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킹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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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에 치여 결혼 10주년 서프라이즈 선물로 준비하려 했던 여행 예약을 깜빡했다. 다급한 마음에 인공지능(AI) 에이전트에 부탁했다. 예산과 원하는 숙소 종류, 날씨 등을 알려주니 잠시 후 조건에 맞는 추천 일정을 스마트폰 앱으로 보내준다.”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즘과 생성 AI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머지않아 이런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하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술적으로는 당장이라도 접목 가능하다. 고객 프라이버시와 보안 관련 규제 등이 넘어야 할 장벽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사실 여행 산업만큼 AI 기술 접목이 중요한 분야도 없다. 숙소와 음식 등 주요 항목마다 취향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과거 여행 경험과 선호도, 불만 사항 등에 관한 엄청난 양의 고객 정보를 AI를 통해 제대로 분석할 수 있다면 상품과 서비스 경쟁력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본사를 둔 세계 1위 여행 예약 사이트 부킹닷컴의 성공도 AI 기술 경쟁력을 빼면 설명이 어렵다. 부킹닷컴은 미국 코네티컷주 노워크에 본사가 있는 모회사 부킹홀딩스의 핵심 계열사다. 부킹홀딩스는 여행 예약 플랫폼 ‘부킹닷컴’, 할인 예약 플랫폼 ‘프라이스라인’, 아시아 전문 예약 플랫폼 ‘아고다’, 여행 사이트 비교 검색 ‘카약’, 레스토랑 예약 플랫폼 ‘오픈테이블’ 등을 산하에 거느리고 있다. 

부킹홀딩스의 2024년 매출은 237억달러(약 34조6700억원)로 전년 대비 11% 증가했다. 같은 해 순이익은 59억달러로 1년 새 37% 급증했다. 부킹닷컴의 2024년 매출은 71억2000만유로(약 10조4173억원)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루이스 로드리게스(Luiz Rodrigues) 부킹닷컴 한국·일본 총괄은 “부킹닷컴은 지난 20년 동안 여행자와 파트너를 더 잘 돕기 위해 머신러닝과 알고리즘 기술을 서비스에 접목해 왔다”면서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검색·예약·관리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하는 ‘커넥티드 트립(connected trip)’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3월 20일 한국에 온 로드리게스 총괄을 서울 중구포시즌스호텔서울에서 만났다. 브라질 출신인 로드리게스 총괄은 상파울루 주립대와 FIA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소셜커머스 기업 그루폰 일본 지사의 판매·운영 전략 총괄이사 등을 역임했다.

부킹닷컴은 여행 기업이면서 기술 기업이다. 정체성을 어떻게 정의하나.

“사람이 더 자연스럽고 편리하게 세상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킹닷컴의 사명이며, 전 세계 여행사와 여행지를 잘 연결하는 게 우리 경쟁력이다. 그 과정에서 최고의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지난 1월 중순부터 카카오페이와 네이버페이 결제 서비스를 도입한 것은 한국인 사용자에게 최상의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기술 접목의 예로 볼 수 있다.”

AI 기반 알고리즘은 여행 관련 추천 서비스의 핵심 기술이 됐다.

“AI는 이미 모든 것을 바꿔놓고 있다. 부킹닷컴도 그 부분에 많이 투자한다. 지난 20년 동안 여행자와 파트너를 더 잘 돕기 위해 머신러닝과 알고리즘 기술을 서비스에 접목해왔다. AI 관련 기술을 통해 이전과 달라진 새로운 여행 패턴 등을 포착할 수도 있지만, 우리 파트너가 부킹닷컴이 보유한 최고 수준의 AI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부킹닷컴의 기술 개발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궁금하다.

“AI와 보안을 포함해 핵심 기술 개발을 위해 ‘센터 오브 엑설런스(Centre of Excel-lence, excellence·탁월함)’를 운영 중이다. 메인 팀은 본사가 있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고, 영국 맨체스터와 ‘인도 실리콘밸리’ 로 불리는 벵갈루루,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서도 센터를 운영 중이다. 중요한 건 기술이 우리 DNA의 핵심이라는 점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독자적인 툴을 개발해 왔지만, 기술 트렌드 위에 올라서려는 노력은 계속해 왔다.” 

