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 포스터/ 넷플릭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 포스터/ 넷플릭스

2025년,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무역 적자 해소와 제조업 부활을 내세우며 관세 전쟁을 선언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는 더욱 강화되었고, 국제 공급망은 큰 혼란을 겪고 있다. 대미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현 상황에서 우리 기업은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부부가 제작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American Facto-ry·2019)’는 이 질문에 대해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다큐멘터리는 2008년 12월 23일(현지시각), 미국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주 데이턴에 있는 제너럴모터스(GM) 공장이 문을 닫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공장 폐쇄로 1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지역 경제는 황폐해진다. 2015년, 중국 자동차 유리 제조 기업 푸야오(福耀·Fuyao)는 폐쇄된 GM 공장 자리에 ‘푸야오 글래스 아메리카(Fuyao Glass America)’를 세워 미국 내 생산을 결정한다. 이는 관세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현지 시장을 공략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다. 공장 건설 초기에는 현지 정부와 지역 주민도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기대하며 푸야오의 미국 진출을 열렬히 환영했다. 그러나 푸야오가 미국의 노동 문화와 경영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중국식 경영 방식을 고수함에 따라 문제가 발생한다. 중국식 효율 중심 경영과 미국식 안전 및 노동권 중시 문화의 충돌은 생산성 저하와 심각한 노사 갈등을 야기했고, 실직 위기에 처한 근로자의 반발이 거세지면서 기업과 지역사회 간 관계에도 균열이 생겼다.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 서울대 경영학 학·석사, 미국 시카고대 MBA, 서강대 경영학 박사, ‘비욘드 스트래티지’ 저자

생산 전략의 변화와 현지화의 필요성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함에 따라 중국 회사는 미국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전략을 택했다. 푸야오 역시 이러한 전략을 통해 미국 시장에서 입지를 확보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의 노동 문화와 경영 방식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되었다. 결국, 푸야오가 중국식 관리 방식을 고수하면서 노사 갈등이 일어났고, 생산성도 떨어졌다. 반면, 도요타(Toyota)는 현지화 전략을 성공적으로 실행한 대표적 사례다. 도요타는 1986년 미국 켄터키주에 첫 공장을 설립하면서 현지 근로자와 협업을 강조하고, 팀 중심의 작업 방식을 도입하며 성공적으로 정착했다. 또한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근로자의 역량을 키우고 노사 간 신뢰를 구축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 ‘도요타 모터 매뉴팩처링 켄터키(TMMK)’는 도요타의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이 두 사례는 보호무역 시대에 기업이 성공하려면 단순한 생산 기지 이전이 아니라, 현지 시장에 최적화된 생산 모델을 구축해야 함을 보여준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 노조원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영화 ‘아메리칸 팩토리’에서 전미자동차노조(UAW) 노조원이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넷플릭스

노동 관리 방식의 조정과 노사 협력의 중요성

푸야오는 미국 공장에서도 중국식 경영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려 했다. 그러나 미국 근로자는 주 5일제, 정해진 휴식 시간, 안전과 복지를 최우선으로 하는 근무 환경을 중시하고, 노조 활동을 중요한 권리로 여긴다. 하지만 푸야오는 이러한 차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근로자가 노조를 결성하려 하자 운영 비용 증가를 우려하며 노조 결성을 저지하려 했다. 이러한 조치는 근로자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며 갈등을 심화시켰다. 근로자는 단순한 고용 유지를 넘어 일과 삶의 균형을 원했지만 이를 무시한 경영 방식을 고수함에 따라 푸야오는 근로자의 심각한 저항에 직면하게 된다.

반면, 도요타는 미국 진출 시 근로자와 신뢰 구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현지 노동 환경을 적극적으로 개선하고, 근로자에게 지속적인 교육과 참여 기회를 제공하여 노사 협력을 강화했다. 이러한 노력은 생산성과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으며, 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의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2025년 현재, TMMK는 캠리, 아발론, 렉서스 ES 등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며 도요타 북미 생산의 핵심 거점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글로벌 기업이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단순한 법 준수를 넘어, 현지 근로자의 가치관과 문화를 존중하고 이를 경영 전략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기술혁신과 근로자와 협력

푸야오는 미국 공장의 높은 인건비와 낮은 생산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동화를 도입했으나, 근로자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다. 대량 해고 우려로 노사 갈등이 심화했고, 기업 운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 사례는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는 환경에서 기술혁신이 필수지만, 근로자와 협력하지 않으면 오히려 위기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은 기술혁신을 추진할 때 비용 절감뿐만 아니라, 근로자의 재교육과 직무 전환을 병행해 지속 가능한 고용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도요타는 자동화 도입과 함께 근로자에게 새로운 기술을 익힐 기회를 제공하며 생산성 향상과 고용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는 전략을 추진했다. 반면, 푸야오는 근로자와 소통 부족으로 인해 기술혁신이 오히려 생산성 저하와 갈등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는 기업이 기술혁신에 성공하려면 근로자와 긴밀히 협력해야 함을 시사한다.

조직 운영 방식의 유연화

푸야오 사례는 조직 운영 방식을 현지에 맞춰 조정하지 않으면 경영 위기에 직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푸야오는 강한 위계질서를 유지하며 경직된 보고 체계를 운영한 탓에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반면, 도요타는 현지 경영진에게 충분한 권한을 부여하고, 현지의 법규와 문화를 반영한 조직 운영 방식을 채택했다. 이러한 유연함 덕분에 도요타는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두 기업의 사례에서 보듯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인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본사와 현지 법인 간 신속한 정보 공유를 기반으로 의사 결정 체계를 현지화하고, 내부 협업과 보고 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한다. 

보호무역 시대, 기업 생존을 위한 전략적 시사점

다큐멘터리 ‘아메리칸 팩토리’에 나오는 푸야오 사례는 관세 전쟁과 보호무역 시대에 기업이 생존하려면 운영 전략을 전면적으로 혁신해야 함을 보여준다. 첫째, 생산 전략을 재설계할 때는 단순히 생산 기지를 이전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시장과 노동 환경에 맞춰 최적화된 생산 모델을 구축해야 한다. 둘째, 노동 관리 방식을 혁신하고, 노조 및 근로자와 협력하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기술혁신을 단순한 비용 절감 수단이 아니라 장기적인 경영 전략의 핵심 요소로 활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조직 운영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하여 현지 시장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전쟁과 강화된 보호무역은 한국 기업에 위기이자 기회다. 미국 시장 진출을 고려하는 한국 기업은 푸야오의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단순한 생산 기지 이전을 넘어, 현지 노동 관행과 조직 운영 방식을 철저히 이해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보호무역 시대, 기업이 살아남는 길은 분명하다. 현지화된 생산, 근로자와 협력, 지속 가능한 기술혁신 그리고 유연한 조직 운영. 이 네 가지 원칙을 실천하는 기업만이 글로벌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이제 한국 기업도 과감한 운영 전략 혁신으로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시점이다. 

신재훈 글로벌세아 그룹지원실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