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부터 러시아까지 ‘짝퉁 불닭’ 품질 낮은 위조품에 두통·복통 호소 “정부 차원 대응 체계 마련해야”
이집트의 한 잡화점이 불닭볶음면 위조품을 소셜미디어에서 홍보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이집트의 한 잡화점이 불닭볶음면 위조품을 소셜미디어에서 홍보하고 있다. /사진= 인스타그램

“오늘 특별한 제품을 소개합니다.”

한 남성이 인스타그램 라이브에서 자신을 이집트 카이로의 한 식품점 주인이라고 소개하며 익숙한 라면을 들어올렸다. 포장지에 적힌 붉은 글씨는 영락없는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었다.

“여러분, 한국에서 직수입한 진짜 불닭볶음면”이라며, 어눌한 영어로 포장에 적힌 ‘코리아’라는 단어와 태극기를 검지로 반복해서 두드리며 진짜라고 강조했다. 화면 속 패키지에는 불닭볶음면 캐릭터 ‘호치’가 선명하게 보였다.

하지만 자세히 볼수록 미묘하게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삼양식품 마크가 있어야 할 곳에는 ‘빙고원(BINGOONE)’이라는 이름이 적혔다. 제품명 하단에는 아랍어가 어색한 글씨체로 자리했다. 불닭볶음면을 따라 한 ‘짝퉁(위조품)’이었다.

그는 “지금 이 제품은 이집트 최초로 들어온 정품 한국 라면”이라며 “가격도 한국과 거의 같다”고 했다. 설명이 이어질수록 실시간 시청자 수는 증가했다. 댓글 창에는 ‘피라미드 식품점’에서 판매한다는 링크가 걸렸다.

이처럼 전 세계 곳곳에서 K푸드 명성을 악용한 가짜 제품이 소비자를 현혹하고 있다.

짝퉁 불닭볶음면 전 세계로

최근 삼양식품 불닭볶음면이 글로벌 히트 상품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중국과 동남아시아를 넘어 러시아와 북아프리카 등지에서 수많은 짝퉁이 등장하고 있다.

불닭볶음면은 2017년부터 해외 판매가 내수를 앞지를 정도로 성장한 K라면 대표 브랜드다. 해당 브랜드 인기로 삼양식품 주가는 최근 90만원을 돌파했다. 

삼양식품은 2017년 중국 징둥(京東·JD닷컴)과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면서 본격적으로 불닭볶음면 수출에 나섰다. 이후 중국에서 불닭볶음면은 ‘훠지몐(火鸡面)’이라고 불리며 인기를 끌었다. 삼양식품 역시 수출 호조로 내수 시장 부진을 만회했다.

동시에 포장과 브랜드를 모방한 ‘마라화계면’ 등 가짜 제품이 중국에서 범람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러시아 최대 인터넷몰 얀덱스에서 ‘불라면’이 히트 상품으로 떠올랐다. 한국어로 불라면을 표지에 넣은 이 라면 역시 포장지 이미지와 캐릭터까지 삼양식품 오리지널 제품과 유사하다. 이 제품은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를 만큼 러시아 시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빙고원 위조품은 이 중에 가장 노골적이다. 할랄 인증 마크, 해썹 인증 마크, 태극기를 형상화한 코리아 글자까지 그대로 넣었다. 실제 인증을 받았는지 여부는 불분명하다. 이 기업은 제조원과 성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그저 제품 뒷면에는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메이드 인 PRC(Peo-ples’s Republic of China)가 적혀 있다. 중국에서 생산한 이 짝퉁 불닭볶음면은 가까운 홍콩과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부터 멀리 이집트를 포함한 아프리카 일대에서까지 팔리고 있다.

가짜 불닭볶음면을 맛본 소비자 가운데 상당수는 레딧(Reddit) 같은 커뮤니티에서 ‘정말 이 제품이 맛있다고 생각합니까?’ 같은 부정적인 의견을 드러내고 있다. 안 좋은 평가가 이어질수록 불닭볶음면 브랜드 이미지에는 치명적이다.

