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로완 볼보자동차 최고경영자(CEO)가 3월 5일(현지시각) 스웨덴 베름되 아티펠라그 미술관에서 플래그십 전기 세단 ES90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볼보자동차
짐 로완 볼보자동차 최고경영자(CEO)가 3월 5일(현지시각) 스웨덴 베름되 아티펠라그 미술관에서 플래그십 전기 세단 ES90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볼보자동차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중국 소작농과 결혼했다.’ 중국 지리(吉利)자동차(이하 지리)가 2010년 볼보자동차(이하 볼보)를 인수했을 때 리수푸(李書福) 지리 회장이 한 말이다. 사진관과 냉장고 사업으로 생계를 꾸리던 리 회장이 자동차 사업에 뛰어든 건 1990년대 말이었고, 인수 당시 볼보 매출이 지리의 20배가 넘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당시 볼보의 상황은 비관적이었다. 2009년 회계연도 기준 영업 손실이 6억5300만달러(약 9480억원)에 달했다. 1970년대 인기 팝그룹 ‘아바(ABBA)’와 함께 ‘스웨덴의 자존심’ 이었던 볼보는 이에 앞서 1999년 미국 포드자동차(이하 포드)에 인수됐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여파로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린 포드가 구조조정에 돌입하면서 다시 한 번 주인이 바뀌게 된다. 당시 포드가 내놓은 매물에는 인도 타타그룹으로 넘어간 재규어·랜드로버도 있었다.

포드의 볼보 인수 가격은 65억달러(약 9조4380억원)였지만 11년 뒤 지리의 인수 가격은 18억달러(약 2조6136억원)에 불과했다. 1927년 창업 후 줄곧 안전한 차의 대명사로 인식된 볼보였기에 골수 팬이 적지 않았지만 애매한 포지셔닝이 문제였다. 벤츠·BMW 등 럭셔리 브랜드와는 큰 격차가 있었고, 그렇다고 폴크스바겐·도요타와 경쟁하자니 생산능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볼보의 위상은 180도 달라졌다. 2009년 33만 대였던 승용차 판매가 2024년 76만 대를 넘어서면서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매출은 같은 기간 124억달러(약 18조48억원)에서 4002억스웨덴크로나(약 57조7650억원)로 세 배 증가했다. 2009년 영업 손실이 수천억원에 달했던 부실기업에서 2024년에는 270억스웨덴크로나(약 3조8956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한 글로벌 우량 기업으로 변모했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역대 최대 규모다.

2021년에는 스웨덴 증시에 상장하면서 1580억스웨덴크로나(약 22조800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인수 당시보다 15배 넘게 몸값을 불린 셈이다. 볼보를 인수한 리 회장의 보유 자산(3월 19일 ‘포브스’ 추산 기준)은 188억달러(약 27조2976억원)에 이른다. 퇴물 취급받던 세계적인 영화배우와 중국 소작농의 행복한 결혼 생활 비결은 뭘까.

성공 비결 1│독립 경영 보장한 투트랙 전략

리 회장은 인수 초기부터 볼보를 벤츠나 BMW 같은 명실상부한 프리미엄 브랜드로 키우기로 결심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80여 년 역사의 ‘스웨덴 자동차 기업’이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건드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연구개발(R&D)이나 생산 분야에서 협력하되 브랜드 이미지는 따로 독립적으로 구축했다. 볼보 경영진의 자율권도 보장했다.

지리는 볼보 인수 후 5년간 R&D에만 약 120억달러(약 17조4240억원)를 쏟아부으면서 공장 증설 등 설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2013년 중국 청두에 한 해 12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자동차 공장을 세웠고, 이와 함께 스웨덴과 벨기에 공장에서 생산을 계속하겠다며 노조를 설득했다.

적극적인 투자가 뒷받침된 자율 경영은 기존 볼보의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 중국에서 급성장하는 이상적인 결과로 이어졌다. 중국에서는 친숙한 자국 업체로, 중국 밖에서는 스웨덴 기업으로 포지셔닝하는 ‘투트랙 전략’이 결실을 본 것이다.

