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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고 하기에 금은 이제 너무 비싸다. 국제 금값은 1트로이온스(31.1g)당 3000달러(약 439만원)를 넘어 사상 최고가를 갈아 치우며 질주하고 있다. 금값 상승의 이유를 하나로 단정 짓기 힘들다.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증폭됨에 따라 안전 자산을 선호하는 것일 수도 있고, 평균적인 물가 수준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헤지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금은 화폐가치와 연동된다. 인류는 끊임없이 안정된 화폐를 찾으려 했다. 꽤 오랫동안 그 답으로 여겨진 것이 금이다. 금값이 들썩인다는 것은 금을 대신해 왔던, 달러의 신뢰가 흔들리는 징후일 수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하고, 재정 부담도 줄이고, 제조업을 살려 무역 적자를 감소하려 한다. 하지만 시장 참가자는 반신반의하고 있고, 그 결과가 금값 급등이다. 트럼프의 과감한 거래 제안이 달러 패권을 흔들고 있다.

물론 여전히 국제 외환의 80%는 달러로 거래된다. 미국 스스로 무역 적자를 감수해 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무엇인가를 생산하기보다 소비했고, 그 결과 세계경제는 원활하게서로 주고받으며 성장할 수 있었다. 국제경제에 원활히 통화를 공급하기 위해 적자를 감수할 수밖에 없는 ‘트리핀 딜레마(기축통화를 발행하는 국가가 겪게 되는 구조적 모순)’는 1944년 출범한 브레턴우즈 체제 이후 미국의 선택이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2001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들어온 후, 미국은 제조업에서 정보기술(IT)과 플랫폼으로 빠르게 산업이 전환돼, 기업 이익이 많이 늘어났다. 반면 자동차, 철강 등 전통 산업의 경쟁력이 무너지며, 노동자의 불평등이 심화해 왔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공화당 지지층 인 백인 노동자의 지지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 트럼프는 약속을 지키려 한다. 기존 IT와 플랫폼 기업 경쟁력은 유지하며, 전통 제조업을 되살릴 수 있다는 만용을 부리는 배경이다. 경제가 아닌 정치 논리로 시작된 정책이 부작용을 낳고 있다. 당연히 미국 외 동맹국과 적대국은 결제 통화를 바꾸고, 외환 보유를 다양화하려는 시도를 드러냈다. 더욱이 미국의 체력도 예전 같지 않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은 통제 불가능한 수준으로 늘어난 미국의 재정 적자 규모다. 순이자 지출이 재정 적자를 키우는 상황에서, 2025년은 특히 리파이낸싱 부담이 커지는 시기다. 부채를 줄여야 하는 디레버리징 구간에서 달러 지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이처럼 누구나 뻔히 예상되는 미래에서 트럼프 정부는 위험한 거래를 시작했다. 관세와 안보를 대가로 미국 재정의 신뢰를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스티븐 미란 백악관 경제 보좌관이 달러 평가절하를 위해 제안한 ‘마러라고합의(Mar-a-Lago Accord)’가 서류로만 끝나지 않을 거란 흉흉한 소문이 돌고 있다.

트럼프 정부의 거친 언사는 더 큰 양보를 얻기 위한 겁박으로 해석된다.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몰락을 지켜봤던 국가들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쉽게 응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관세와 안보를 대가로 무리수를 둘 수 있다. 하지만 미국이 이러한 무리수를 두면 둘수록 달러를 향한 의구심은 커질 것이다. 달러의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윤지호 경제평론가 - 전 이베스트투자증권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윤지호 경제평론가 - 전 이베스트투자증권리서치센터장, 전 LS증권 리테일사업부 대표, ‘주식의 시대, 투자의 자세’ 저자

달러가 기축통화가 될 수 있었던 이유

화폐는 신뢰에서 출발한다. 인류의 금을 향한 집착이 고대부터 지금까지 다르지 않은 이유도 금에 대한 신뢰가 높았기 때문이다. 

