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이 미국의 비축 대상 전략 자산으로 지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3월 6일(이하 현지시각) 연방 정부가 민형사상 몰수 절차로 확보한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 금으로 전환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다만 시장에서 기대했던 ‘신규 암호화폐 매입’ 조치는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2021년 “비트코인은 사기처럼 보인다”면서 “본질적으로 달러와 경쟁하는 통화라는 점에서 좋아하지 않는다”며 적대감을 보였다. 그러나 2024년 대선 땐 “미국을 가상 자산 수도로 만들겠다”며 암호화폐 친화적인 공약을 발표했다. 취임 이후에도 친암호화폐 인사를 핵심 보직에 앉혔다. 비트코인은 트럼프 대통령 취임과 함께 10만9000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하락세로 돌아서 2월 28일 7만8000달러대로 떨어졌다. 미국의 이번 행정명령 발표로 비트코인 시세는 9만달러 선을 일시적으로 회복했으나, 곧 8만달러대로 다시 내려갔다. 저자는 미국이 비트코인을 지지하면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기축통화 지위에서 파생되는 강달러와 무역적자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모순적인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는데, 비트코인이 달러의 지배력을 위협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 장관은 3월 7일 트럼프 대통령 주재로 백악관에서 열린 ‘디지털 자산 서밋’에서 “우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지시했듯이 미국(달러)이 계속해서 세계의 지배적인 기축통화가 되도록 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가격 변동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설계된 암호화폐)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테이블코인 사용이 늘면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를 지탱하기 위해 담보로 하는 달러 수요가 늘 것이라는 판단이다.
사진 셔터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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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연방법 집행 과정에서 압수한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비축하는 행정명령에 3월 6일 서명했다. 비트코인의 총공급량이 2100만 개로 제한된 상황에서, 트럼프 정부는 미국이 새로운 가치 저장 수단의 주요 보유국으로서 선점 효과를 확보하길 원하고 있다. 압수된 비트코인만으로는 원하는 보유량을 달성하기 어려운 만큼, 트럼프 정부는 시장에서 직접 비트코인 구매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만 이런 움직임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으로 고려하는 국가가 늘고 있다. 브라질에선 에로스 비온디니의원이 외환보유액의 5%를 비트코인으로 보유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부탄은 비트코인을 다량 보유하고 있으며, 부탄의 ① 겔레푸 마음 챙김 도시(Gelephu Mindfulness City)는 암호화폐를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보유하고 있다.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은 지속적으로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매입하고 있으며, 홍콩 입법회 의원은 비트코인을 준비자산에 추가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중국은 비밀리에 비트코인을 축적하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스위스의 최근 국민 발의는 스위스국립은행이 비트코인을 보유 자산에 포함하도록 요구했는데, 마르틴 슐레겔 스위스국립은행 총재가 변동성, 유동성, 보안 문제를 이유로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준비자산을 다변화하기로 한 결정은 자국 통화(달러) 패권의 미래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더 많은 국가나 기관이 달러 대신 비트코인을 보유하면, 장기적으로 글로벌 달러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다른 가치 저장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은 달러에 대한 신뢰를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와 그로 인한 이점을 약화시킬 수 있다. 국제적으로 강한 달러 수요가 없다면, 미국은 저금리로 돈을 찍어내고 차입하는 특권을 상실하게 된다. 그러므로 비트코인을 지지하면서 달러의 지배력을 방어하는 것은 절묘한 균형을 요구한다.

비트코인 정책과 더불어, 트럼프 정부는 무역정책도 근본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미국은 캐나다와 멕시코산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했으며, 대중국 평균 관세율을 39%로 끌어올렸다. 또한, 유럽산 농산물에도 유사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위협하고 있다. 이런 정책은 이미 시장에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며, 상대국의 무역 보복을 초래했다. 정책은 자주 지연되고 수정돼 시장 혼란을 가중한다.

