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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한 이래 현재는 이를 강화한 2035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와 2050년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최적 경로를 모색하고 있다. 탄소 중립은 기후 위기 대응을 넘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산업구조 변화와 경제의 지속 성장에 이르는 종합적인 과정이다. 

이와 함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첨단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생산 기반을 확충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첨단산업은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뿐만 아니라 디지털 전환과 그린 전환을 실현하는 핵심 동력이다. 그러나 막대한 투자 비용과 글로벌 선도 기업의시장 지배력으로 개별 기업의 리스크가 큰 만큼, 기업 성장과 경쟁력 강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 및 인프라 구축이 중요하다. 첨단산업은 생산공정에서 많은 전력을 소비하기 때문에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이 필수적이다. 전력 비용은 제조원가 절감을 통한 제품 경쟁력에 직결되며, 산업 경쟁력의 핵심 요소가 된다. 수출 중심, 제조업 기반의 경제구조인 한국은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 등 주력 산업이 에너지 집약적이다.

박경원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환경연구원(KEI) 초빙연구원
박경원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경제학 석·박사, 전 한국환경연구원(KEI) 초빙연구원

또한 한국은 제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른 주요국 대비 높아 전체 전력 수요에서 산업용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 또한 높다. 전력은 단순한 에너지원이 아니라 국가 경제성장과 도약을 견인하는 핵심 요소인 것이다. 전력 산업은 전기 생산과 계통 운영을 넘어 첨단산업 발전을 견인하며,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탄소 중립과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전력 산업 혁신이 시급한 이유다.  


에너지 3법과 전력 산업 혁신

최근 국회를 통과한 ‘에너지 3법’은 첨단산업 발전의 중요한 출발점이다. 에너지 3법은 ① 전력망 건설 인허가 및 규제 간소화를 위한 전력망 특별법 ② 사용 후 핵연료 영구 처분 시설을 위한 고준위 특별법 ③ 풍력 사업 인허가 절차 간소화를 위한 해상 풍력 특별법으로 구성된다. 고준위 특별법은 2016년 제20대 국회에서, 해상 풍력 특별법과 전력망 특별법은 2021년과 2023년 제21대 국회에서 발의했으나 폐기됐으며, 이후 제22대 국회에서 재발의해 2025년 2월 마침내 통과됐다. 에너지 3법은 필수적이지만, 충분하지는 않다. 전력 산업과 시장의 기존 체계가 유지된다면, 첨단산업 육성과 성장이 어려워질 뿐 아니라 탄소 중립 이행도 지연될 것이다. 국내 전력 산업이 직면한 핵심 과제는 대규모 전력 수요에 대응하면서도 기업에 무탄소 전기를 충분히, 경제적으로 공급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전력 산업의 혁신은 필수적이며, 혁신 실현을 위한 두 가지 중점 과제는 다음과 같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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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산에너지 시스템 강화

한국은 지역별 전력 자급률(소비량 대비 발전량)에 큰 차이가 있어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이 심화하고 있다. 발전량보다 소비량이 많은 지역은 자체 생산 전력뿐만 아니라다른 지역에서 생산된 전력을 공급받아 수요를 충당해야 한다. 반면 발전 과잉 지역은 지역 소비량을 초과하는 전력을 다른 지역으로 송전하고 있다. 이 같은 중앙 집중형 전력 공급 시스템에서는 전력 수요가 늘어나고 지역 간 불균형이 심화할수록 전력망의 부담이 커져 송전망 부족 문제가 발생한다. 국내 신재생에너지 발전량의 지역별 분포는 수도권보다 비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태양광발전은주로 전남, 전북, 경북, 충남에서, 풍력발전은 경북, 강원, 제주, 전남에서 이뤄지고 있다. 

자료=대한상공회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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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라 전력망 보강은 시급한 과제로 떠오르게 됐다. 국제적으로도 송전망 확충의 필요성이 커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50년까지 현재 송전망 길이만큼 추가 건설이 필요하다고 전망하며, 블룸버그신에너지금융연구소(BNEF)는 탄소 중립 추진 과정에서 송전망 건설은 많은 투자 비용이 소요되고 적기 추진이 어려운 분야라고 지적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력망을 신속하게 보강하는 동시에 발전 과잉 지역에서 새로운 전력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다. 이런 이유로 ‘분산에너지 특별법’ 시행과 함께 분산에너지 시스템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분산에너지는 에너지 소비 지역 인근에서 직접 생산‧소비되는 에너지로, 중앙 집중형 전력 시스템의 한계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여겨진다. 전기 소비지 인근에서 전기를 생산하면 송전망 의존도가 낮아져 전력 수급이 안정되고, 송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손실과 비용을 줄여 전력 공급의 경제성도 높아진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를 활용한 분산형 전원의 확대는 탄소 감축 효과도 가져온다. 분산에너지 시스템 확산은 단순히 전력 수급 안정성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에너지산업 전반의 혁신을 이끄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존 중앙 집중형 시스템에서는 대규모 발전소와 송전망에 의존해야 했지만, 분산에너지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지역별 전력 자립도가 높아지고, 전력 생산과 소비의 균형이 좋아진다. 특히 산업 클러스터 등 지역의 성장 거점에서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소비하는 구조가 정착되면, 국가 전체 전력 공급 비용을 낮추고 송전망 확충에 따른 사회적 비용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지역 특화 산업 육성에 따른 전력 수요와 지역 에너지원을 고려한 장기적인 전력 수급 전망이 필요하며,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정비와 인센티브 정책을 함께 추진해야 한다.

2│전력 시장 제도 개선

공급 안정성과 함께 중요한 요소는 경제성이다. 기업이 경제적으로 전력을 조달하지 못한다면 산업 경쟁력 확보는 어렵다. 따라서 전력 공급의 안정성과 경제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도록 시장 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행 전력 시장 구조와요금 체계에서는 기업 선택권에 제약이 있는 만큼 물량과 비용 측면에서 전력 조달 불확실성이 크다. 이를 해결하려면, 기업이 상황에 맞게 전력을 조달할 수 있도록 다양한 계약 조건 및 가격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규모 수용가가 전력 구매 방식을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직거래를 확대하고, 전력구매계약(PPA)을 활성화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별‧소비자별 특성을 반영한 요금 체계를 구축해 기업의 선택권을 넓혀야 한다. 아울러 수요반응자원(DR), 에너지저장장치(ESS), 가상발전소(VPP) 등 혁신 기술이 적극 활용될 수 있도록 시장 기능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전력 소비 효율성을 높이며 산업계의 비용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이 요구된다. 안정적이고 경제적인 전력 공급 체계 구축은 전력 산업 발전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필수 요소다. 이를 위해 전력 시장 제도 개선과 분산에너지 확대를 연계한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일관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해 전력망 확충, 분산에너지 시스템 강화, 시장 제도 개선을 이룬다면 탄소 중립과 경제성장의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박경원 대한상공회의소 SGI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