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월 26일 코스닥 상장사 아미코젠 주주총회(주총)에서 창업자 신용철 회장의 사내이사 해임안이 통과됐다. 주총 참석률이 60%를 넘는 가운데, 소액주주 약 30%의 표가 결집한 결과다. 해임된 사내이사 자리에는 소액주주 대표가 선임됐다. 2022년 이후 3년 연속 100억원대 적자를 낸 아미코젠은 부동산 부실 투자 등으로 경영 책임론이 불거졌고, 신 회장은 소액주주·경영진과 갈등 끝에 자리에서 물러났다. 대주주가 주총에서 소액주주에게 표결로 패한 이례적 사례로, 주주 행동주의가 경영진 교체로 이어진 셈이다. 현재 아미코젠은 소액주주 중심의 새 경영진이 회생 방안을 모색 중이다.
# 일본 대표 대기업 히타치제작소(이하 히타치)는 2008 회계연도에 7873억엔(약 8조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일본 제조업 역사상 최대 손실을 냈다. 2009년 4월 취임한 가와무라 다카시 사장은 ‘적자는 악’이라며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일본 정부 연기금 투자 기금(GPIF)과 블랙록 등 글로벌 투자자의 주주 행동주의에 힘입어, 이사회 12명 중 9명을 사외이사로, 이 중 5명을 외국인으로 구성해 독립성과 글로벌화를 확보하며 사업 재편 속도를 높였다. 이사회는 “외국 같으면 해고”라며 경영진에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했다. 히타치는 900개가 넘던 계열사를 300개 수준으로 줄이고, 가전·부품 사업을 매각해 디지털·인프라 중심으로 사업 구조를 재편했다. 이 과정에서 상장 계열사 22개 중 15개는 매각, 7개는 완전 자회사로 편입해 중복 상장의 비효율을 해소했다. 시가총액 12조엔 규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선도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난 히타치는 주주 행동주의로 경쟁력을 강화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영국의 기업 거버넌스 리서치 업체 딜리전트마켓인텔리전스가 발간한 ‘2025 주주 행동주의 연례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한국에서 공개적인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 대상이 된 기업은 66개로 2010년(10개) 대비 여섯 배 이상 폭증하며,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행동주의가 활발한 나라 지위를 2년 연속 유지하고 있다.
2025년 주주 행동주의 캠페인 건수는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2023년의 역대 최대치(77건)를 넘어설 가능성이 제기된다. 행동주의 펀드뿐 아니라 플랫폼을 활용한 소액주주 주주 행동이 늘어난 영향이다. 대한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상장사 300개 중 40%(120개 사)가 최근 1년간 경영진 협의 요청, 주주 서한, 주주 제안 등으로 이뤄지는 주주 관여를 경험했으며. 이 중 ‘소액주주 및 소액주주연대’의 주주 관여 건수가 90.9%로 가장 많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소액주주가 주주 행동주의 새로운 주체로 부상한 것이다. 실제로 2월 25일 기준 온라인 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와 ‘헤이홀더’ 가입자는 12만 명, 주식 보유액은 13조1000억원에 이른다. ‘이코노미조선’은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한국의 주주 행동주의 명암을 짚어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봤다.
주주 가치 훼손에 참지 않는 소액주주
전문가들은 2024년 정부 주도 밸류업(value up·가치 제고) 정책에도 불구하고 증시가 지지부진하자, 이에 대한 실망감이 소액주주의 주주 행동을 자극했다고 분석한다. 2024년 2월 26일 2647.08이던 코스피 지수는 2월 21일 2654.58로 마감해 1년간 0.28% 상승에 그쳤다. 밸류업의 핵심 지표인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96배에서 0.93배로 오히려 하락했다. 이는 상장사 주가가 자산 장부 가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심화됐다는 의미다. 여기에 대기업의 계열사 중복 상장, 상장사 간 주식 교환, 조 단위 유상증자 등 주주 가치 훼손 논란이 잇따르며 주주 행동주의 열기를 더욱 키웠다. 이상목 소액주주 주주 행동 플랫폼 액트 대표는 “주식 투자가 건전한 재테크로 자리 잡으면서 시장에 들어온 투자자가 주주 가치를 훼손하는 기업의 의사 결정에 참지 않고 맞서면서 주주 행동 캠페인이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2025년 정기 주총 시즌 최대 이슈는 집중투표제 도입이다.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가 보유 주식 수만큼 의결권을 특정 후보에게 몰아줄 수 있는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가 지지하는 이사의 선임 가능성을 키우는 수단이다. 3월 31일 열린 코웨이 주총에서는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 제안으로 집중투표제가 안건에 올라 있으며, 국내외 의결권 자문기관과 글로벌 연기금이 찬성 의견을 내고 있어 통과 여부에 관심이 쏠린다.