캐나다와 멕시코는 미국과 무역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관세는 그들(캐나다·멕시코)의 수출과 달러 유입을 감소시키고, 결국 자국 통화를 약화시킨다. 반면 중국은 수출 기반이 다양하고 고정환율제를 갖추고 있다. 미국의 관세 영향을 완화하며 위안화 가치를 방어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은 중국산 중간재의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관세 인상은 미국 내 생산 비용을 증가시켜 소비자물가와 인플레이션율을 높이면서 달러의 매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아울러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은 미국 시장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 그의 위협은 유럽연합(EU)이 외환 보유를 더욱 다변화하고 대체 시장을 모색하게 했다. 달러 자산을 보유하려는 투자자가 줄면서, 달러는 약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카를라 노를뢰프 토론토대 정치과학과 교수 - 현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
카를라 노를뢰프 토론토대 정치과학과 교수 - 현 미국 싱크탱크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

미국이 비트코인을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채택하고 고관세 무역정책을 추진하면서 달러의 글로벌 위상을 위태롭게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국가는 달러 외 유로화, 엔화, 파운드화, 금 등 다양한 준비자산을 비축한다. 미국이 비트코인을 공식적으로 지지하면, 글로벌 준비자산이 달러 비축에서 벗어나는 흐름을 의도치 않게 가속할 수 있다.

트럼프 정부는 외국이 미국 경제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다른 힘이 작용할 것이라고 베팅하는 듯하다. 외국의 생산자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인하하거나 외국 통화 가치가 미국 관세 효과를 상쇄하기 위해 낮아질 것이라는 가정이다. 이렇게 되면 부담이 미국 소비자와 생산자가 아닌 외국에 전가된다. 이것이 소위 마러라고 협정의 배경이 되는 사고방식이다. 처벌적인 관세를 활용해 달러를 약화시키고, 미국의 차입 비용을 줄이며, 제조업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달러의 글로벌 지배력을 유지하겠다는 전략이다. 플라자 합의나 ② 루브르 합의 때 미국은 환율을 조정하기 위해 주요국과 협의했다면, 트럼프 정부는 주요 교역국과 해외 중앙은행이 자국 통화를 달러 대비 약세로 유지하도록 강요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하는데, 미국의 경제 파트너가 협조를 거부할 경우 계획은 흐트러질 수 있다.

트럼프 정부 전략의 상당 부분은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으로 지명된 스티븐 미란이 2024년 11월 발표한 논문에서 출발했다. 미란 위원장은 미국 정부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통해 상당한 혜택을 보고 있는 국가로부터 수입하는 제품에 관세를 부과함으로써, 지나친 물가 상승 없이 관세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 외교·금융 수단을 동원해 외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하거나 외환 스와프를 활용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미국 내 물가 상승을 억제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미란 위원장의 구상에 따르면, 정교하게 조정된 관세와 환율 관리는 달러의 글로벌 지위를 공고히 하면서도 정부 수입을 증대시킨다.

좋은 생각이다. 하지만 비트코인 도입을 동반한 마러라고 협정은 쉽게 역효과를 낼 수 있다. 대체 준비자산을 지지하는 것은 달러의 지배력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 트럼프 정부의 관세전쟁은 미국의 파트너가 순응할 것이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한다. 만약 그들이 미국과 디커플링(decoupling·탈동조화)을 시작하고, 새로운 무역 및 안보 동맹을 모색하고, 준비자산을 대규모로 비트코인이나 다른 통화로 다변화한다면 모든 예상은 틀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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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도시 개발 프로젝트로, 특별 행정구역에 지정돼 있다. 지그메 케사르 남기엘 왕축 부탄 국왕은 2023년 12월 “부탄이 남아시아의 경제 허브가 되겠다”며 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부탄의 불교문화와고유한 경제철학인 국민총행복(GNH) 지수에 가치를 두고 설계됐으며, 싱가포르보다 넓은 약 1000㎢ 규모로 조성될 예정이다. 겔레푸 마음 챙김 도시는 올해 1월 성명을 내고 “비트코인, 이더리움 같은 암호화폐를 전략적 비축자산으로 보유하겠다”며 “특별 행정구역은 혁신과 신기술을 강조하는 만큼, 블록체인 기술의 사용을 촉진하고 지원하겠다”고 발표했다.

1985년 플라자 합의에 이어 1987년 프랑스 파리에서 6개국(프랑스·서독·일본·캐나다·미국·영국)이 체결한 합의다. 플라자 합의 이후 달러 가치가 급속히 떨어지자, 달러 가치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체결됐다. 플라자 합의 직후 6주간 엔·달러 환율은 14%, 마르크·달러 환율은 8% 급락했고, 이후 루브르 합의까지 엔·달러 환율은 28.5%, 마르크·달러 환율은 35.1% 추가 하락했다. 루브르 합의를 통해 미국은 재정 긴축으로 달러 가치 하락을 막고, 일본과 독일은 내수 부양으로 엔화 및 마르크화의 상승을 막기로 했다.

카를라 노를뢰프 토론토대 정치과학과 교수

정리=고성민 기자

정리=박서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