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엄에 이은 탄핵 정국이 석 달째 이어지는 가운데, 국회는 민생 현안 논의를 이어 가는 모양새다. 경기 활성화를 위한 추경 법안이나 전략 자산으로 급속히 변화하고 있는 반도체 지원법 등도 정치적인 이유로 꽉 막혀있지만, 2년 넘게 끌어온 연금 개혁 관련 논의가 한 발짝도 못 나아가고 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이후, 연금 개혁은 가장 중요한 정치적 의제였다.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4대 개혁(노동·의료·교육·연금)에 포함됐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2023년 종료된 국민연금 5차 재정 추계 결과가 과거보다 아주 비관적으로 도출됐기 때문이다. 2018년 4차 재정 추계는 기금 고갈 시기를 2057년으로 봤지만, 녹록지 않은 미래 경제 상황 탓에 기금 고갈이 2년 앞당겨진 2055년으로 추계됐다. 과거 예상을 뛰어넘는 저출산의 여파로 기금 고갈 이후 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보험료율이 30%가 훌쩍 넘어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국민연금 재정 추계는 장기적으로 출산율이 1.2 수준을 회복한다는 가정에 기반했음을 감안하면, 이대로 뒀다간 국민연금 제도는 확실히 실패할 것이 명백하다.
2024년 5월 종료된 제21대 국회 중 여야는 나름의 노력을 통해 연금 개혁안 간극을 상당히 줄인 바 있다. 현재 9%인 보험료율을 4%포인트 인상해 13% 수준까지 끌어올리자는 데는 여야가 뜻을 같이한 것이 일례다. 다만 받는 돈을 결정하는 ‘소득대체율’ 부분에 일부 이견이 있었는데, 현행 40%에서 여당은 43%, 야당은 44~45% 수준까지 인상하는 것을 제안했다. 최종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2007년 노무현 정부 개혁 이후 그간 있었던 연금 개혁 논의에 비하면 여야 의견이 가장 근접한 상황이었다.
제22대 국회가 개원하고 한동안 소강상태였던 연금 개혁 논의는 작년 9월 정부가 국회 논의와 별개로 자체 개혁안을 내며 논의의 불씨가 살아났다. 보험료율은 13%까지, 소득대체율은 42%로 인상하자는 것이 골자다. 다만 현재는 연금 급여가 물가에 연동돼 인상되는데 인상 폭을 인구구조에 따라 낮추는 자동 조정 장치를 포함시켰다. 이는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시나리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자동 조정 장치가 발동되면 명목소득대체율이 32~36% 수준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미 납부한 국민연금 보험료에 대해 국가가 약속한 연금 급여를 소급해 삭감하는 구조이며, 자동 조정 장치 도입 시 1970년대 이후 출생자가 그 앞 세대보다 압도적으로 불리하기에 젊은 세대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개혁 취지에 역행하는 안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기지개를 켜는 듯했던 연금 개혁 논의는 계엄의 태풍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불행 중 다행으로, 올해 들어 다시 국회 차원의 논의는 재개됐고, 국정협의회를 통해 여야·정이 참여하는 논의의 장이 열리게 됐다. 보험료율 13%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보이고, 소득대체율 부분에서 정부와 여당은 42~43% 수준, 민주당은 44~45% 수준을 주장하는 등 일부 이견이 있는 상태다. 자동 조정 장치 역시 핵심 쟁점이다.
과거 그 어떤 연금 개혁 논의보다 여야·정의 의견이 가까워졌다고는 하지만, 현재 논의가 흘러가는 모양새를 보면 이번에도 연금 개혁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연금 개혁의 본질은 두 가지다. 첫째, 노후 소득 보장에 필요한 적정한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거다. 최소한의 소득 보장이 없는 연금제도는 도입할 이유가 없음이 자명하다. 둘째, 약속된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재정 안정을 달성하는 거다. 줄 돈이 없으면 연금을 지급할 수 없기에 재정 안정 없는 소득 보장은 의미 없는 구호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소득 보장과 재정 안정은 대치되는 개념이 아닌 상호 보완적인 개념이다.

