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2025년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했다. 4%대에 그칠 것이라는 세계경제계의 전망과 비교하면 공격적 목표다. 2024년 중국 경제를 견인했던 수출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부과로 어려워졌다. 중국은 2025년 내수 진작과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산업을 앞세워 앞으로 나아가겠 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재정 적자율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상향 조정하는 등 2024년보다 더 많은 돈을 풀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물가 목표치 2%, 20년래 최저…“수요 부진 인정”
리창(李强) 중국 국무원 총리는 3월 5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14기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정기 국회 격) 3차 회의 개막식에서 업무 보고를 통해 2025년 경제성장률 목표를 5% 안팎으로 설정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3년 이후 3년째 같은 수준으로, 시장 예상치와 일치한다. 단 호주뉴질랜드(ANZ)은행의 레이먼드 융 중화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야심 찬 성장 목표로, 정부 지원이 필요한 수준”이라며 “이 수치는 중국 정부가 외부 불확실성과 미국과 무역 긴장 속에서 성장을 지원하기로 결심했음을 보여준다”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이 집계한 2025년 중국 경제성장률 시장 전망치 평균은 4.5%다.
중국의 2025년 경제성장률 목표가 공격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배경에는 미국과 무역 전쟁이 있다. 트럼프는 재선 후 두 번에 걸쳐 중국산 수입품에 총 20%의 관세를 부과한 상태다. 2024년 수출은 중국 경제성장에서 3분의 1을 차지했는데, 이 부분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리 총리도 “외부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고, 우리 무역과 과학기술 및 기타 분야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일방주의와 보호주의가 심화하고 다자간 무역 체제가 방해받고 관세장벽이 높아졌다”라고 했다.
설상가상으로 내수 부진의 골까지 깊어지고 있다. 중국도 이를 인정했다. 이번 업무 보고에서 2025년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 목표치를 기존 ‘3% 안팎’에서 2003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인 ‘2% 안팎’으로 하향 조정한 것이다.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는 “국내 수요 부진을 암묵적으로 인정한 것”이라고 했다. 미국 CNBC는 “새로운 물가 목표는 실현해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상한선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실제 2024년 중국의 CPI 상승률은 전년 동기 대비 0.2%에 그쳤다.


내수 진작, 첨단산업 육성해 경제성장 견인
중국은 2025년 수출 대신 내수를 전면에 내세우겠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10대 주요 과제에서 ‘소비 진작, 투자 효율 향상, 국내 수요 확대’를 2024년 세 번째에서 첫 번째로 끌어올린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돈도 더 많이 풀기로 했다. 재정 적자율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4% 안팎’으로 설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는 사실상 역대 최고 수준이다. 2024년의 경우 3.0%였는데, 2023년 실제 재정 적자율(3.8%)보다 낮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수십 년간 공식 재정 적자율을 3% 이하로 유지하려고 노력한 중국이 암묵적인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트럼프와 무역 전쟁으로 인해 수출이 위협받자, 국내 수요를 촉진하기 위해 비전통적 조처를 할 의향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올해 적자 예상 규모를 금액으로 따지면 5조6600억위안(약 1134조43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조6000억위안(약 320조6900억원) 늘었다. 재정 적자 목표치를 뜯어보면, 초장기 특별 국채 발행량이 2024년 1조위안(약 200조4300억원)보다 많은 1조3000억위안(약 260조5600억원)으로 책정됐다. 이 중 3000억위안(약 60조1300억원)은 전기차, 가전제품 및 기타 제품에 적용되는 ‘이구환신(헌 제품을 새 제품으로 교환 시 보조금 지급)’ 예산으로 사용한다는 계획이다. 여기에 국유 은행 자본 확충 용도로 5000억위안(약 100조2200억원) 규모의 특별 국채도 추가 발행해, 적극 통화정책 부문에 대해서도 리 총리는 “적시에 은행 지급준비율과 이자율(기준금리)을 낮추고, 충분한 유동성을 유지하며, 사회자금 조달을 정상화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성장 동력으로는 첨단 기술 산업을 제시했다. 바이오, 양자 기술, 웨어러블 AI, 6G(6세대) 등 미래 산업 성장 메커니즘을 구축하겠다고 했다. 이를 지원하기 위한 과학기술 연구개발(R&D) 중앙정부 예산을 전년 대비 10% 늘어난 3981억위안(약 80조원)으로 책정했다.
중국의 과학기술 예산 증가율은 2024년 10%와 같은 수준으로, 2019년 이후 가장 큰 폭이다. 지방정부 예산과 각종 별도 예산을 모두 합친 중국의 과학기술 R&D 예산 총지출은 2024년 725조원 규모에 달했다. 올해 중앙정부 예산 증가율을 감안할 때 중국의 R&D 투자 총액은 800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국가 혁신 시스템을 고도화하기 위한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 강국 건설 3년 액션 플랜을 만들어 시행하겠다고도 했다.
딥시크에 고무된 中, AI 모델 띄운다
올해 리창 중국 총리의 정부 업무 보고는 지난해에 비해 AI 육성 내용이 더욱 구체화되고 강조됐다. 1월 전 세계 AI 산업계를 놀라게 한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의 초가성비 추론형 AI 모델 쇼크에 고무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 총리는 “AI 모델의 광범위한 응용을 지지한다” 며 “AI플러스(AI+·AI와 다른 산업을 결합하는 전략) 행동을 지속 추진하고, 디지털 기술과 제조업 우위, 시장 우위를 더 잘 결합하며,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차(전기차·수소차·하이브리드차)와 AI 휴대전화·컴퓨터, 지능형 로봇 등 차세대 스마트 단말기와 스마트 제조 설비를 크게 발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리 총리는 지난해 정부 업무 보고에서 AI플러스 행동을 처음 제시하고 “국제 경쟁력을 갖춘 디지털 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할 것”이라고 했지만, 올해 처음으로 AI 모델 육성을 넣고, 구체적인 응용 분야까지 제시했다. 2022년 11월 오픈AI가 챗GPT(GPT-3.5)로 생성 AI 돌풍을 일으킨 후 바이두, 알리바바 등 중국 빅테크도 AI 모델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정부 규제 탓에 출시를 미뤄 왔다. 2023년 5월 중국 정부가 사회주의 가치 중시를 적시한 생성AI 가이드라인을 담은 육성책을 확정한 후 중국 AI 모델이 잇따라 출시됐다. 2015년 설립된 AI 기반 퀀텀 펀드 운용사인 하이플라이어도 AI 연구 부문을 그때 분리해 딥시크를 창업했다. 중국에서는 틱톡 모회사로 유명한 바이트댄스와 텐센트를 비롯해 빅테크는 물론 문샷AI 등 여섯 마리 호랑이로 불리는 AI 모델 스타트업이 글로벌 생성 AI 경쟁에 참전하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월 17일 주재한 민영기업 좌담회에 딥시크 창업자 량원펑(梁文锋)을 참석시키고, 시 주석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을 CCTV 오후 7시 메인 뉴스로 내보내는 등 AI 육성 의지를 과시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