 발달했고 관광객이 상시 오가는 경춘가도에도 맛집이 제법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