AI 기술은 앞으로 여행 예약 서비스를 어떻게 변화시킬까.

“여행 예약을 할 때 호텔과 항공, 기타 부대시설과 서비스 등을 각각 따로 예약하는 경우가 많다. 항공편이 지연될 경우 새로운 스케줄에 맞춰 다른 일정도 조정해야 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AI 에이전트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면 전체 여행 일정을 늦춰진 항공 일정에 맞춰 단번에 조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검색·예약·관리까지 원스톱 서비스로 제공하는 커넥티드 트립이 가능해진다는 얘기다. 부킹닷컴의 서비스는 이미 그런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AI 에이전트는 일일이 할 일을 지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의 순서와 흐름을 짜고, 활용 가능한 도구를 써서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AI 시스템을 뜻한다. 특정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의사 결정을 하고,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기본적인 서비스 관련 답변 등 운영에 필요한 노력도 AI 기술이 많이 덜어줄 수 있겠다.

“사소하고 반복되는 질문까지 일일이 대응하는 수고를 자동 응답 기능을 통해 덜어줄 수 있다. 아직 테스트 중이긴 하지만 스마트 피처(smart feature) 기능을 이용하면 고객 입장에서 반려동물 동반 가능 객실이나 전망이 좋은 방 등 구체적인 요구 조건이 있을 때 일일이 전화해 물어보는 수고를 안 해도 된다. 호텔 입장에서는 장점을 쉽게 부각할 수 있어 영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행 업계의 인간 일자리를 AI가 빼앗는 건 아닌지 걱정된다.

“20~30년 전 이메일 등장은 혁명과도 같은 변화였다. 시간이 지나 이메일은 이제 모두가 사용하는 일상의 일부가 됐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AI 관련 변화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AI 기술은 일상의 모든 영역에서 드러나지 않게 작동하면서 노동생산성을 높이고, 사람이 더 가치 있고 인간적인 매력이 중요한 곳에서 업무에 집중하도록 도울 것으로 본다. 과도기적인 업무 환경 변화로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겠지만, 대규모 일자리 감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다.”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생성 AI를 활용하기도 하나.

“지난해 12월에 부산에 며칠 일정으로 왔는데, 색다른 경험을 하고 싶어서 생성 AI에 물었더니 경주에 가보라고 했다. 덕분에 경주라는 매력적인 도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고, 부킹닷컴 프로모션까지 생각하게 됐다. 4월에 경주에 한 번 더 갈 것이다. 10월에 경주에서 열리는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영향도 있겠지만, 경주에 대한 관심이 늘어서 어떻게 더 잘 알릴 수 있을지 알아볼 계획이다.”

부킹닷컴 데이터에 따르면, 여행지로서 한국의 위상은 어떤가.

“한국은 잠재력이 매우 큰 시장 중 하나다. 인바운드와 아웃바운드 양방향 모두 그렇다. K팝과 K뷰티 열풍 덕분에 한국을 목적지로 검색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8년 전 일본에서 처음 일하게 됐을 땐 한국에 대해 묻는 사람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일본 외에도 대만과 미국에서 특히 여행 목적지로 한국 관련 검색 트래픽이 많다. 호주, 필리핀, 유럽 국가에서도 다양한 이유로 한국 관련 검색이 증가 추세다. 서울과 부산, 제주 등 전통적인 인바운드 목적지 외에 경주와 고양, 전주 등 다른 지방 도시로도 관심이 확산하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가 국내 인바운드 여행에 미친 영향은.

“아직 한국 관련 검색 트렌드에 큰 변화는 없다. 음식과 드라마, 콘서트 등 긍정적인 부분이 많이 알려져서 그런 것 같다. 한국의 정치 상황이 빨리 안정되길 바랄 뿐이다.”

출신 국가나 문화권에 따라 한국 여행 중 관심 있게 보는 부분도 다를 것 같다.

“유럽 관광객은 한옥과 한식, 전통 시장 등 한국만의 독특한 문화를 경험하는 데 관심이 많다. 한국이라는 나라와 최대한 긴밀히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싶어 한다. 그에 반해 대만과 일본 관광객은 현대적인 TV 드라마 속 한국과 쇼핑에 좀 더 관심이 많은 듯하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