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4일은 세계 수면의 날(World Sleep Day)이다. 매년 3월 춘분이 있는 주의 금요일을 세계수면학회가 세계 수면의 날로 정해 2008년부터 기념하고 있다. 매서운 추위가 물러가고 봄꽃이 탐스러운 봉오리를 만들어 올릴 때면 ‘춘곤증’이란 말이 각종 뉴스에 등장하곤 한다. 한국인의 수면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최악이다.
대한수면연구학회가 3월 4일 발표한 ‘2024년 한국인의 수면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의 취침과 기상 시각은 각각 평균 오후 11시 3분과 오전 6시 6분으로 조사됐다. 수면의 질이나 양에 만족하는 비율은 글로벌 평균의 약 75% 수준에 머물렀다. 매일 숙면을 취한다고 답한 응답자는 7%로, 글로벌 평균(13%)의 절반이다. 수면 장애나 불면증으로 진료받은 환자는 2010년 약 27만8000명에서 최근 약 67만8000명으로 140%나 증가했다. 2월 말 글로벌 기업 이케아가57개국 5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수면 관련 보고서에서도 한국인의 하루 평균 수면 시간은 6시간 27분으로 조사 국가 중 네 번째로 수면이 부족했고, 스스로 평가하는 수면의 질은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국, 수면 부족으로 연간 600조원 손실 추정
경쟁 사회와 스마트폰, 소셜미디어(SNS)의 발달이 수면 부족과 나쁜 수면의 질에 고루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 수면 부족은 국민 건강의 문제만 야기하는 게 아니다. 기업 생산성과도 직결된다. 연구에 따르면, 수면 부족은 직원의 생산성을 50% 이상 저하하고, 병가로 인한 업무 공백, 의료 비용 등을 상승시키는 요인이다. 수면 부족으로 미국은 연간 4110억달러(약 600조3066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보는 것으로 학계는 추정한다. 국내총생산(GDP)의 2.28%에 달하는 액수다. 일본과 영국은 수면 부족으로 인한 연간 손실 추정액이 각각 1380억달러(GDP의 2.92%), 500억달러(GDP의 1.86%)에 달한다. 국내에서는 수면무호흡증 영향으로만 해도 연간 약 11조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수면과 음악은 꽤 상관관계가 있다. 자장가를 보라! 2세를 푹 재우는 인간 생성형 ASMR(자율 감각 쾌락 반응)이라고 할 수 있는 자장가. 그 역사는 아마도 인류의 역사와 겹칠 것이다. 고대 메소포타미아나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발견된 점토판과 쐐기문자에서이미 성가, 애가, 무곡 등과 함께 자장가의 기록 흔적이 나타나고 있다.
서양 클래식에서도 자장가는 천재 작곡가의 중요한 창작 소재였다. 브람스와 리스트와 슈베르트의 ‘자장가(Wiegenlied)’, 포레와 쇼팽의 ‘자장가(Berceuse)’ 등 수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음악의 아버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걸작 중 하나도 일종의 자장가다. 1741년 발표한 ‘골드베르크 변주곡’. 일화가 있다. 그 무렵 독일 라이프치히에 머물던 러시아 외교관이던 카이저링크 백작은 심각한 불면증을 앓고 있었다. 그 시절엔 라디오도, 오디오도 없었으니 잔잔한 음악에 기대 잠을 청하기 위해 골드베르크라는 이름의 젊은 하프시코드 연주자로 하여금 옆방에서 잠을 부르는 연주를 하도록 했다. 그래도 별 차도가 없자 결국 지인의 지인쯤 되던 바흐에게 맞춤형 자장가를 의뢰하게 됐고, 그렇게 완성된 곡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골드베르크를 거느릴 권력이 있는 카이저링크가 아니어도 현대인은 많은 것을 거느리고 산다. 라디오, 오디오, 각종 스트리밍 서비스와 블루투스 스피커가 가가호호 필부필부의 머리맡에 있다. 이 시대 자장가의 모습은 어떨까. 2015년, 세계인을 위한 야심 찬 수면 음악 프로젝트가 실행됐다. 독일 출신의 영국 작곡가 막스 리히터가 발표한 8시간 24분 21초짜리 대작 앨범 ‘Sleep’이다. 이 프로젝트에는 기획 단계부터 미국의 신경과학자 데이비드 이글먼이 함께했다. 매우 느린 템포로 서정적인 테마를 반복하는 이 앨범은 큰 성공을 거뒀다. 5년 동안 약 5억 회의 스트리밍을 기록하면서 세계인의 새로운 자장가로 떠오른 것이다.
