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1월 한국은 아시아 최초로 국가 단위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ETS·Emissions Trading Scheme)를 도입했다. 올해로 시행 10년을 맞이한 ETS는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권을 할당해 범위 내에서 배출을 허용하되, 부족하거나 남는 배출권은 다른 기업과 거래하도록 허용하는 제도다.
지난 10년간 ETS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도입 초기 566만t에 불과했던 배출권 거래량은 지난해 기준 1억1124만t으로 약 20배 정도 증가했으며, 현재 69개 업종의 815개 업체가 참여해 국가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74%를 관리하는 제도로 성장했다.
기업의 인식 변화도 눈에 띈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가 2020년 10월 ETS 3차 계획 기간(2021~2025년) 시작을 앞두고 실시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82%가 ‘배출권거래제가 잘 정착되었다’고 평가했다. 기업은 정부가 1·2차 계획 기간에 제도적 허점을 지속적으로 보완해 왔으며, 기업 내부적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인식이 확산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탄소 중립 실현 위한 ETS 개선 3대 과제
2050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을 선언한 한국에서 ETS의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ETS는 단순한 감축 규제를 넘어 기업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고려해 온실가스 감축 투자를 추진하도록 유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지난 10년의 경과를 되돌아보고, 앞으로 ETS가 더욱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개선해야 할 방향을 모색할 시점에 와 있다.
1│조기 감축 실적
조기 감축 실적은 2015년 ETS가 시행되기 전 기업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인 성과를 말한다. 정부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2010년 4월 ‘저탄소 녹색 성장 기본법’을 제정하고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했다. 이에 기업은 자발적 탄소 감축 활동을 추진했고, 정부는 이에 대한 보상으로 ETS 도입 시 조기 감축 실적을 인정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기업의 조기 감축 실적은 100%가 아닌 40% 정도만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1차 계획 기간(2015~2017년) 조기 감축 실적 보상을 위해 정부가 책정한 예비분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이에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선도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은 기업보다 배출권을 적게 할당받는 역차별이 발생했다.
2│내부 감축 실적
내부 감축 실적은 ETS 참여 기업이 기업 내부적으로 탄소 감축 사업 등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인 성과를 말한다. 내부 감축 실적 인정 제도는 탄소를 많이 감축하면 할수록 차기 계획 기간에 배출권 할당이 줄어드는 ‘배출량 기준 할당 방식(GF·Grand Father-ing)’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마련됐다.
문제는 1차 계획 기간 기업이 실시한 감축 투자(약 600건) 중 약 80%가 내부 감축 실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온실가스 감축량에 대한 산정 방법론이 없거나,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 것이 불인정 사유의 대부분이었다. 이에 또다시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선도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손해를 보는 상황이 발생했다.
3│외부 감축 실적
외부 감축 실적은 ETS 참여 기업이 자사가 아닌 ETS 적용을 받지 않는 곳에서 추진한 감축 사업을 통해 온실가스를 줄인 실적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외부 감축 실적을 상쇄 배출권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이는 할당 배출권과 같이 자사의 목표 달성에 사용하거나 탄소 시장에서 거래도 가능하다. 특히 정부는 국내 기업의 해외 온실가스 감축 사업 진출을 지원하고, 친환경 투자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에 노력한 기업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겠다고 약속했다.
문제는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 추진으로 해외 감축 사업에 적극 투자한 기업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해외에서 감축 목표(11.3%) 대부분을 국내에서 감축하는 방향으로 선회했으며, 상쇄 배출권 사용 한도를 10%에서 5%로 축소했다. 이에 해외 감축에 선도적으로 투자한 기업이 자사의 감축 투자 사업의 인정 여부를 두고 속앓이를 했다.
외부 감축 사업은 개발부터 배출권이 나올 때까지 최소 3년은 걸리고, 해외 감축 사업은 이보다 더 긴 시간을 필요로 한다. 특히 해외 감축 사업은 유치국과 유엔의 승인을 받고 실제로 인증 실적을 발행하기 시작하면 인증 유효기간이 최소 10년에서 최대 15년이다. 하지만 계획 기간마다 상쇄 배출권 제출 한도가 바뀌다 보니, 사업자는 정책의 불확실성으로 투자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온실가스 감축, 부담 아닌 기회로 인식할 수 있어야
ETS는 지난 10년 동안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핵심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으며, 기업이 탄소 감축을 경영 전략에 포함하도록 유도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러나 ETS가 보다 효과적으로 운용되기 위해서는 기업의 감축 노력이 공정하게 인정받고, 투자가 지속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특히 위에서 언급한 조기 감축 실적, 내부 감축 실적, 외부 감축 실적 등과 관련된 문제는 기업의 감축 투자를 위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실제로 대한상의에서 2020년 배출권거래제 참여 기업을 대상으로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온실가스 감축 투자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기업은 36%에 그쳤다. 대한상의는 배출권거래제 계획 기간마다 기업의 대응 실태를 조사했는데, 1차 계획 기간에는 76%, 2차 계획 기간(2018~2020년)에는 63%가 온실가스 감축 투자 계획이 있다고 응답한 바 있다.
ETS가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을 부담이 아니라 기회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즉, 탄소 감축 노력이 배출권 확보와 비용 절감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경제적 이익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ETS의 설계가 지속적으로 보완되어야 할 것이다. 결국, ETS의 성공적인 운용을 위해서는 ‘감축 투자=인센티브’라는 공식이 확립되어야 한다.
앞으로 ETS가 보다 정교하게 개선되고, 기업에 확실한 감축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발전한다면, 2050 탄소 중립 목표 달성에 있어 더욱 강력한 정책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ETS가 기업에 단순한 규제가 아닌 탄소 중립을 위한 경쟁력 강화 도구가 될 수 있도록 정부와 기업이 더욱 협력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