젤렌스키가 폭발했다. 2월 28일(이하 현지시각)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만났다. 의제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결이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발발한 지 만으로 3년을 넘긴 시점에서,또다시 대통령으로 당선된 트럼프는 취임한 지 24시간 이내에 전쟁을 종결짓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덕담이 오가면서 의기 투합해도 부족할 이 자리에서 젤렌스키는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월 28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 티타늄 광산/ AFP연합
2월 28일 우크라이나 지토미르 지역 티타늄 광산/ AFP연합

사면초가의 우크라이나

우크라이나는 지난 3년 동안 러시아의 침공에 맞서 치열하게 싸워왔다. 러시아의 전면 침공으로 우크라이나는 20% 이상의 영토를 빼앗겼다. 치열한 교전으로 우·러 양측에서 무려 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는데, 러시아 측 사상자가 60여만 명으로 우크라이나보다 많은 것으로 관측된다. 특히 러시아군 사상자 가운데 사망자는 무려 9만5000여 명을 기록한 반면, 우크라이나군은 4만8000여 명의 전사자를 기록하며 상대적으로 잘 싸운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현실은 암울하다. 전차나 장갑차 등 주요 전투 장비는 이미 개전 초에 소진해, 이후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미국에 의존해야 했다. 하루에 수만 발까지 쏘아대는 포탄을 감당하기 어려워, 이제 포탄과 드론을 조합한 자폭 드론으로 한 발 한 발 아껴 써야 하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는 25세부터 60세까지 징집해 전쟁 중으로, 병사의 평균연령이 43세일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절대적인 병력 부족으로 장비를 더 가져다주어도 이제 싸움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서 2022년 하계와 추계 공세에서 빼앗긴 영토를 상당히 되찾았던 우크라이나군은 2023년과 2024년 공세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결국 지난해 8월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 영토 일부를 점령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만드는가 싶었지만, 북한군이 참전해 쿠르스크 전선에 투입되면서 점령지의 40%를 다시 빼앗겨, 현재 점령지 면적은 서울시 절반 정도 크기다. 승리의 동력을 상실한 전쟁에 미국이나 서구의 지원이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감이 들기도 할 만한 상황이다.

미국의 종전 드라이브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되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종결은 미국 외교 안보 정책에서도 꽤 높은 우선순위가 되었다. 트럼프는 당선되자마자 키스 켈로그 예비역 육군 중장을 즉각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로 임명하고 행동에 나섰는데, 켈로그 장군은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해법으로 현 상태에서 멈추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에 지원 중단을, 러시아에 지원 확대를 압박하면서 양자가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을 촉구했다.

이미 북한군을 불러들일 만큼 소진한 러시아는 이런 정전 제안이 속으로는 반가웠을 것이다. 그렇다고 쿠르스크를 완전히 탈환하기 전에 휴전을 덜컥 받아들여서는 안 될 터였다. 하지만 어차피 정전 협상을 시작하더라도 타결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으므로, 러시아로서도 회담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는 없어 보였다.

문제는 우크라이나다. 젤렌스키는 빼앗긴 모든 영토를 되찾기 전까지 종전은 없다는 입장을 반복해 왔는데, 이는 실제로는 불가능한 목표인 것을 자신도 알고 있다. 마지막 수단이 쿠르스크를 점령해 점령당한 영토와 맞바꾸는 것이었지만 이 또한 어려웠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일단 영토 문제를 내버려두고서라도, 러시아의 재침공이 없도록 안전보장을 받는 방법을 강구해야만 했다.

달라지는 셈법

문제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를 구할 명분이나 의리를 찾는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이다. 윌리엄 맥킨리나 고립주의를 칭송하는 트럼프로서는 미국에 아무런 이득이 없을 경우, 우크라이나 안보 문제를 떠맡을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바로 광물 협정이다. 광물 협정의 내용은 간단하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지원한 액수인 5000억달러(약 730조원)를 채울 때까지, 희토류를 포함한 광물과 원유 등 천연자원의 개발과 판매, 항만 등 기반 시설로부터 얻는 수입 등에서 절반을 미국이 가져가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광물 협정에는 미국의 우크라이나에 대한 안전보장 제공 방안이 포함되지 않았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협정에 크게 반발했다.