근대경제학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정치경제학 시대에 등장한 데이비드 리카도는 ‘금값은 오르는데 왜 파운드화 가치는 떨어지는가’에 대한 논쟁에서, 지폐는 금과 고정비율로 교환될 수 있어야 신뢰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이후 영국 의회에 들어가 금본위제 확립에 기여하고, 자유무역과 화폐 신뢰라는 유산을 남기며 영국의 세계경제 주도에 이바지한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경제가 무너지면서 금은 미국으로 집중됐고,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전 세계 금의 70%를 보유하며 유일한 금 태환 국가가 됐다. 달러는 금 1온스당 35달러(약 5만원)로 고정됐고, 다른 나라는 금 대신 달러를 기준으로 통화 가치를 정하게 됐다. 물론 이런 결정이 내려지기 전에 우려를 표한 이도 있다. 바로 존 메이너드 케인스다. 케인스는 ‘방코르’라고 불리는 초국가적 국제통화 도입을 제안했다. 하지만 미국 주도의 브레턴우즈 체제가 채택됐고, 전후 복구를 위한 대규모 달러 유출은 국제무역 확대에 기여했으나 시간이 흐르며 케인스가 경고했던 달러 중심 체제의 구조적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1945년 전후의 미국은 독보적인 강국이었지만, 1970년대는 베트남전쟁에서 패하고, 경제는 침몰하는 상황이었다. 유럽으로 금이 돌아가자, 프랑스는 미국의 금 보유를 의심했고, 미국도 금에 연동된 달러를 부담스럽게 여겼다. 결국 1971년 미국은 금 태환을 중단하며 달러는 신용화폐로 전환됐지만, 국제 결제 통화로서 지위는 유지됐다. 이후 OPEC(석유수출국기구)이 석유 대금을 달러로 받기로 하면서 달러 수요는 급증했고, 기축통화 지위도 강화됐다. 글로벌 결제 통화가 미국 달러였기에, 각국은 달러나 달러 자산을 비축해야만 했다. 모든 국가가 달러를 향한 초과수요가 유지된 배경이다. 이후 남미나 동아시아 국가, 예를 들어 한국은 결국 단기 외채였던 달러를 구하지 못해 국제통화기금(IMF)에 손을 벌려야 할 만큼 위기에 몰렸다. 당시 전 국민이 금을 팔아 달러를 구해 왔던 이유다. IMF가 한국의 금을 빼앗아 간 것이다.

트럼프가 뒤흔든 달러 패권

이제 그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트럼프는 스스로 달러 지위를 내려놓았다. 트럼프는 미국이 교역에서 돈을 벌기를 원한다. 미국의 무역수지 흑자가 확대되면, 각국의 달러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대미 무역 흑자국이 미국에서 돈을 벌어, 미 국채를 사는 선순환 구조도 작동을 멈추고 있다는 데 있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의 미 국채 비중은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고, 이제 일본도 자국의 금리 상승에 힘입어 ‘와타나베 부인의 귀환(일본 외환시장의 개인 투자자)’이 진행되고 있다. 미국과 무역 갈등을 겪는 모든 국가로 이러한 분위기는 확산하고 있다. 미 국채를 줄이고 사는 자산이 바로 금이다. 금이 미 국채와 달러를 대체하고 있다.

트럼프는 이에 맞서는 정책으로 두 가지를 내놓았다. 먼저 스테이블 코인을 통해 달러 수요를 유지하려는 정책이다. 트럼프는 공공연하게 암호화폐 기조를 분명히 해 왔다. 이미 세계 최대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T’ 발행사인 테더는 미 국채 시장의 큰손으로, 캐나다와 독일의 순매수 규모를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코인은 석유가 아니다. 1971년 달러는 OPEC의 선택으로 폭발적 수요를 끌어왔지만, 지금은 그 정도의 수요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의미다. 다른 하나는 100년 국채 강매다. 특히 안보를 대가로 일본, 한국, 유럽에 강하게 요구할 확률이 높다. 외국인의 미국 국채 매도를 막고, 추가 수요를 만들 방법이기 때문이다.

트럼프의 도박이 성공한다면, 금값이 하락하고, 암호화폐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미국의 ‘쌍둥이 적자(무역 적자+재정 적자)’는 감소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가 현실화한다면, 미국 우선주의에 힘입은 달러 패권이 유지될 것이다. 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생각해 보자. 금값은 상승하고, 암호화폐는 하락하고, 달러 수요가 감소하는 그러한 변화다. 2025년 들어 금값은 급등했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조정받고 있다. 시장이 옳다면, 트럼프의 도박은 승산이 낮아 보인다. 

윤지호 경제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