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민규 기자
/ 황민규 기자

인공지능(AI) 기술 발전이 전 세계 산업의 패러다임을 강타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 중국을 비롯한 선도 국가들이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국책 사업으로 AI, 반도체 등에 전폭적인 투자를 단행해 온 중국이 최근 딥시크 열풍을 일으키며 한국과 월등한 수준 격차를 드러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IT 강국을 자부해온 한국의 AI 연구개발(R&D)은 주로 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을 주축으로 성장해 왔으며, 현시점에서도 정부 주도의 대규모 프로젝트나 예산 지원은 기대하기가 힘들다. 이는 국내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서울대의 AI R&D 실태를 보면 그 열악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국내 AI 학계 핵심 인사로 꼽히는 윤성로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는 최근 인터뷰에서 “국내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서울대조차도 AI 연구를 위한 서버실을 학생들이 ‘아오지 탄광’이라고 부를 정도로 발열 제어가 안 되고 있다”면서 “열을 식힐 냉방 장비를 구매할 예산이 없고 전기 사용도 제한돼 있어 제대로 된 AI 연구개발을 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AI 연산의 필수 하드웨어인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 비용도 충당하기 힘들어 지금 연구원은 GPU 없이 AI 솔루션을 개발하는 방식을 연구해야 할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라며 “이 같은 여건에서 기술 발전은커녕 AI 산업의 미래를 이끌 인재마저 급감하고 있으며, 10년 전보다 오히려 더 낮은 수준의 교육을 해야 할 정도로 퇴보하고 있는 경향마저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AI, 반도체 등 첨단산업을 끌어 나가야 할 인재 수도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는 “국내 최고 대학 중 하나인 서울대가 이 정도라면 다른 학교는 어떻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과거엔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공대에 가는 것이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은 모두 이상하게 볼 정도로 공대 기피 현상도 심각해졌다”고 개탄했다.

윤 교수는 AI 기술 발전의 토대가 될 과학 분야에 대한 대우도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주도의 AI 산업 발전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인재 양성과 민간 부문에서 준비가 부족한 분야에 대해서는 정부가 나서야 하는 것이 맞다”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대우가 중국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학계 원로 사이에서는 과거 과학자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하며 기술 발전에 노력을 기울였던 고(故) 박정희 대통령 시절보다 지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도 나온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 교수와 일문일답.

지난 정부에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AI 산업 발전에 정부 주도의 중장기적 계획과 투자가 어떤 의미인가.

“원칙적으로는 민간이 주도하는 게 맞다고 본다. 하지만 (지금처럼) 기업이 주도하기에 힘에 부치거나 투자금 등 한계가 있는 경우 그리고 시장 자체가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있다. 외국의 경우 아예 자체 개발을 포기하고 해외 AI 모델을 도입하는 방식도 흔한데,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않다. 결국에는 기업 투자를 유도해야 하는데, 정작 투자 대비 회수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주저하게 된다. AI를 사용하고 사업화되고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구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정부 역할이 중요하다. 연구소를 설립하고 뛰어난 인재를 영입하기 위해 파격적인 대우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AI 투자와 인재 발굴 측면에서 더 적극적인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과거 정부 주도로 과학기술을 키웠던 시절을 생각해 보자. 가령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는 귀국하는 과학자에게 파격적인 대우를 해줬다. 물론 이후로도 국책연구소 연구원에 대한 대우가 꾸준히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미국이나 중국 정부에서 하는 것 같은 중장기적 지원은 아주 부족하다. 정부가 무조건 자금을 쏟아부으라는 의미는 아니다. 미국의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역시 정부에서 직접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 투자를 유도하는 이니셔티브다. 펀딩 대부분은 민간 투자다. 정부가 투자를 유도하고 조율하는 플랜이 잘 짜여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미국과 중국 AI 사업 발전의 큰 원동력 중 하나는 산학 협력의 활성화인데, 국내는 어떤가.

“학계에서 AI를 연구해 기업에 기여하기 위한 여건이 녹록지 않다. 지금 서울대를 보면 알 수 있다. 서울대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학 중 하나다. 그런데 전기가 부족해서 서버실을 증설할 수가 없다. 게다가 기존에 있는 서버실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학생들은 서버실을 아오지 탄광이라고 부른다. 에어컨 같은 충분한 냉방 장비를 구비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AI 연구가 느리게 진행되거나 아예 결과 자체가 나오지 않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고가의 GPU를 구입하기도 어렵고, 설령 구입한다고 해도 운용할 비용이 없다.”

국내 학계 전문가의 산업계 활약을 막는 규제가 있나.

“다양한 문제가 있지만 일단 미국 같은 서구권에서 흔하게 발생하는 ‘연쇄 창업’이 어렵다는 것이 큰 문제다. 한국의 경우 교수가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로 창업하면 그 사업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하는 관행이 있다. 미국의 경우 스탠퍼드대나 다른 명문대 공대 교수들이 기발한 아이디어로 창업 아이디어를 내놓고, 또 다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자유로운 활동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규제가 많아 활동에 제약이 심하다.”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어떤 부분을 배워야 할까.

“중국의 인재 양성을 벤치마킹하는 한편 미국의 산학 협력 모델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산학 협력을 제한하고 있는 족쇄를 스스로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나라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커야 하고 기업이 크기 위해서는 기초과학부터 탄탄해야 하고, 유기적인 흐름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한정적인 인재 풀에서 효율적인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문화적으로 고리타분하고 답답하다.

스탠퍼드대의 경우 기업과 학교를 넘나들며 소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연구 활동을 하고 관련 실적이 기업 성과로 결실을 보는 사례가 많은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교수가 스타트업을 차린다거나 기업 연구직을 겸업하려면 심사나 규제 같은 것이 많아 엄두조차 내기 힘들다.”

기업이나 기관 등에 인재 부족 문제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들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문제는 우수한 학생이 공학 계열을 기피한다는 것이다. 조금 지나면 한국의 인재가 중국으로 취업하러 가는 일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화웨이 같은 기업은 인재 발굴에 대해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해 왔다. ‘139 프로젝트’ 같은 게 대표적이다. 한 명을 뽑아 3년 계약을 보장하고 연봉 아홉 배를 주는 파격적인 방식이다. 한국에서는 쉽지 않다.

교수직을 맡고 있으니 더욱 체감된다. 스포츠로 비유하면 여전히 뛰어난 인재는 있지만, 선수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 인재가 한국 기업에 취업하게 할 만한 보상 체계가 부족하다고 본다. 국가 핵심 산업 중 하나인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이제 반도체와 AI는 분리해서 얘기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융합돼 가고 있다.

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에서 뛰어난 기업인을 활용해 큰 계획을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나라에는 뛰어난 기술자와 리더가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국가적으로 활용하려면, 너무나 제약이 많다. 그래서 나서지 않는 것이다. 뛰어난 기술 리더십을 국가를 위해 활용하기 위해서는 좋은 판을 깔아줘야 한다.” 

황민규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