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캐나다가 아니다. 그리고 캐나다는 어떤 방식으로든 결코 미국의 일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이 싸움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캐나다인은 다른 사람이 장갑을 벗을 때 항상 준비돼 있다. 미국은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무역에서나 하키에서나 캐나다가 이길 것이다.”
마크 카니(Mark Carney) 신임 총리는 3월 9일(이하 현지시각) 당선 후 연설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강력히 경고하며, 미국·캐나다 간 무역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겠다고 약속했다. 트럼프가 최근 캐나다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하고, 자동차 및 에너지 부문만 예외를 두겠다고 언급한 데 이어, 캐나다를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말하자 이에 반발한 것이다.
카니는 “(트럼프는) 정당하지 않은 관세정책을 이용해 우리 경제를 약화시키려 하는 사람”이라며 “미국은 우리의 자원, 물, 땅, 나라를 원하고 우리의 삶을 파괴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전문가는 ‘경제통’ 신임 총리가 등장하며 미국·캐나다 간 관세전쟁이 새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고 있다.
영란은행 총재 출신 경제 전문가, 정치 경험은 없어
캐나다 자유당은 이날 카니가 10년 동안 재임한 쥐스탱 트뤼도의 뒤를 이어 차기 캐나다 총리로 선출됐다고 밝혔다. 자유당에 따르면 당원 15만1899명 중 85.9%가 그에게 표를 던졌다. 경쟁자였던 크리스티아 프리랜드 전 부총리 겸 재무 장관은 8%, 카리나 굴드 전 하원 의장은 3.2%, 프랭크 베일리스 전 하원 의원은 3%에 그쳤다. 그러나 누구도 그가 이렇게 압도적인 표 차이로 승리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 어려웠다. 정치 경험이 전무한 이력 때문이었다.
카니는 1965년 캐나다 노스웨스트 준주에서 태어났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미국계 투자은행 골드만삭스 출신 경제 전문가다. 영국 런던과 일본 도쿄, 미국 뉴욕, 캐나다 토론토에서 13년간 근무했다. 2003년에는 캐나다은행 부총재에 올랐고, 다음 해 11월 재무부 차관보에 임명됐다. 2008년 2월에는 캐나다 중앙은행 총재로 취임했다. 그는 당시 글로벌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캐나다 경제는 금융 위기 직후인 2009년 -2.8% 성장했지만 2010년 3%대 성장으로 복귀했고, 2011~2012년엔 위기 이전 수준인 2% 내외의 성장을 달성했다.
2013년에는 비(非)영국인 최초로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BOE) 총재가 됐다. 전임자의 세 배나 되는 연봉을 받으며 스카우트됐다. 이때도 카니는 브렉시트(Brexit·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전후 혼란스러웠던 상황을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반면 정치 실무 경험은 없다. 현직 의원이 아닌 데다, 다른 후보에 비해 대중적인 지명도도 상대적으로 낮았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캐나다인 1989명에게 정장 차림의 카니 사진을 보여준 결과, 단 7%만이 그를 알아볼 정도였다.
그런 그가 총리로 선출된 것은 트럼프의 관세 위협에 대응할 경제 전문가임을 내세운 덕분이다. 카니는 전임 트뤼도 총리의 정책 기조와는 거리를 두고 정통한 경제학자인 경력을 내세워 미국 트럼프 정부의 관세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해 왔다. 그 덕분에 당대표 선거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선두를 지켜왔다. 특히 국제 관계에서 경험도 그를 중요한 인물로 만들어주었다.
美 관세 위협 극복해야
이렇듯 카니는 미국·캐나다 간 관세전쟁을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와 관심을 받으며 총리로 선출됐다. 영국 가디언과 BBC, 미국 뉴욕타임스 등 외신은 “트럼프가 카니를 당선시켰다”고 평했다. 가디언은 “트럼프가 캐나다인을 애국주의자(nationalists)로 만들었고 누구를 신뢰해야 할지 재고하게 했다” 며 “(자유당 지지율을 상승시켜) 카니가 승리하는 데 주요 원인이 됐다”고 분석했다. 영국 BBC는 “이번 선거는 트럼프에게 맞서 캐나다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가 핵심 질문이었다”고 평했다. 트럼프는 1월 20일 취임하기 전부터 캐나다를 미국의 51번째 주로 만들겠다고 발언한 데다, 취임 직후 캐나다에 대한 25% 관세를 예고하기도 했다.
카니는 그간 트럼프의 공격적인 관세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해 왔다. 영란은행 총재였던 2018년에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세계경제에 해를 끼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2020년 다보스 포럼 연설에서는 트럼프의 환경 정책을 비판하기도 했다.
3월 9일 승리 연설에서도 역시 카니는 미국발 관세전쟁에서 트럼프에게 맞서겠다며 보복 관세를 강조했다. 그는 “캐나다 정부는 관세로 정당하게 보복했다”며 “미국이 우리에게 존중심을 보일 때까지 우리 정부는 관세를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니는 수일 안에 제24대 캐나다 총리로 공식 취임한다. 차기 총선이 치러지는 10월 말까지 트뤼도 전 총리의 잔여 임기를 수행한다. 카니는 주택 및 청정에너지 프로젝트에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캐나다 내 여러 주 사이에 남아 있는 장벽을 없애고, 미국에 대한 의존도를 줄여 경제를 다변화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BBC는 향후 몇 주 안에 조기 총선이 실시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캐나다 내 반(反)트럼프 감정이 고조한 만큼 조기 총선을 실시해도 자유당에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트럼프, 보복 관세 상향 위협에 캐나다, 美 수출 전기료 인상 보류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3월 11일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기에 대한 25% 할증 부과를 잠정 보류하기로 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부과하기로 한 50% 관세를 애초 계획대로 25% 수준으로 재고하겠다고 이날 밝혔다. 캐나다와 미국이 한 발씩 물러나면서 양국 간 무역 분쟁도 완화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전 SNS를 통해 “캐나다 온타리오주가 미국으로 들어오는 전기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해, 우리도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철강과 알루미늄에 대한 총관세를 50%로 올릴 것”이라며 “캐나다가 관세를 내리지 않을 경우 미국으로 들어오는 자동차에 대한 관세도 대폭 올릴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자 더그 포그 온타리오 주지사가 “대미 수출 전기에 25% 할증 요금을 부과하려던 계획을 잠정 중단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