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키 17. /사진 워너 브라더스
미키 17. /사진 워너 브라더스

지난 2월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 은 2054년의 우주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SF 영화다. 감독이 ‘발냄새 나는 SF’라고 표현했듯이, 영화는 첨단 우주선과 외계 생명체가 등장하는 화려한 스펙터클 속에서도 인간 존재의 의미를 깊이 탐구한다.

주인공 미키는 대출로 시작한 사업이 실패하고, 사채업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지구 반대편까지 채무자를 추적하는 그들의 집요함을 떠올리면, 미키에게 남은 선택지는 지구를 떠나는 것뿐이다. 그는 식민지 행성 개척단에 합류하려 하지만, 우주선에 탑승하려면 자신의 쓸모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특별한 기술도, 내세울 재능도 없다.

출항을 앞두고 궁지에 몰린 미키는 내용을 제대로 읽어보지도 않은 채 ‘익스펜더블’ 임무에 충동적으로 지원한다. 그는 이를 통해 가까스로 우주선에 오르는 데 성공하지만, 살아남았다고 자유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앞에는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소모품’ 으로서의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영원히 지속되는 삶'의 양면

식민지 행성 개척단에서 미키의 임무는 반복해서 죽는 것이다. 그는 실험실의 쥐처럼 다른 이를 대신해 우주 방사능에 노출되거나 백신 개발을 위해 치명적인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위험한 실험이나 탐사 도중 사망하면, 그의 신체는 사전에 저장된 정보를 바탕으로 생체 프린터를 통해 재생산된다.

미키의 몸은 잉크젯 프린터가 작동하는 듯한 소리와 함께 출력된다. 인쇄 중인 종이가 앞뒤로 움직이다 멈추기를 반복하듯, 그의 몸도 같은 방식으로 생성된다. 출력된 몸에 사망 전 기억이 이식되면, 이전과 다를 바 없지만 새로운 번호를 가진 미키가 탄생한다. 여기에서 사용되는 기억 저장 장치는 단단한 벽돌 형태로 묘사되며, 종이처럼 미세하게 진동하는 몸과 시각적으로 대비된다. 이는 끊임없이 축적되는 기억과 소모되는 육체의 대조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처럼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미키의 삶은 ‘불로장생’과 비교될 수 있다. 늙거나 병들지 않고 장수하는 것과 끝없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것은 모두 ‘삶이 영원히 지속된다’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후자의 삶은 매번 임시적이라는 점에서 전자와 구별된다. 불로장생이 인류가 동경해 온 이상향인 반면, 미키의 삶이 비극적인 이유는 임시적인 존재를 향한 사회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영화 속 인물은 매번 자신을 위해 희생하는 미키를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거나 존중하지 않는다. 어차피 그는 사라질 것이고 동시에 다시 태어날 것이기에, 순간의 미키는 무한한 시간을 잇는 하나의 점으로 취급될 뿐이다.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미키에게 죽는 기분을 묻고, 그의 시신을 종이 폐품처럼 용광로에 던진다. 그러나 미키 자신과 그의 연인 나샤는 함께하는 모든 순간에 의미를 둔다. 나샤는 다시 태어날 미키가 아니라, 지금 눈앞에서 죽어가는 미키를 애도한다. 그를 소모품으로 대하는 사람들과 대비된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 - 코넬대 건축대학원 석사, 서울대 건축학과 출강, 전 헤르조그 앤드 드 뫼롱스위스 바젤 사무소 건축가

임시성의 의미를 구축하는 파빌리온

영국 런던 켄싱턴 가든에 있는 서펜타인 갤러리의 앞마당은 지난 25년 동안 23개의 건축물이 자리했다가 사라진 독특한 공간이다. 매년 여름, 이곳에는 갤러리 야외 행사를 위한 파빌리온이 세워지며, 10월이 되면 흔적 없이 철거된다. 영화 속 미키가 반복적으로 재생산되듯, 이 땅에도 매년 새로운 파빌리온이 설치되고 해체되는 순환이 이어진다.

서펜타인 파빌리온은 2000년 여름, 갤러리 후원금 모집 행사에서 건축가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천막 구조물이 호응을 얻으며 시작됐다. 이후 갤러리는 해마다 세계적인 건축가를 초청해 파빌리온을 설계하도록 했다. 이 프로젝트에서 임시성은 단순한 소모가 아니라, 그 건축적 가능성을 모색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영화 속 미키의 존재 방식과 차이를 보인다. 