국내 업체 삼양식품이 만든 불닭볶음면(왼쪽)과 중국 현지 업체가 생산한 짝퉁 불닭볶음면. /사진= 한국식품산업협회
국내 업체 삼양식품이 만든 불닭볶음면(왼쪽)과 중국 현지 업체가 생산한 짝퉁 불닭볶음면. /사진= 한국식품산업협회

K푸드 위조품 발각돼도 벌금은 솜방망이

K푸드 인기에 편승한 위조품은 불닭볶음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베트남과 태국 등지에서는 참이슬 같은 한국 소주가 인기를 끌자 정품보다 30% 저렴한 가짜 소주가 널리유통되고 있다. CJ제일제당 ‘백설 하얀설탕’ 은 중국에서 동일한 모습으로 ‘한국수입 하얀설탕’이라는 이름으로 팔렸다. ‘쇠고기 다시다’가 위조품 ‘쇠고기 우육분’으로 둔갑한 사례도 나타났다.

식품 업계 전문가는 제조사와 출처가 불분명한 위조품은 대체로 품질이 떨어져 소비자에게 두통이나 복통 같은 부작용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에는 틱톡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에서 ‘불닭볶음면 챌린지(도전)’ 가 유행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이 위조품을구분하지 못하고 섭취하는 사례도 생겼다. 전문가는 이런 불닭볶음면 위조품은 정품보다 더 자극적인 맛을 내기 위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첨가물을 과도하게 사용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에 따르면, 제품 패키징 디자인에 외국어를 활용하는 행위 자체는 불법이 아니다. 다만 전 세계적으로 유통되는 한글 포장 식품 중 상당수가 법률적으로 문제 되지 않도록 교묘하게 한글이나 태극기 문양 등 한국적인 이미지를 활용해 소비자 오인을 유도하고 있다.

앞서 2021년 12월 CJ제일제당, 삼양식품, 대상, 오뚜기 등 주요 식품 기업은 ‘K푸드 모조품 근절을 위한 공동 협의체’를 구성해 중국 업체를 상대로 지식재산권 침해 소송을 제기해 일부 승소했다.

그러나 중국 법원이 판결한 배상액은 실제 피해 규모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CJ제일제당 25만위안(약 4700만원), 삼양식품 35만위안(약 6500만원), 대상은 20만위안(약 3700만원)을 배상액으로 인정받았다.

“K푸드에 부정적 인식 생겨…대응 체계 마련해야”

한국 기업이 국제 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현지에서 판결 집행을 강제할 방법이 제한적이라는 점도 문제다. 

노골적인 위조품을 만드는 식품 기업은 현지에서도 인지도가 낮거나, 등록하지 않은 중소 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이들은 대형 식품사에 비해 법적 처벌과 소송을 빠져나갈 여지가 크다. 

실제 위조품 제조 업체는 기업명을 바꾸거나 법인을 이전하는 방식으로 판결을 회피하는 경우가 많았다. 법적으로 끝까지 잘못을 세세히 가려 보상받기가 쉽지 않다. 

특히 중국과 러시아 등 지방 행정구역마다 집행력 차이가 큰 국가에서는 한 지역에서 법적으로 판매 금지 처분을 받은 제품이 다른 지역에서 버젓이 유통되는 경우도 흔하다.

전문가는 K푸드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위조품 문제가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대한상공회의소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K푸드 수출액은 70억2000만달러를 기록했다. 2015년보다 두 배 성장했다. 수출 상품 가운데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로 가장 컸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최근 국제식품안전당국자회의(INFOSAN)와 협력해 위조 K푸드에 대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 체계를 구축하기로 했다. 또 소비자가 정품과 위조품을 구별할 수 있도록 교육 자료를 배포하고, 주요 수출국 공관 차원에서 현지 식품 안전 당국과 협력을 강화할 계획이다.

김소형 데이비스앤컴퍼니 컨설턴트는 “미국이나 유럽연합(EU)은 위조품에 대해 국가 차원에서 강력한 대응과 국제 공조 체계를 갖추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지식재산권 보호를 위한 국가 차원 대응 체계가 미흡하다”고 말했다. 이어 “위조품으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훼손은 단순히 경제적인 손실을 넘어 K푸드 카테고리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며 “정부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진우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