"지배구조 개선→글로벌 경쟁력↑" 대만 경제 선순환 주목
전문가는 주주 행동주의가 기업 경쟁력 강화로 선순환된 사례로 대만의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지목한다. 대만은 2000년대부터 정부 주도로 이사회의 독립성·기능 강화, 거래 정보 공시 확대, 전자투표 의무화 등을 골자로 한 기업 지배구조 개혁을 추진했다. 대신 법인세와 상속세 등을 대폭 낮췄다. 이에 TSMC 등 대만의 주요 기업은 외국인 사외이사 영입 등으로 이사회를 글로벌 수준으로강화했다. 박유경 네덜란드 연기금 APG 신흥 시장 주식 부문장은 “TSMC 등 대만 기업은 지배구조 개혁을 통해 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대만 개인 투자자는 글로벌화한 자국 기업에 투자함으로써 별도로 해외 주식에 나설 필요가 없게 됐다”면서 “이는 대만 경제에 활력을불어넣고 성장률 제고에도 기여하고 있다” 고 전했다. 실제로 2014년 연평균 8752였던 대만의 가권 지수가 2024년 1만7565로 오르면서,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 신흥 시장 지수(MSCI EM)에서 대만의 비중은 같은 기간 12.91%에서 19.07%(2025년 2월)로 늘었다.
단기 이익 치중 시 기업 경영에 '독'
주주 행동주의가 기업 가치를 높일 수 있지만, 이를 실행하는 행동주의 펀드가 단기적인 주식 배당 확대, 자산 매각을 통한 이익 실현에 치중하면 기업 경영에 독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주 행동주의로 포장된 사모펀드의 투기 행위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MBK파트너스(이하 MBK)는 최근 부채 상환 부담을 줄이기 위해 홈플러스의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MBK는 기업 가치 제고보다 배당 확대와 자산 매각으로 수익 회수에 집중했고, 결국 충분한 자구 노력 없이 기습적으로 기업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MBK는 손실은 사회화하고 이익은 사유화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자기 뼈가 아닌 남의 뼈를 깎는 행위”라고 말했다.
주주 행동주의 시대, ‘이런 기업’이 타깃 된다
정원석 선임기자
2025년 주총 시즌의 가장 큰 특징은 중대형 상장사를 대상으로 한 주주 행동주의가 활발하게 전개됐다는 점이다. 연초부터 행동주의 펀드, 소액주주연대, 글로벌 연기금 등이 잇따라 주주 제안을 내놓았고, 이 제안이 실제 주총 안건으로 상정되는 사례도 크게 늘었다. 그렇다면 어떤 기업이 주주 행동주의의 타깃이 될까. IBK투자증권은 지난 2월 발표한 ‘임박한 주총 시즌 그리고 행동주의 캠페인’ 보고서에서 주주 환원, 지배구조 개선, 자사주 매입·소각 등이 요구될 수 있는 기업 유형을 제시했다.
1|배당 낮고, 대주주 약할 때
공통적인 특징은 ‘낮은 주주 환원율’이다. 주주 환원이 낮은데 대주주 지분율까지 50% 미만이면, 행동주의 세력이 주총 표 대결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소액주주의 주주 운동으로 배당 성향이 20%까지 올라간 DB하이텍이 대표적이다. 2022년 말 대주주 지분율이 10% 초반대였던 DB하이텍은 소액주주 운동과 행동주의 펀드의 타깃이 됐다.
2|지배구조에 문제 있다면 예외 없어
농심, 오스코텍, 롯데쇼핑 등은 실적보다 지배구조와 내부 거래 문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소액주주와 글로벌 연기금 등 장기 투자자일수록 기업 운영의 투명성과 지배구조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네덜란드 연기금 APG는 단기 실적보다 지속 가능한 지배구조와 주주 권익 보호를 투자 판단의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3|과거에는 잘했지만, 지금은 못하면…
애초에 주주 환원이 낮았던 기업보다 과거에는 적극적이었다가 최근 줄어든 기업이 더 강한 비판을 받는다. 코웨이가 대표적이다. 과거 순이익의 90% 이상을 배당·자사주 소각으로 환원했지만, 최근엔 환원율이 20%대로 떨어졌다. 환원율 하락은 경영진의 의지 변화나 소액주주 무시로 해석되며, 행동주의 개입의 근거가 된다. 권순호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ROE(자기자본이익률)는 높은데 배당은 적고, 현금은 많지만 자사주 소각은 없으며, 최대 주주 지분율은 낮고 이사회가 내부 인사 중심이며 과거보다 주주 환원이 줄어드는 기업은 행동주의의 타깃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