‘Sleep’ 콘서트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콘세르트헤바우, 프랑스의 필하모니 드 파리,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격조 높은 공연장에는 150~200개의 침대가 깔렸다. 관객은 의자에 앉는 대신 바로 이 침대에 누워서 밤새, 정확히는 8시간 24분 동안 진행되는 연주를 감상하게 된다. ‘자느냐? 듣느냐!’ 그것만이 이 안락하기 그지없는 콘서트의 유일한 문제다.
막스 리히터가 지핀 수면 음악 열풍은 클래식계의 판도까지 바꾸는 양상이다. 근년에 그 영향력이 게임 음악만큼이나 커 보인다. 막스 리히터, 닐스 프람, 요한 요한손, 존 홉킨스, 올라퍼 아르날즈, 루도비코 에이나우디 등 이른바 네오클래시컬 또는 포스트미니멀리즘 같은 장르로 일컬어지는 음악가가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같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수천만 회에서 수십억 회의 재생 수를 기록하며 강자로 군림하는 것이다.

‘수면 음향 앱’ 시장도 고속 성장 중
이들 음악에서는 주로 피아노가 기본이 되는데 다이내믹, 즉 강약이 분명한 연주가 아니라 느린 템포에 아름다운 선율 위로 페달 밟는 소리, 피아노 본체가 삐걱대는 소리까지 담아서 편안한 입체감을 자아낸다. 여기에 공간감을 더하는 전자 사운드, 또는 첼로 등 현악을 덧입혀서 명상적이면서 동시대적 느낌을 주는 음악을 구사하는 것이 특징이다. 요즘 애플뮤직의 ‘클래식 앨범 TOP 100’ 순위를 보면 바흐, 브람스, 쇼팽, 차이콥스키, 라흐마니노프 같은 유수의 작곡가 또는 임윤찬, 조성진, 알리스 사라 오트, 요요 마 같은 발군의 연주자와 ‘감히’ 경쟁하는 매우 낯선 이름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스테판 모치오, 페데리코 알바네제, 후앙 리우메이 같은 젊은 네오클래시컬 작곡가(겸 연주자)다. 오랜 클래식 팬이라면 ‘족보도 없다’며 혀를 찰지도 모르지만, 이들은 수면 음악과 클래식 음악 시장 모두에서 부인할 수 없는 강자로 떠올랐다. 매주 클래식 ‘톱 100’ 앨범 가운데 20~30장의 앨범은 이 장르에 속할 정도다.
수면 음악은 숙면 보조 애플리케이션 시장에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듯하다. 미국의 시장조사 업체 ‘베리파이드 마켓 리포트’에 따르면, 세계 수면 음향 앱 시장 규모는 2023년 10억900만달러(약 1조4595억원)에서 2030년 28억달러(약 4조원)로 14.5%의 연평균 성장률을 보일 전망이다. 수면을 위한 음향과 음악을 포함한 전체 웰니스 애플리케이션 시장 규모는 2026년 40억달러(약 5조7860억원)에 달할 거라는 예측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에서 불면증으로 병원을 찾은 환자는 매년 늘고 있는데 2023년 약 75만 명에 달했다. 잠의 경제, 이른바 슬리프노믹스(sleepnomics)는 앞으로 생활 관련 기업의 주요 키워드, 블루오션이 될 수 있다. 이미 국내 유수의 생활 가전, 스마트 기기, 침구류 기업은 올해 인공지능(AI)이나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숙면 보조 기능, 수면 전문 브랜드를 새로 선보이거나 확장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에 음향기기 쪽에서는 돌비 애트모스 같은 몰입형 입체 음향 환경이 갈수록 소형화·보편화하면서 이들 슬리프노믹스에는 음향과 음악 요소가 적극적으로 개입될 가능성이 크다.
‘자장~ 자장~ 우리 아가~’ ‘잘 자라 우리 아가~’
단선율에 가창자는 ‘우리 엄마’이던 수면 음악은 이제 현대인을 위한 첨단 기술을 입힌 콘텐츠로 거듭나고 있다. 복잡다단해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모두 ‘잘 자는 아가’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