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은행은 2월 26일(이하 현지시각) ‘제4차 긴급 재건 피해 및 수요 조사(RDNA 4)’ 보고서에서 우크라이나가 3년간 전쟁으로 입은 직접 피해액이 1760억달러(약 259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세계은행은 향후 10년간 우크라이나 재건 비용으로 5240억달러(약 770조원)가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2024년 우크라이나 국내총생산(GDP)의 약 세 배에 달하는 규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월 3일 미국 국부 펀드 설립 행정명령 서명식에서 돌연 우크라이나 재건과 관련해 “우리는 막대한 자금을 우크라이나에 지원하고 있다”라며 “난 희토류를 담보로 원한다”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5000억달러(약 735조원)를 지원했다고 강조하면서 향후 우크라이나 광물 개발을 통해 이 돈을 회수하겠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나온게 트럼프 정부가 2월 7일 우크라이나 정부에 제시한 ‘광물 협정’이다. 우크라이나는 광물 협정의 불평등을 주장하면서 ‘강도 짓’이라고 반발했지만, 거듭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사실상 백기를 든 상태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의 휴전 논의가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1300조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재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다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재건 비용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전쟁 3개월이 된 시점에 3485억달러(약 512조원)였던 재건 비용은 전쟁 1년 4106억달러(약 604조원)가 됐고, 전쟁 34개월째가 되는 2024년 12월에는 5240억달러(약 770조원)로 늘었다. 재건 비용이 최대 9000억달러(약 1317조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하나증권은 3월 20일 리포트에서 이렇게 추산했다. 세계은행은 재건 비용 중 주택 16%(840억달러), 교통 15%(780억달러), 에너지 13% (680억달러), 상업·산업 12%(640억달러), 농업 11%(550억달러)가 큰 비중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건설과 기자재, 전선, 원전 분야에서 경쟁력 있는 한국 기업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우크라이나에 가장 많은 지원을 한 미국이 국제 협력보다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방향으로 재건 사업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에 기회가 많이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코노미조선’은 트럼프가 주도하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기회와 한계를 짚어보고, 우크라이나 재건이 과거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이 주도한 ‘마셜플랜(Marshall plan)’ 같은 경제 효과를 낼 수 있을지 살펴봤다.
우크라이나 향한 주요국 지원 경쟁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차지하기 위한 주요국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독일 킬 세계경제연구소의 ‘우크라이나 지원 현황(Ukraine Support Tracker)’을 보면 2024년 12월 말 기준 북미와 유럽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일본과 한국이 아시아에서는 상위 지원국에 속한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에 1142억유로(약 182조원)를 지원한 것으로 집계됐다. EU는 490억유로(약 78조원)를 지원한 상태다. EU 회원국 중에는 독일이 173억유로(약 28조원)로 가장 많은 지원액을 전달했다. 일본과 한국은 각각 105억유로(약 17조원), 8억유로(약 1조원)를 지원했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주요국 지원은 그동안 군사 지원에 집중됐다. 국제사회는 휴전 협정이 진행된 이후로는 주택·교통·에너지·상업·농업·사회보장 등 인프라에 주요국 지원이 집중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과 EU가 인프라 재건을 위해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미국은 2023년 2월 원전 기업 웨스팅하우스를 앞세워 우크라이나 원전 확충 사업에 나섰고, EU는 2024년 3월 도시 재건 및 현대화, 중소기업 지원 사업에 지원할 계획을 밝혔다. 독일 방산 기업 라인메탈은 2024년 3월 우크라이나에 탄약 공장을 신설했다.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접하고 있는 폴란드의 경우 우크라이나 도로 건설 등 인프라 수주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재건 사업 경쟁에 돌입한 상태다. 한국은 2023년 7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재건 협력 업무협약’을 체결했고, 같은 해 9월에는 우크라이나 정부와 ‘재건 협력 6대 선도 프로젝트’를발표했다. 일본은 2023년 3월 정상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를 ‘특별한 글로벌 파트너십’으로 격상했고, 2024년 10월에는 일본무역진흥기구를 통해 키이우 사무소를 개소했다.
재정 적자, 만연한 부패 등 리스크 여전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방대한 재건 비용은 풀어야 할 숙제다. 우크라이나를 향한 주요국의 지원이 군사 분야로 집중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재정 적자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RDNA 4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정부의 재정 적자는 전쟁 직전인 2021년 115억달러(약 17조원)에서 2024년 432억달러(약 64조원)로 급증했다. 우크라이나에 만연한 부패 문제도 재건 사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재건 사업 투자 유치를 위해 부패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지만 2023년부터 국방부 조달 스캔들, 에너지 장비 조달 관련 뇌물 혐의, 어린이병원 입찰 부패 사건 등 굵직한 부패 사건이 계속되고 있다. 2023년 5월에는 우크라이나 대법원장이 270만달러(약 40억원) 뇌물 수수 혐의로 체포되면서 대법원 기능이 중단되기도 했다.
재건 사업 주도권 가지려는 美, 우리도 기회 있어
재건 사업이 시작되더라도 자국 이익을 우선하는 미국 입김에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시한 광물 협정이 체결될 경우 우크라이나 재건의 주도권은 미국이 쥐게 되기 때문이다. 광물 협정의 핵심은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수익의 50%를 미국이 주도하는 재건 투자 기금에 넣고, 펀드 수익으로 재건 및 개발을 진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모든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우선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어, 사실상 미국 허가 없이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에 나설 수 없다. 그렇다고 우리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한국은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주도하는 다자공여자공조플랫폼(MDCP)에 2024년 2월 가입한 만큼 한국 기업의 진출 기회는 일정 부분 보장돼 있다. 한국 기업과 협력 관계가 밀접한 폴란드를 거점으로 활용할 경우 에너지·교통·인프라 등에서 다양한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대니얼 빌락 전 우크라이나인베스트 대표는 “한국 기업은 스마트 교통 시스템 개발에 경험이 있어 우크라이나의 철도·공항·도로 인프라 현대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라며 “소형모듈원자로(SMR) 기술도 뛰어난 만큼 우크라이나에 SMR을 도입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우크라이나 재건 ‘ 21세기 마셜플랜’ 될까
고성민 기자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피해 규모와 재건 비용 등을 고려해 마셜플랜(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유럽 국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대규모 원조 프로그램) 이후 최대 규모 재건 사업으로 평가된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을 ‘21세기 마셜플랜’으로 부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전쟁이 끝나고 3년이 지난 시점에 시작된 마셜플랜과 달리 전쟁 시작 5개월 만에 서방 주요국과 국제기구가 참여한 우크라이나재건회의(URC·Ukraine Recovery Conference)가 열리고, 주요국 지원이 시작됐다는 점에서 마셜플랜보다 더 빠르게 진행될 전망이다. 그러나 유럽 정치·경제 안정을 목표로 미국이 사실상 나 홀로 진행한 마셜플랜과 달리 우크라이나 재건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다양한 국가와 기구가 참여한다는 점에서 국제 협력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특히 마셜플랜은 유럽의 경제 회복과 정치적 안정에 무게를 둔 반면 우크라이나 재건은 재건 사업을 통한 자국 이익에 초점이 맞춰지면서 협력보다는 경쟁, 수혜국보다는 지원국 이익에 무게가 쏠릴 것으로 보인다.
마셜플랜은 당시 미국의 과잉생산 해소 채널이 됐지만, 지금 미국은 제조업 부흥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자국 우선주의와 우방국 배척을 우선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브앤드테이크(Give and Take)’ 기조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의 불확실성을 키울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