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양주는 봄 여행지다. 물안개 아득하게 피는 북한강을 따라가다 보면 말랑말랑하고 포근한 봄을 만날 수 있다. 돌담길을 걷고 강변 공원을 산책하고 고즈넉한 절집 마당에서 아득한 풍경을 내려다보며, 옛 역사의 철로를 따라 거닐어 볼 수도 있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팔당 방면으로 접어드니 가슴이 확 트이는 것 같다. 오른편으로 북한강이 유유히 흘러간다. 새털구름이 가볍게 떠 있는 하늘, 수면에 닿은 햇살이 사금파리처럼 빛난다. 경기도 남양주는 자동차로는 한 시간 남짓이면 닿을 수 있어, 당일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운치 있는 간이역인 능내역도 돌아보고 고즈넉한 산사 수종사도 거닐어 보면 좋을 것 같다. 물의 정원에서는 유유히 흘러가는 남한강을 바라볼 수도 있다.
아참, 한음골이라는 곳도 가볼 만하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한음골은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한음 이덕형 선생이 임진왜란을 수습한 후 낙향해 일생을 보낸 곳이다. 당시 한음 선생이 집 앞에 심었던 두 그루의 은행나무가 아직도 집터를 지키고 있는데, 이 나무는 남양주시 보호수로 지정돼 있기도 하다.

한음골, 역사가 숨 쉬는 돌
한음골이 유명해진 건 ‘돌담’ 때문이다. 예부터 마을 주민이 집을 짓거나 밭을 갈면서 나왔던 돌을 모아서 담을 쌓곤 했는데, 이걸 관광자원으로 활용한 것이다. 돌담은 ‘박소재’라는 한옥을 중심으로 만들어져 있다. 1949년에 지어졌는데, 현대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길가에 멀찌감치 서서 한옥을 바라보고 있으면 ‘아, 이런 집 한 채 있었으면, 하다못해 작업실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돌담길에만 들어서면 걸음이 느려진다. 길은 굽이지고, 담은 낮다. 이 마을 돌담은 특별하다. 돌마다 손때가 묻어 있다. 누군가는 산에서, 누군가는 개울가에서 주워 온 돌을 한 개씩, 한 개씩 쌓았다. 접착제 하나 없이 돌끼리 기대며 살아 있는 듯한 담이다. 바람 부는 날이면 담 틈 사이로 낙엽이 스며들고, 햇살 좋은 날이면 고양이가 몸을 말린다.
이곳엔 안내판이 없다. 사진 찍으라고 마련된 포인트도 없다. 볼거리로 만든 골목이 아니라,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이 지나다니는 살아 있는 거리다. 그래서 더 좋다. 계절은 돌담 위를 거닐며 발자국을 남긴다. 봄이면 들꽃이 기웃거리고, 여름이면 담벼락 위로 풀들이 넘실댄다. 가을이면 단풍이 내려앉고, 겨울엔 그 담 위에 눈이 소복이 쌓인다. 마을 사람은 해마다 봄이면 다 같이 모여 비바람에 무너진 담을 다시 세운다고 한다.

수종사, 한강을 아득하게 품은 풍경
한음골에서 물의 정원이 지척이다. 아름다운 습지 공원이다. 자전거 도로와 함께 강변 산책로, 물향기길, 물마음길, 물빛길 등의 산책로와 전망 데크가 조성돼 있다. 자전거 타기에도 좋고 여유로운 산책을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강변을 따라 조성된 물마음길과 강변 산책길엔 전망대와 휴식 공간이 곳곳에 설치돼, 북한강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수종사도 가깝다. 운길산 중턱에 날아갈 듯이 자리 잡은 수종사는 바위틈에서 떨어지는 물소리가 종소리를 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수종사가 아름다운 이유는 절에서 바라보는 풍경 때문. 멀리 한강이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이 풍경을 서거정은 “동방 사찰 중 제일의 전망”이라고 했다.
수종사에는 세조가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두 그루 있다. 나이가 무려 500살이다. 해탈문 뒤에서 해탈한 듯 의젓하게 서 있다. 울퉁불퉁 우람하고 잘생겼다. 한 그루는 높이 35m, 나무 둘레 2m, 또 한 그루는 높이 25m, 나무 둘레 1.2m에 달한다.

능내역, 시간이 멈춘 듯 서 있는 간이역
한강을 따라 철로가 지났다. 팔당역에서 운길산역까지 경춘선이 따라 흘렀다. 이제는 폐철로가 됐지만 말이다. 2008년 12월 팔당역부터 국수역까지, 다음 해엔 용문역까지 복선 전철이 놓이면서 팔당~능내~양수역을 잇는 강변 철로가 폐선이 됐다.
먼지만 풀풀 쌓여가며 자칫 사라질 뻔했던 능내역이 다시 붐비기 시작한 것은 자전거길이 생기고 난 다음부터다. 라이더 사이에 강을 따라가는 경치가 기막힌 곳으로 금세 소문이 났고 주말이면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헬멧을 쓴 라이더가 몰려들기 시작했다.
능내역은 예쁜 초록색 건물이다. 시간이 멈춘 듯 옛 모습 그대로 서 있다. 역사도 재단장했다. 폐역 분위기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새로 페인트칠을 했고 역사 안은 옛 능내역 대합실의 모습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당시 사용되던 열차 시간표와 운임표도 붙여 놓았다. 역 담벼락에는 여행을 떠나온 이들이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찍은 사진을 걸어놓았다.

다산 유적지, 놀면서 배우는 실학
능내역에서 마현마을 다산 유적지가 가깝다. 남양주는 조선의 대표적인 실학자 다산 정약용의 고향. 그는 1762년 한강 두물머리가 환히 바라보이는 마현마을에서 태어났다. 마현마을에는 다산의 생가 ‘여유당(與猶堂)’을 비롯해 다산 묘와 다산문화관, 실학박물관 등이 모여있는데, 특히 실학박물관은 아이와 함께한 가족 여행자라면, 꼭 한번 들러 볼 만하다. 조선 후기 실학의 탄생과 전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으며, 실학의 선구 역할을 한 여러 실학자의 유물과 자료가 잘 갖춰져 있다. 실학박물관 건너편에는 다산 생가인 여유당이 서 있다. 1925년 대홍수 때 떠내려간 것을 1975년에 복원한 것이다. 여유당은 1800년 다산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서 살 때 지은 당호다. 여유당이란 이름엔 ‘살얼음 건너듯이 조심하고 경계하며 살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다산은 75년의 일생 중 10여 년의 벼슬살이, 18년의 귀양살이를 제외하고는 50년 가까운 세월을 이곳에 머물렀다. 마을 앞에 펼쳐진 강변 풍광을 읊은 ‘환소천거’라는 그의 시가 있다.
“서둘러서 고향 마을 도착해 보니 / 문 앞에는 봄 강물이 흐르는구나 / 기쁜 듯 약초 밭둑에 서고 보니 / 예전처럼 고깃배가 보이는구나 / 꽃이 만발한 숲 사이 초당은 고요하고 / 소나무 가지 드리운 들길이 그윽하네 / 남쪽 천 리 밖에서 노닐었지만 / 어디 간들 이 좋은 언덕 얻을 거냐.”
여행수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