인류 역사상 이런 사례가 있었을까 하는 정도의 극심한 저출산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을 감안하면, 연금 개혁은 국가적 생존을 위한 필수적 과제다. 2060년 전후로 ‘노년 부양비(경제활동인구인 15~64세 인구 100명당 부양할 65세 이상 고령 인구의 비율)’가 100을 훌쩍 넘을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국가 구성원 절대다수인 노인 집단이 연금이 충분치 않아 빈곤하다면 그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반대로 감당 불가능한 연금을 약속했다가 재정이 충분치 않으면 그 역시 큰일이다.
국민연금이 내는 것보다 많이 받도록 설계됐으므로 최대한 빨리 수지 균형을 맞춰야만 한다. 작년 5월 기준 국민연금의 미적립 부채는 국내총생산(GDP)의 70% 수준인 1700조원가량이다. 2023년, GDP 대비 국가 채무 비율이 47%에 육박하자, 재정 당국이 건전 재정 달성을 위해 호들갑을 떨었던 것을 감안하면 이제까지 쌓인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는 천문학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게 타당하다. 내는 돈과 받는 돈의 수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개혁이 늦어지면 빚의 규모는 그만큼 커진다. 게다가 빚은 이자가 붙는 법이다.
과거의 미적립 부채를 무시한다면, 현재 논의되는 소득대체율 42~45% 수준에 적절한 보험료율은 13%다. 현재 국민연금에 가입된 평균적인 국민이 경제활동을 하는 동안 보험료율 13%를 부담하고, 여기에 기금 운용 수익률이 꾸준히 쌓인다면, 은퇴 후 42~45%가량의 소득대체율에 해당하는 연금 급여를 받아 가면 얼추 균형이 이뤄진다는 의미다. 현재 논의되는 수준의 개혁이 일어난다면, 낸 만큼 받아 가는 것이니 최소한 추가적인 부채는 쌓이지 않게 된다.
미적립 부채 역시 아직은 해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노인 70%에게 기초연금 34만4000원을 지급하고 있는데, 작년 기초연금에 들어간 재정은 GDP의 1%인 24조원 수준이었다. 향후 10~20년 베이비붐 세대(1955~64년생)가 은퇴하며 노인 인구가 급증할 것이기에, 기초연금 투입 재정 역시 급증할 예정이다. 만약 기초연금 지급 대상을 노후 빈곤선인 30% 수준으로 낮추고, 여기서 확보된 재정을 국민연금 미적립 부채를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 투입한다면, 기금은 영속될 수 있는 상황이다. 아직은.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이 급속도로 악화한다는 것이다. 100만 명씩 태어났던 1960년대생은 2030년이면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연금 개혁에는 최소 수년의 시간이 필요하기에, 당장 개혁하더라도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하고 인구가 많았던 1960년대생은 개혁에 기여할 기회가 없다는 의미다. 개혁이 더 늦어진다면 80만 명씩 태어났던 1970년대생조차 은퇴하게 된다.
이번에 연금 개혁을 하지 못하면 소득 보장도, 재정 안정도 물 건너간다. 국회도 이를 모르지 않을 거다. 하지만 여전히 양당은 소득대체율 1% 차이로 기싸움하고 있다. 소득대체율 1%를 올린다고 소득 보장이 달성되는 것도 아니며, 1% 낮춘다고 재정 안정이 달성되는 것도 아니다. 현재 정치권은 연금 개혁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지지층에게 연금 개혁을 하는 모양새를 보여주는 것을 원하는 게 아닐까. 진보와 보수의 이념 투쟁은 민주주의 국가의 숙명이다. 시끄럽고 불편하지만, 주요한 사회 의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건 건강한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금 개혁은 더 이상 이념의 대리전장이 돼서는 안 된다. 이러다가는 우리 모두 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