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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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전 직장의 인사부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갈등 해결을 도와 달라는 내용이었다. 영업부 한 고참 직원 A에 대한 권고사직에 대한 것이었다. A는 몇 년간 나름 성실히 근무했지만, 회사는 조직에서 미래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판단했다. A는 관리자로 승진하기 어려운 역량이고, 보내기 마땅한 자리도 없으며, 그렇다고 급여가 적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현상을 유지하면서 후배 자리를 막는 형국이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그런데 영업본부장이 권고사직 메시지를 전하는 과정에서 A가 엄청난 반발을 한 모양이다. 본인에 대한 권고사직을 경영진의 불합리한 퇴직 압박으로 사내외에 공론화하겠다는 강한 의사를 표했고, 회사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담스러운 금전적 보상을 협상 조건으로 내세웠다. 오히려 회사가 코너에 몰린 셈이다. 

그들은 퇴사한 내게 왜 도움을 요청했을까

회사의 요청으로 필자는 이 문제의 중재 역할을 맡았다. A와 한 시간 정도 통화를 했고, 대면해 두 시간 정도 만남을 가졌다. 다행히 며칠 만에 A는 회사와 퇴사에 합의했고, 바로 퇴사 절차를 밟았다. 완강했던 A와의 대화는 생각보다 잘 풀렸다. 어떤 조건을 상정해 놓고, 서로 치고받으면서 논쟁하기보다는 당사자의 상황을 차분히 들어봤다. 회사를 통해 들은 내용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얘기도 솔직하게 해줬다. 회사 측이 들었다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 이야기가 포함돼 있었다. 개인적 의견임을 전제로 “회사와 극단적이고 장기적인 대립은 피하면서 ‘밉지 않게 챙길 건 챙기고’ 아직 시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 외부에서 대안을 빨리 찾아보는 게 좋을 수 있다”라는 말을 포함해 냉정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해줬다. 결국 더 이상의 별다른 해프닝 없이 문제는 잘 봉합됐다. 

저성과자 이슈의 본질

이 사안에서 회사는 두 가지 실수를 했다. 성과 이슈가 있었던 구성원에 대해 평소 관리를 하지 않은 것과 매우 민감한 메시지를 별다른 전략과 준비 없이 서툴게 전달한 것이다. 성과에 이슈가 있는 임직원, 포괄적 표현으로 ‘저성과자’라고 칭할 수 있는 대상에 대한 관리는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채용(선발) 시 확신이 없음에도 타협해서 뽑은 경우가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연후에 평소에 입체적인 관찰과 피드백 등을 통해 정기적 관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내부 인사이동을 하는 상황에서조차 ‘최적의 매칭’을 하지 않는 실수를 또 저지르고는 한다. 

어쩌면 기업은 저성과자에 대한 ‘재정의’ 작업을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 작금에 급변하는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경영 환경에서는 단순하게 목표했거나, 지시한 사안에 대해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것으로만 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성장하려고 하지 않거나 이제는 성장이 완전히 멈춘 사람 역시 총체적인 관리 대상이 될 수 있다. 일은 잘하지만 리더십에 심각한 문제를 보이는 경우 또한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 조직의 문화나 전통을 배제하고 저성과에 대한 한 가지 정의만을 제안하는 것은 무리가 따르지만, 총론적으로 연봉 대비 성과나 업무 효율이 계속 떨어지는 구성원이 있다면 이에 대한 고민과 관리가 필요한 건 분명하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 - 고려대, 한국외국어대 경영학 박사, 전 IGM 세계경영연구원 전임교수, 전 성균관대 글로벌 MBA 스쿨 겸임교수, 전 한국 마이크로소프트 인사총괄임원

이별하는 커뮤니케이션의 포인트

그럼, 저성과자와 해야 하는 ‘엑시트(exit·이별 통보)’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시 앞의 사례로 돌아가 보자. 그 회사는 왜 굳이 이미 퇴사한 필자에게 도움을 청해 문제를 해결했을까. 이 사례에서는 보편· 검증된 협상 커뮤니케이션의 방법론 가운데 한 가지가 사용됐을 뿐이다. 즉, 양자를 중재할 수 있는 그리고 양자가 모두 신뢰할 수 있는 제삼자가 나선 것이다. 비록 회사의 의뢰를 받았지만, 상대방인 A 입장에서도 필자는 비교적 객관적 목소리를 전할 사람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만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상대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서로 혐오하는 사람이라면, 평소에도 사사건건 부딪쳤던 사람이라면, 이미 한 번의 엄청난 충돌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졌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물론 이런 커뮤니케이션은 원칙적으로 직속 매니저가 오너십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때로는 ‘메시지’가 너무 민감하고 반발을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면, ‘메신저’를 바꾸는 작전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엑시트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데 주지해야 할 사항은 더 있다. 언제 이런 메시지를 전달할지, 어디서 해야 할지, 전체 대화 구조를 어떻게 짜야 할지, 첫 말과 마무리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전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또 예상되는 질문과 반발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대책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고 진행해야 한다. 기본적으로 이런 대화는 다소 ‘보수적’이면서 ‘포인트’ 중심의 분명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 보수적이라는 의미는 상대방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지키지도 못할 공수표를 날리며 괜히 상대방의 기대를 올려놔서는 안 된다는 것이고, 포인트 중심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것은 쓸데없는 말을 빙빙 돌리면서 어설프게 서먹함 깨기(아이스브레이킹)로 본말을 흐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회사가 고용한 객관적이고 믿을 만한 ‘메신저’로서 민감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순간에 필자는 아주 기본적인 인간 심리에 대한 이해와 논쟁 해결 방법의 하나를 활용했을 뿐이다. 바로 ‘TPO(시간·장소·상황)’를 바꾼 것이다. 대개 백화점이나 호텔에서 격한 감정으로 불만을 제기하는 고객을 상대할 때 많이 사용하는 기법이다. 화난 고객에게 바로 대응하기보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냉각기를 주기 위해서 상담 TPO를 바꾸면서 자연스럽게 상담해 주는 방식으로, 담당자도 좀 더 노련하거나 의사 결정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을 내세운다.

그 회사도 필자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결국은 TPO에 변화를 줬고, 대화를 부드럽게 전환할 수 있었다. 물론 가장 근저에 깔렸던 것은 사람, 즉 직원에 대한 이해였을 것이다. 이 사람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나 있고, 가장 걱정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정확히 무엇을 원하는지를 관찰과 경청과 대화를 통해 파악해 내는 것은 문제 해결의 기본 요건이다. 

저성과자 관리와 엑시트 커뮤니케이션 전략·기술은 오늘날과 같이 변화의 파장이 극심한 세상에서 리더가 갖추고, 보여줘야 할 가장 중요한 역량 가운데 하나임은 틀림없다. 최종적인 결정과 책임은 리더의 몫이지만, 무턱대고 이 모든 것을 늘 혼자 힘으로, 전통적인 방법으로만 풀 필요는 없다. 리더는 인간 심리에 관한 공부도 해야 할 것이고, 더 많은 관찰을 위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만 한다. 

마지못한 의무적 구성원 성과 평가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사람에 대한 이해와 인적 연결망에 더 유념하면서 개별 성과를 관리하고 전략과 기술을 겸비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한준기 동명대 Busan International College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