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헌법재판소(헌재)가 3월 24일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 소추를 기각했다. 이로써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주도한 윤석열 정부 공직자 탄핵 시도가 헌재에서 9건 모두 기각됐다. 한 국무총리는 작년 12월 27일 이후 87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에 복귀했다.
민주당은 한 총리가 12·3 비상계엄 선포를 방조하고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다는 등을 이유로 탄핵을 시도했으나, 헌재는 다수 의견으로 “비상계엄에 적극적 행위를 했음을 인정할 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또 헌법재판관 후보자 임명 거부에 대해서도 다수 의견으로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봤다. 또 한 번의 탄핵 기각으로 민주당의 무리한 탄핵이 국정 공백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한 권한대행을 포함해, 헌재에서 탄핵 기각이 결정 난 공직자 9명의 직무 정지 기간은 평균 약 5개월이다.
윤 정부 상대 탄핵 소추, 정부 수립 이후 74년 간 탄핵 소추 건수보다 9건 많아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 주도로 발의된 탄핵 소추안은 총 30건에 달한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문재인 정부까지 약 74년 동안 발의된 탄핵 소추안은 21건에 불과한데, 민주당이 윤석열 정부 들어 약 2년간 발의한 탄핵 소추안이 30건이다. 미국에서도 1797년 첫 탄핵 심판이 열린 이후 200년 이상의 역사에서 탄핵 절차가 시작된 사례가 총 60건에 그친다. 이 중 하원 의결을 통과해 상원이 탄핵 심리를 진행한 사례는 21건이 다. 상원에서 탄핵이 실제로 이뤄진 것은 8건에 불과하다. 한국이 ‘탄핵 과잉’에 빠져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미국에선 탄핵 소추와 심판 권한을 모두 의회가 갖고 있는데, 하원이 탄핵 소추안을 가결하면 상원이 탄핵 심판을 한다. 미국 상원에서 대통령 탄핵이 인정된 적은 없고, 탄핵이 인용돼 파면된 8명은 모두 법관이다.
우리 국회에서 가결돼 헌재로 넘어간 탄핵 소추안은 현재까지 13건이다. 4건을 제외하고 9건의 탄핵 심판이 이뤄졌고, 모두 기각됐다. ‘줄탄핵’ 공세의 시작은 서울 이태원 핼러윈 참사에 대한 책임을 물어 탄핵 소추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었다. 국무위원을 대상으로 한 헌정사상 첫 탄핵 심판이었다. 헌재는 2023년 7월 “이태원 참사는 어느 하나의 원인이나 특정인에 의해 발생·확대된 것이 아니다”라며 만장일치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이어 ‘서울시 간첩 조작’ 사건과 관련해 유우성씨를 보복 기소했다는 이유로 현직 검사(안동완 부산지검 2차장검사)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탄핵 소추됐으나, 헌재는 2024년 5월 이 탄핵도 기각했다.
이어 △이정섭 대전고검 검사 △이진숙 방통위원장 △최재해 감사원장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검사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 탄핵 소추안도 줄줄이 기각됐다. 감사원장을 탄핵한 것은 헌정사상 처음이었고,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를 탄핵한 것도 헌정사상 최초였다.

남은 4건 중 손준성 대구고검 차장검사에 대한 절차는 형사소송이 진행 중인 관계로 심판 절차가 중단된 상태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은 헌재 심리가 진행 중이다.
與 "탄핵 남용 막는 법 발의" 野 '마은혁 임명' 압박
이런 가운데 민주당은 야 4당(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과 함께 3월 21일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탄핵 소추안도 발의하고 나섰다. 12·3 비상계엄을 묵인 또는 방조하고, 마은혁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또 직무에 복귀한 한 권한대행을 향해서도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으면 파면 사유에 해당한다”며 ‘재탄핵’ 가능성을 시사했다. 4월 18일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이미선 헌재 재판관의 임기가 종료돼, 야당은 두 재판관 퇴임 전에 마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보고, 총공세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한 권한대행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 “국민이 납득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은 국회의 탄핵 소추안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회법 개정안을 3월 24일 발의했다. 헌재가 기각·각하할 경우 소추안 발의자 또는 발의자 소속 정당이 탄핵 절차 비용을 부담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야 5당이 기어이 최 장관 탄핵 소추안을 발의해 국민의 반발과 공분이 확산하고 있다”면서 “민주당의 탄핵 소추에 따른 탄핵 심판 절차 진행으로 약 4억6000만원의 국민 혈세가 투입되는 등 불필요한 국가적·행정적 비용이 초래됐다”고 말했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한 권한대행 탄핵 기각 결정에 대해 “거대 야당의 무리한 입법 폭거에 대한 사법부의 엄중한 경고”라고 평가했다.
尹 탄핵에 역대 최장기간 숙의하는 헌재
‘4월 18일 이전 선고’ 유력

헌재 재판관은 2월 25일 마지막 변론 이후 한 달 넘게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을 심리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은 역대 대통령 탄핵 심판 가운데 최장기 심리 기록을 세웠다. 앞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헌재에 탄핵 소추안이 접수된 이후 63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91일 만에 선고가 이뤄졌다. 윤 대통령 탄핵 사건은 지난해 12월 14일 접수돼 100일(3월 23일 기준)을 이미 넘겼다. 선고가 애초 예상보다 늦어지는 배경을 두고 다양한 추측이 나오지만, 헌재는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진 않았다.
헌법재판소법 제38조에 따르면, 헌재는 사건을 접수한 날로부터 180일 이내에만 종국 결정을 선고하면 된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4월 18일 이전에는 선고가 이뤄질 것으로 본다. 4월 18일 문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이 재판관이 퇴임하면 현직 재판관이 6인으로 줄어든다는 이유에서다. 헌재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건 때도 이정미 당시 헌재 소장 권한대행 퇴임을 사흘 앞두고 결정을 선고했다. 과거 2건의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가 금요일에 진행된 것을 고려하면, 4월 4일이나 4월 11일에 선고가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