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박에 승선했던 9년 내내 단파방송은 내게 둘도 없는 친구였다. 첫 배를 탔을 때였다. 당시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생활했다. 사우디 동부 도시 라스타누라에서 배에 기름을 실어 서부 도시 얀부로 날랐다. 한 달이 지나자, 고국 소식이 궁금했다. 우연히 통신국장의 방에 들렀다가 한국어 방송을 듣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다. 단파방송이라고 했다. 우리나라에서 송출하는 것이 이국만리 바다에서도 들린다는 것이다. 나는 제다 시내에 상륙해 단파 라디오를 사 왔다. 신호가 좋지는 않았지만, 고국의 방송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채널을 돌리다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 방송을 알게 됐다. KBS 프로그램 ‘파도를 넘어’는 하루 1시간씩 두 차례밖에 방송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의 소리는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어 더 좋았다. 우리나라 방송보다도 미국의 소리 방송을 더 즐겨 듣게 됐다. 그 후 단파방송은 어느 배에 타든 소중한 친구가 됐다. 깨끗한 음질의 더 성능 좋은 단파 라디오를 구하는 게 하나의 숙제가 됐다.
단파방송은 내게 영어 공부는 물론 미국문화를 알 수 있게 하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카세트가 들어가는 단파 라디오를 샀다. 꽤 비쌌다. 영어 뉴스를 카세트테이프에 녹음했다. 몇 번을 들으면서 영어 뉴스의 모르는 단어를 익혔다. 이렇게 몇 년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항상 고국 소식과 국제 뉴스에 정통한 내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었다. 한번은 KBS ‘파도를 넘어’에 편지를 보냈다. 휴가 중 방송에 초대받아 출연했다.
바다에서 단파방송을 듣던 사람이 이제는 자기 목소리를 바다의 선원들에게 들려주는 방송에 출연까지 한 것이다.
육지에 있는 나는 이제 더 이상 단파방송을 듣지 않는다. 인터넷을 통해 모든 뉴스를 얻기 때문이다. 미국의 소리 방송도 핸드폰 앱으로 본다. 요즘 선원들도 인공위성을 통해 인터넷을 편리하게 이용한다. 단파방송은 옛이야기가 됐다. 그러나 요트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는 사람은 여전히 단파방송을 듣는다.

승선 기간 중 또 하나의 소중한 친구는 탁구였다. 점심 식사 후 1시부터 2시까지 배의 탁구장은 선원으로 붐볐다. 단식 게임과 복식 게임으로, 사람들이 모여 즐겁게 탁구를 했다. 스매싱이 나오면 모두 한마음이 돼 어김없이 손뼉을 쳤다. 1시간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린 다음 마시는 맥주 맛은 일품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탁구를 잘했다. 배에서도 항상 1·2등을 했다. 철판 위에서 탁구를 한 탓인지 왼쪽 무릎이 승선 내내 아팠지만, 승선 기간 9년 내내 탁구를 했다. 그 덕분에 하체가 탄탄해졌고 오늘까지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
한번은 일본에서 나란히 접안한 한국 배의 일등 항해사와 의기투합해 탁구 시합을 열었다. 적진에 들어간 나는 5등, 4등, 3등 그리고 2등을 무찌르고 마침내 1등과 겨뤄 승리했다. 상대편 선장이 패배를 인정하며 연어 열 마리를 상금으로 줬다. 나의 ‘리즈(전성기)’ 시절이었다.
그랬던 나의 탁구가 무너졌다. 작년 연말 일본 도쿄에 있는 해양대 후배들의 연말 모임에 나갔다. 탁구 시합이 있었다. 자신만만했다. 내 차례였다. 그런데 서브가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탁구채에 공이 맞지 않았다. 몸과 탁구가 따로 놀았다. 첫 게임에서 졌다. 후배들이 사정을 봐줘 패자부활전까지 열렸다. 멋지게 스매싱을 하나 넣었다.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것이 끝이었다. 또 지고 말았다. 세 번의 게임에서 모두 졌다. 이럴 수가. 수십 년 탁구를 하지 않아 몸이 탁구를 잊어버린 것이었다. 집사람이 젊은 후배들 상대로 뭘 그렇게 이기려고 용을 썼냐고 핀잔을 줬다. 귀국 후 나는 몸살을 심하게 앓았다.
30년 세월이 흐른 지금 환경이 많이 바뀌었다. 단파방송도 탁구도 이제는 더 이상 내 소중한 친구가 아니다. 가까이에 있지 않다. 그래도 바다에 나가면 30년 전 그때가 있을 거로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다시 선장으로 승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