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동성을 추구하는 한국은 (기업 지배 구조) 변화가 더 빠를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 변화의 주체 중 하나가 되고 싶습니다.”
동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불리는 MBK파트너스(이하 MBK)의 김병주 회장은 2024년 11월 홍콩 투자은행(IB) 전문 매체 아시아벤처캐피털저널(AVCJ)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고려아연과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의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이유로 ‘지배 구조 개선’을 들었던 김 회장이 앞으로도 이런 투자를 이어갈 뜻을 분명히 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한국 정부의 40억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 외평채 발행을 도왔던 그는 국내 대기업을 대상으로 인수합병(M&A)을 시도하는 ‘기업 사냥꾼’이라는 평가와 주주 이익을 대변하는 행동주의자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2005년 김 회장이 설립한 MBK는 운용 자금이 약 310억달러(약 45조원)에 달해 동아시아 최대 사모펀드로 통한다. MBK는 잠재력 있는 기업을 인수한 뒤 통상 5년 안에 기업 가치를 높여 되팔아 이윤을 남기는 ‘바이아웃(buyout·기업이나 특정 자산을 인수해 완전히 소유권을 확보하는 거래)’을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2013년 ING생명을 인수해 6년 뒤 약 2조원을 남기고 판 사례, 코웨이 재매각으로 약 1조원을 번 사례 등은 김회장에게 ‘M&A의 귀재’라는 명성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지난해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 나서면서 시작된 분쟁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는 데다 5년 전 인수한 국내 2위 대형 마트 홈플러스가 기업(법인) 회생 개시를 신청한 이후 협력 업체 피해 등 후폭풍이 거세지면서 아시아의 대표적인 자선가(‘포브스’ 선정)로도 꼽히는 김 회장이 위기에 몰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홈플러스 사태로 흔들린 성장 동력
MBK는 홈플러스 사태로 성장 동력의 한계에 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2015년 홈플러스를 인수할 당시 사용한 차입 매수(LBO·Leveraged Buyout)가 논란이다.
MBK는 영국 테스코(TESCO)로부터 홈플러스를 약 7조2000억원에 인수하면서 블라인드 펀드로 2조2000억원을 투입하고, 나머지 5조원을 홈플러스 명의로 대출받아 충당했다. 대출 5조원 중 4조3000억원은 은행 선순위 대출이고, 7000억원은 상환전환우선주(RCPS)다. MBK는 대출금을 매출이 높은 점포를 처분해 갚았다. 이 때문에 홈플러스는 알짜 점포가 줄고, 경쟁력도 떨어져 수익이 악화했다. 결국 홈플러스는 2025년 3월 4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 개시를 신청했다.
정부와 정치권은 홈플러스 직원 약 2만 명과 협력 업체, 투자자 피해가 예상되자, 김 회장을 겨냥했다. 국세청과 금융감독원은 최근 MBK 세무조사와 검사에 각각 들어갔다. 3월 19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홈플러스 사태로 제기된 의혹을 확인하기 위해 MBK에 대한 검사에 착수하겠다”며 “불공정거래 조사도 함께 개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금감원은 3월 13일부터 홈플러스 카드 대금 기초 유동화 전자단기사채(ABSTB) 주관사 신영증권과 신용평가사 한국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를 검사 중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3월 18일 홈플러스 사태 긴급 현안 질의를 위해 김 회장과 김광일 MBK 부회장 겸 홈플러스 공동 대표 등을 증인으로 불렀다. 그러나 김 회장은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국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사태 해결을 위해 김 회장이 사재 출연 등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따르면, 김 회장의 자산 가치는 약 97억달러(약 14조1000억원)에 달한다. 논란 속에 김 회장은 사재를 출연하기로 했다. 3월 16일 MBK는 입장문을 통해 “김 회장은 특히 어려움이 예상되는 소상공인 거래처에 신속히 결제 대금을 지급할 수 있도록 재정 지원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MBK가 투자한 기업 중 회생 절차에 들어간 건 홈플러스가 처음은 아니다. 2009년 1000억원에 인수한 철강 구조물 업체 영화엔지니어링도 2016년 실적 악화로 기업 회생 절차를 맞았고, 2017년 초 500억원대에 유암코자산운용사에 매각됐다. 홈플러스와 비슷한 방법으로 인수한 케이블 TV 사업자 딜라이브(옛 씨앤앰)의 경우는 10년 이상 투자금이 묶인 사례로 꼽힌다. MBK는 외부 투자금과 대출을 통해 인수 대금을 마련했는데, 인수 후 대출금을 갚느라 장기 투자에 소홀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2008년 맥쿼리와 함께 총 2조2000억원에 인수했던 딜라이브는 인수 대금을 제때 상환하지 못해 2016년 채권단으로 경영권이 넘어가 버렸다. MBK가 2013년 약 1조원에 인수한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도 12년째 재매각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네파 인수 대금 중 대출은 약 4000억원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앤컴퍼니·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기업 사냥꾼 이미지↑
MBK는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에 개입해 내부 갈등을 조장했다는 비판과 함께, 기업 사냥꾼 이미지를 더욱 키웠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은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남 조현식 부회장과 차남 조현범 회장 간 갈등으로 촉발됐다. 2022년 MBK는 장남 조현식 부회장 측과 손잡고 한국앤컴퍼니 지분 일부를 매입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MBK가 재무적 투자자(FI)로 참여해 조현식 부회장을 지원하고, 향후 지분 확대 등으로 경영권을 확보하려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MBK가 단순 FI가 아닌, 경영권확보를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면서 논란이 일었다. 조현범 회장 측은 “MBK가 경영권 분쟁을 부추기고 있다”라고 반발했다.
MBK는 영풍과 손잡고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도 개입 중이다. 고려아연은 세계적인 비철금속 생산 업체로, 고려아연과 영풍그룹 오너 일가가 주요 주주다. 양측 간 경영권 갈등이 최근 불거지면서 MBK가 이 틈을 타 분쟁에 뛰어들었다. MBK는 2024년 9월 영풍그룹으로부터 고려아연 지분 일부를 사들여 경영권 확보를 시도했고, 이후 공개 매수로 추가 지분 확보를 추진해 갈등이 심화했다. 고려아연 측은 이에 대해 “MBK가 투기 자본을 등에 업고 기업을 약탈하려 한다”고 했다.
포브스 선정 '아시아 자선가' 김병주…한국에선 유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