성공 비결 2│기술 흐름 염두에 둔 인력 구성

지리로부터 자율권을 보장받은 볼보 경영진은 볼보가 진정한 럭셔리 브랜드로 거듭나기 위해 인력 구성부터 달리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에 스테판 자코비 당시 최고경영자(CEO)와 비외른 살스트롬 인사 총괄 사장(CHRO)을 중심으로 ‘새로운 피’ 수혈 작업에 돌입했다. 2011~2015년 R&D 인력만 3000명을 충원했고 영업 인력도 확충했다.

비(非)자동차 업계 출신이 두드러지게 많았다는 점이 당시 인사의 특징이었다. 구글의 세일즈와 마케팅 담당자 출신도 있었고 전직 노키아 엔지니어도 포함됐다. 살스트롬은 2018년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인터뷰에서 “오늘날의 자동차는 10년 전과는 전혀 다르다”며 “예전에는 기계공학 전문가가 많이 필요했지만, 요즘은 소프트웨어(SW) 엔지니어가 더 도움 된다. 자동차가 컴퓨터처럼 변해버렸기 때문”이라며 당시를 회고했다. SDV(Software Defined Vehicle·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 시대의 도래를 간파한 것이다. 

성공 비결 3│안전, 안전, 또 안전

지리가 볼보를 인수했을 당시 최대 관심사 중 하나는 중국 업체로 넘어간 볼보가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차’라는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여부였다. 볼보는 창업 초기부터 스웨덴의 춥고 거친 기후와 열악한 도로 사정을 견딜 수 있는 안전한 차를 만드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지리는 볼보 인수 이후에도 계속해서 혁신적인 안전 기술을 선보이며 우려를 불식시켰다. 2012년 제네바 모터쇼에서 ‘뉴 V40’을 출시하며 선보인 보행자 에어백과 2015년 ‘올 뉴 XC90’을 출시하면서 소개한 세계 최초의 도로 이탈 보호 시스템(Run-off Road Pro-tection)이 대표적이다.

보행자 에어백은 차량이 보행자와 충돌했을 때 보닛에 설치된 에어백이 작동해 보행자가 받는 충격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도로 이탈 보호 시스템은 차량이 급제동과 긴급 회피 행동 같은 긴박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면 이를 감지해 작동한다. 안전벨트를 통해 탑승자의 상체를 충돌이 일어나는 반대 방향으로 고정하며, 좌석에 장착된 충격 흡수 장치가 작동된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볼보의 스포츠세단 ‘올 뉴 S60’은 2012년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이 실시한 종합 안전성 검사에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획득했다. 콤팩트 SUV인 ‘더 뉴 볼보 XC40’은 2018년 7월 유럽의 차량 안전도 평가 기관 유로앤캡 안전성 평가에서 역시 최고 등급인 별 다섯 개를 획득했다. 2021년 미국 고속도로안전보험협회(IIHS)의 충돌 안전 테스트 평가에서 사상 최초로 전 차종이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OP SAFETY PICK+)’에 선정되며 독보적인 안전성을 입증했다. 

Plus Point

100년 기업 볼보車는 어떻게 '안전의 대명사'가 됐을까

1927년 창업 이후 볼보는 늘 ‘안전’을 강조해 왔다. 스웨덴 베어링 회사 SKF에 함께 근무했던 창업자 구스타프 라르손과 아서 가브리엘슨은 어느 날 식당에서 바닷가재가 땅에 떨어진 뒤에도 멀쩡한 모습을 목격했다. 둘은 스웨덴의 길고 혹독한 겨울에도 버틸 수 있는 “가재처럼 튼튼한 차를 만들자”고 의견을 모으게 된다. ‘볼보’는 라틴어로 ‘나는 구른다’라는 뜻이다. 둘은 겨울이 길고 추운 데다 지형까지 험한 스웨덴에 독일·프랑스·영국에서 만든 차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사소한 사고나 고장도 운전자와 탑승자의 목숨을 위협한다고 여겼다. 볼보가 화려하고 폼나는 디자인보다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안전’에 집중한 이유다.

볼보를 안전의 대명사로 세계에 각인시킨 모델은 1959년 출시한 PV544다. 3점식 안전벨트를 처음 적용한 모델이다. 볼보는 이 디자인의 특허를 포기해, 모두가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했다.

이후에도 안전을 위한 볼보의 노력은 계속됐다. 1987년에는 에어백을 차량에 도입했고, 1994년에는 사이드 에어백을 선보였다. 1998년에는 세계 최초로 전복 시 운전자와 탑승자 머리를 보호하는 커튼형 에어백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