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나무를 이용해 만드는 숙성 용기인 오크통은 위스키나 와인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다. 오크통에서 숙성할 때 생기는 특유의 검붉은색과 오크락톤(oak lactone)이라고 부르는 풍미가 대표적이다. 이런 오크통에 우리 전통주를 접목하려는 시도가 몇 년 전부터 늘고 있다.
충북 충주의 농업 기업 다농바이오는 오크통을 이용한 증류주 유행을 선도하고 있다. 다농바이오는 충주산 쌀과 물, 발효제로 술을 만든다. 2023년 첫 제품인 가무치25를 출시했고, 이어 가무치43도 내놨다. 가무치25와 43은 옹기를 이용해 숙성했는데, 모두 좋은 품질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다농바이오의 이름을 술꾼에게 널리 알린 건 가무치가 아닌 ‘낫포세일(NOT FOR SALE)’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술이었다. 다농바이오는 위스키나 와인에 익숙한 젊은 층에 증류주를 더 친숙하게 전달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했고, 그 결과물이 바로 낫포세일이다. 낫포세일은 위스키처럼 검붉은색을 띠고, 나무에서 비롯된 향이 스며든 증류주로, 선보이자마자 큰 인기를 끌었다.
장보아 다농바이오 팀장은 “지금은 오크통에 숙성한 낫포세일이 주력 제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크통 숙성 제품에 대한 수요가 많다”며 “오크통 숙성 증류주는 나오자마자 완판될 정도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증류주를 만드는 것과 오크통에 숙성하는 건 완전히 다른 일이다. 다농바이오도 적지 않은 시행착오를 거쳤다. 다농바이오 양조장에는 포르투갈의 쿠퍼리지(cooperage· 오크통 제작사)와 계약을 맺고 들여온 수백여 개의 오크통이 가득하다. 포트와인과 레드 와인, 토카이 와인을 담았던 오크통에 다농바이오가 만든 증류주를 넣어 숙성한다.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됐지만, 오크통 숙성이 익숙하지 않던 초반에는 제대로 숙성되지않아서 술을 모두 버리는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한경자 다농바이오 대표는 “우리 술에 가장 적합한 오크통을 찾기 위해 다양한 오크통에 술을 숙성하고, 오크통을 그을리는 토스팅(tosating)이나 굽는 차링(charring)의 강도를 다르게 하는 등 여러 실험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산 참나무로 만드는 오크통
다농바이오처럼 많은 국내 양조장이 지금은 해외에서 오크통을 들여오고 있다. 하지만 오크통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하고, 좋은 품질의 오크통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 오크통을 해외에서 가져오는 것 자체가 오크통 숙성의 대중화를 막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유로 아예 국내에서 오크통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한반도 자생 참나무를 이용한 오크통 개발을 진행했다. 한반도에는 갈참나무·굴참나무·떡갈나무·상수리나무·신갈나무·졸참나무 등 여섯 종류의 참나무가 있는데, 이 중 어떤 참나무가 오크통에 적합한지 알아보기 위한 연구가 진행됐다.
국내에도 오크통을 만드는 업체가 있지만,어떤 수종이 오크통에 어울리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진행된 적은 없었다. 연구를 이끈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국내에서 증류주 숙성에도 쓸 수 있지만, 더 나아가서 해외 위스키 제조 업체가 한국산 오크통을 이용할 수도 있다”며 “한국산 참나무 오크통도 미국이나 유럽의 오크통에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나무 표면을 태우는 탄화 실험과 숙성 통을 만들기 위한 제형 가공에 적합한지, 증류주를 숙성했을 때 어떤 성분 변화가 일어나는지 등을 살폈다. 나무를 이용해 숙성 통을 만들 때는 나무에서 물이 이동하는 도관을 막는 세포인 타일로시스 함량도 중요하다. 타일로시스가 부족하면 목통에 넣은 술이 밖으로 스며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나무 종류별로 타일로시스 함량을 확인하는 연구도 진행했다.
특히 중요한 지표는 시스오크락톤(cis-oak lactone)과 트란스오크락톤(trans-oak lactone)의 함유량이다. 오크통에서 증류주를 숙성할 때 생기는 특유의 풍미인 오크락톤 중에서도 시스오크락톤과 트란스오크락톤은 술의 품질을 좌우하는 대표적인 성분으로 꼽힌다. 오크통에 숙성한 술을 마실 때 나무 향이 난다거나 바닐라나 코코넛 오일 같은 향이 난다고 하는 이유가 이 풍미 때문이다. 연구진은 여섯 종류의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에 증류주를 숙성했고, 그 결과 신갈나무 오크통에서 오크락톤이 가장 풍부하게 검출됐다.
신갈나무 오크통의 시스오크락톤 함량은 1L당 0.50㎎, 트란스오크락톤은 0.48㎎이었다. 스카치위스키를 오크통에서 3년 정도 숙성하면 시스오크락톤이 1L당 0.26㎎, 트란스오크락톤이 0.70㎎ 나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김 책임연구원은 “신갈나무는 여섯 개 수종 중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추후 오크통 산업화까지 염두에 뒀을 때 상업화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봤다”고 말했다.


숙성한 술, 부가가치 5배 높아
오크통을 만들려면 작은 나무로는 안 된다. 지름이 40㎝ 이상 되는 대경재가 필요하다. 대경재를 기준으로 하면 신갈나무의 오크통 생산 가능 수량이 200L 기준 1350만 개로 굴참나무(832만4000개), 상수리나무(308만4000개)보다 많다.
향후 참나무 산림 자원 활용 가능성까지 따져봤을 때 신갈나무 오크통이 가장 가능성이 크다고 본 것이다.
오크통 숙성은 단순히 술의 맛과 향을 더해주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오크통 숙성은 술의 부가가치를 높여준다. 관세청 무역통계에 따르면, 글로벌 주류 시장에서 숙성 증류주의 단위 가치는 1㎏당 8.02달러다. 반면 비숙성 증류주는 1㎏당 1.49달러에 불과하다. 숙성 여부에 따라 가치가 5.4배나 나는 셈이다. 해외에서는 옹기 숙성 증류주보다 오크통 숙성 증류주가 훨씬 익숙하기 때문에 우리 술의 해외 진출을 위해서도 오크통 숙성이 꼭 필요한 셈이다.
김 책임연구원은 “이번 연구 과제를 진행하면서 스코틀랜드 현지 이야기를 들어보니 늘 쓰던 오크통이 아닌 새로운 지역의 오크통에 대한 수요가 많다는 걸 알게 됐다”며 “한국산 오크통이 산업화까지 이어진다면 전 세계 위스키 업계에서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