건축가들은 파빌리온의 임시성을 활용해 실험적인 재료와 형식을 시도한다. 예를 들어, 칠레 건축가 스밀리안 라딕은 2014년 파빌리온에서 선박 제작에 쓰이는 유리섬유 강화 플라스틱을 활용한 알껍데기 형태의 건축물을 선보였다. 거친 돌 위에 가볍게 얹힌 이 반투명 구조물은 두께가 단 13㎜에 불과하다. 낮에는 자연광을 부드럽게 걸러 들이고, 밤이 되면 내부의 빛을 은은하게 퍼뜨려 공원 속 조명처럼 기능한다.

2013년 일본 건축가 소우 후지모토는 20㎜ 두께의 철제 각관을 조밀하게 엮어, 구름처럼 흩어지는 추상적인 공간을 조성했다. 2015년에는 스페인 건축가 듀오 셀가스카노가 형형색색의 불소수지 필름을 연결해, 지하철 터널처럼 복잡하게 얽힌 파빌리온을 구현했다. 한편, 지나치게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실현되지 못한 사례도 있다. 2004년, 네덜란드 건축가 그룹 MVRDV는 갤러리 전체를 산처럼 덮는 파빌리온을 제안했으나, 시간과 비용의 제약으로 계획안으로만 남았다.

1 스밀리안 라딕의 2014 파빌리온. 2 조민석의 2024 파빌리온. 3 셀가스카노의 2015 파빌리온.  4 소우 후지모토의 2013 파빌리온. /사진 서펜타인 갤러리
1 스밀리안 라딕의 2014 파빌리온. 2 조민석의 2024 파빌리온. 3 셀가스카노의 2015 파빌리온. 4 소우 후지모토의 2013 파빌리온. /사진 서펜타인 갤러리

임시성에 바탕을 둔 지속 가능성

일정 기간만 존재하는 파빌리온의 특성은 재사용할 수 있는 재료와 구축 방식의 탐구로 이어진다. 건축가들은 콘크리트 타설처럼 재사용이 어려운 공법을 피하고, 조립과 해체가 쉬운 목재와 철재 구조를 모색한다. 실제로 많은 파빌리온이 해체된 후 폐기되지 않고 다른 장소로 이전되어 ‘두 번째 삶’을 이어간다. 예를 들어, 2014년 라딕의 파빌리온은 런던 근교 하우저앤드워스 갤러리 정원에 자리 잡아 휴식과 이벤트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파빌리온의 임시성은 시공과 해체 과정에서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실험으로도 확장된다. 역대 가장 친환경적인 사례로 평가받는 미국 예술가 시어스터 게이츠의 2022년 파빌리온은 외부로 드러나지 않는 콘크리트 기초까지 고려해, 기초에 사용되는 시멘트 양을 최소화하고, 상부 목재 구조를 경량화해 탄소 발자국을 줄였다. 또한, 서펜타인 파빌리온 최초로 콘크리트가 아닌 목재 구조 바닥을 적용해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였다.

공동의 기억과 순간의 의미

파빌리온은 일상적인 장소에 고유의 감각을 중첩해 의미를 환기하고, 사람과 장소, 사람과 사람 간 새로운 관계를 형성한다. 이에 파빌리온은 미학적 형식을 넘어, 상호 교류를 위한 공동의 장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여기에서 파빌리온의 임시성은 ‘지금, 여기’의 경험을 강조하며, 개인의 기억이 축적되어 공동의 기억을 형성하는 토대가 된다.

2024년 서펜타인에 초대된 건축가 조민석은 이러한 파빌리온 본연의 기능을 ‘군도의 여백’이라는 개념으로 재해석했다. 크기와 형태가 각기 다른 다섯 개의 공간이 군도를 이루며, 원형의 빈 공간을 방사형으로 감싸는 구조다. 한옥의 마당처럼 비워진 중앙부는 갤러리, 티하우스, 도서관, 놀이터, 강당을 유연하게 연결하며, 이용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한다. 마당의 중심에서는 각 공간에서 펼쳐지는 활동이 파노라마처럼 연결되고, 그 사이 공간을 통해 공원의 일상적인 풍경이 자연스럽게 중첩된다. 시각적 경험에 더해, 햇빛을 머금은 목재의 촉감과 계절의 순환을 표현한 작곡가 장영규의 사운드가 어우러지며, 순간에 대한 감각적 경험의 깊이를 확장한다.

영화 속 미키는 우리가 맞이하는 매일의 ‘오늘’과 닮았다. 오늘이 지나면, 내일은 또 다른 날짜의 오늘이 찾아온다. 이러한 반복 속에서, 영화와 파빌리온은 순간의 가치를 일깨운다. 그들은 우리에게 오늘을 단지 소모하며 살아가는 것인지, 아니면 그 속에서 의미를 찾아가고 있는지 질문한다. 

강현석 SGHS 설계회사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