미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고 러시아와도 직접 대화에 나섰다. 2월 18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 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 장관과 만나 휴전 방안을 논의했다. 회담 장소가 유럽이 아닌 제삼국이라는 것은 이 회담이 실제 종전을 논의하는 자리라기보다는 전쟁에 관여된 강대국 간 사전 접촉이자 중재 성격을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리를 박차고 나간 젤렌스키

우크라이나는 미·러 장관급 회담에 자국이 초대받지 못했다는 데 충격과 실망을 느꼈는데, 젤렌스키는 우크라이나의 종전 방법을 우크라이나 없이 결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반응을 두고 실망스럽다고 평가하고, 우크라이나는 이미 3년 전에 전쟁을 끝낼 수도 있었다고까지 말했다. 이제 더 이상 미국의 무조건적인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이다. 그리고 2월 28일 젤렌스키는 워싱턴 D.C.의 백악관을 찾아트럼프와 대화를 나누었다. 전 세계에 공개된 50분짜리 회담에서 트럼프와 젤렌스키 사이에 설전이 벌어지면서 험악한 장면이 연출됐다. 트럼프는 우크라이나가 미국의 원조에 감사한 적이 있냐면서 제3차 세계대전을 향한 도박을 하고 있다고 질타했다. 젤렌스키는 살인자에게 양보할 수 없다며, 종전 후 미국이 어떤 안전보장 조치를 해줄 것인지 물었지만, 트럼프는 평화협정 체결로 (재침공) 위험은 없어진다며 무마했다.

험악한 양측 회담은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미국이 안전보장 대책을 명확히 제시하지 않는 한 젤렌스키로서도 광물 협정에 서명부터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결국 합의가 없기에 공동 기자회견도 취소된 채 회담은 끝났다. 그리고 미국은 정상회담 파행 후 4일 만에 행동에 나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을 중단한 것이다.

지원 중단 대상은 광범위하다. 현재 수송 중인 물자는 물론, 폴란드 등 제삼국에서 인도할 예정이던 탄약과 무기도 대상이 되었다. 여기에 심지어 일론 머스크가 운용하는 우주 기반 인터넷 서비스인 ‘스타링크’의 제공 중단까지 거론되고 있다. 스타링크는 단순히 인터넷 통신망으로 기능할 뿐만 아니라 우크라이나군의 작전을 위한 필수적인 허브 망으로 역할해 왔다. 즉 스타링크가 중단되면 우크라이나 군사작전은 사실상 마비될 수 있다. 영국의 원웹 같은 유럽제 대체 서비스가 있지만, 스타링크만큼 신뢰성 있는 서비스 제공은 어렵다. 우크라이나로서는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 자체가 불가능함을 다시금 느낄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대 법대, 국방대 국방관리대학원 석·박사, 현 한남대 국방전략대학원 겸임교수, 현 국가안보실 정책자문위원

트럼프 2.0 시대의 생존법

트럼프의 입장은 확고하다. 광물 협정은 여전히 유효하고, 우크라이나가 사과하고 협정에 서명하면서 휴전을 받아들이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광물 협정에 서명한다고 해서 무기 지원 중단이 철회될 것인지조차 분명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크라이나는 미국에 대해 백기 투항을 하지 않고서는 전선을 버틸 수 없는 상황까지 갈 수 있다.

결국 우크라이나는 트럼프의 말에 따라 휴전에 응하고 광물 협정에 서명하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것이다. 미국에 의한 안전보장에 관한 어떤 약속도 받지 못했지만, 최소한 광물 협정으로 자국 이익이 우크라이나에 존재하는 한 이를 러시아나 기타 국가에 빼앗길 트럼프는 아니다. 사실 트럼프가 광물 협정이란 극단의 카드를 꺼내기 전에, 우크라이나는 자국이 먼저 미국에 어떤 이익을 제공할 것인지 제시해야 했다. 그게 트럼프 2.0 시대에 대응하는 방법이다.

이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으로 다가온다.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10배 인상 요구나 주한 미군 감축 요구 등을 부정하고 저항한다고 국익이 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미국에 적극적으로 분담금을 제시하고 전술핵 재배치 등 우리 안보에 절실히 필요한 것을 받아오면 된다. 한국이 미국 이익에 필수 불가결한 국가임을 선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생존과 한미 동맹을 보장하는 방법이다.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