뷔욤 굴든 아디다스 CEO. /사진= 아디다스
뷔욤 굴든 아디다스 CEO. /사진= 아디다스

운동화 시장의 지형도가 바뀌면서 관련 업체 실적도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해 젊은 세대 중심의 절대 강자인 나이키 인기가 주춤한 사이, 아디다스와 뉴발란스, 아식스 등이 호실적을 기록했다. 

독일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는 지난해 매출이 237억유로(약 37조6747억원)로 전년 대비 10% 증가했다. 영업이익은 2023년 2억6800만유로(약 4260억원)에서 13억3700만유로(2조1254억원)로 뛰었다. 아디다스 주가는 작년에만 30% 이상 상승하며 나이키를 앞질렀다. 아디다스는 지난해 실적 가이던스를 세 번이나 상향 조정했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태권도.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태권도.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2022년만 해도 아디다스는 ‘이지(Yeezy)’ 라인을 협력해 온 힙합 뮤지션 예(Ye·구 칸예 웨스트)와 결별로 12억유로(2022년 통화 기준 약 1조7000억원) 상당의 재고를 떠안으며 부진을 겪었다. 10여 년간의 파트너십으로 운영된 이지는 아디다스 연간 수익의 8%를 차지했지만, 예의 유대인 혐오와 나치 찬양 발언이 문제 되면서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이듬해 아디다스는 31년 만에 당기 순손실을 기록했다. 

2023년 아디다스 최고경영자(CEO)로 취임한 뷔욤 굴든(Bjørn Gulden)은 브랜드 부활에 공을 세운 인물로 평가받는다. 굴든은 1990년대에 아디다스에서 일한 전 프로 축구 선수로, 2013년 경쟁사 푸마 CEO가 돼 성공적인 턴어라운드를 이끌었다. 

취임 후 굴든은 이지 재고를 전량 폐기하는 대신, 판매 수익금을 반명예훼손연맹(ADL) 등 반유대주의 감시 단체에 기부해 재고 정리와 브랜드 이미지 개선을 꾀했다. 또 2000년대 인기를 끌었던 아디다스의 클래식 운동화인 삼바, 가젤, 슈퍼스타 등을 앞세워 Z 세대(1997~2010년생)를 공략해 대히트를 쳤다. 동시에 ‘우리 브랜드는 스포츠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메시지를 바탕으로 농구, 축구, 러닝 등 다양한 분야에서도 브랜드 정체성을 재정립했다. 기존에 디지털 및 소비자 직접 판매(D2C)에 초점을 뒀던 유통 전략도 수정해 리테일 파트너와 협력을 재개했다. 회사 재건을 위해 굴든이 직원 6만 명에게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공개하고, 일주일에 200번 넘게 직원과 소통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재팬.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재팬.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한국에서 아디다스코리아는 유한회사로 운영되고 있어 매출이 공개되지 않는다. 그러나 올해 3월 아디다스 글로벌의 실적 발표에따르면, 2024년 한국과 일본의 총매출은 2조1072억원으로 전년 대비 3.6%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디다스 경영진은 올해 아디다스 브랜드의 연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할 것이며, 17억~18억유로(약 2조7000억~2조8600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했다. 

이런 성과로 2024년 1월 아디다스는 한국 시장을 아시아·태평양 지역 소속 마켓에서 독립했다. 단독 마켓으로 위상을 격상한 것으로, 한국 시장에 맞는 제품 출시 및 특화 마케팅을 수행할 수 있게 됐다. 실제 아디다스코리아는 올해부터 프로야구단 두산베어스와 공식 후원 계약을 체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자료=금융감독원
자료=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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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디다스 부활로 웃는 화승엔터프라이즈

아디다스 부활로 웃는 곳이 또 있다. 바로 아디다스 신발을 위탁 생산하는 한국 주문자개발생산(ODM) 벤더 화승엔터프라이즈다. 화승엔터프라이즈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두고 아디다스 오리지널스 라인 신발을 60% 이상, 퍼포먼스 라인 러닝화를 30%가량 생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화승엔터프라이즈는 지난해 매출이 1조6096억원으로 전년 대비 3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826억원으로 전년(130억원) 대비 여섯 배 넘게 늘었다. 당기 순이익은 344억원으로 흑자 전환했다. 이 회사는 최근 아디다스 부활로 이례적인 성장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년 기준 매출의 91%가 아디다스에서 발생했다. 작년 4분기부터 삼바, 가젤, 슈퍼스타 등 오리지널스 제품군 비중이 상승하면서 가동률이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화승엔터프라이즈 모기업인 화승인더스트리도 작년 연결 매출이 전년 대비 25% 늘고, 영업이익은 1892억원으로 전년(247억원) 대비 일곱 배 넘게 증가했다. 화승인더스트리는 화승엔터프라이즈에 원재료를 제공하고, 화승엔터프라이즈가 제조한 제품(운동화 등)을 받아 아디다스에 납품하는 회사다.

올해 전망도 밝다. 증권가에 따르면, 화승엔터프라이즈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3%, 253% 각각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유정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올해 1분기 스테디셀러 비중의 상승 추세가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영업이익은 가동률 상승에 따른 고정비 하락으로 1000억원대에 안착하며 전년 대비 40% 증가세를 보일 것” 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미국 정부가 베트남에 46%, 인도네시아에 32%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기로 함에 따라 화승에 악재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화승의 생산 국가 비중은 베트남 43%, 인도네시아 49%다.

아디다스가 ‘2025 서울마라톤’을 기념해 출시한 러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4’.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아디다스가 ‘2025 서울마라톤’을 기념해 출시한 러닝화 ‘아디제로 아디오스 프로 4’. /사진= 아디다스코리아

나이키 부진한 틈 타…뉴발란스·아식스 등도 호실적

시장에선 경쟁사인 나이키가 ‘한정판’ 제품 판매에 집중한 사이 아디다스가 새로운 기회를 잡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아디다스는 클래식 운동화 외에도 러닝, 축구, 농구, 테니스 등 각종 스포츠에 특화된 제품을 갖고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또 나이키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 자체 온라인 몰을 통한 소비자 직접 판매를 가속한 사이 경쟁 브랜드가 주목받게 되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시장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국내시장에도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고 있다. 뉴발란스코리아는 국내 진출 16년 만인 지난해 매출 1조원을 첫 돌파했다. 아식스코리아도 지난해 매출이 전년 대비 31% 증가한 1437억원, 영업이익은 73% 늘어난 235억원으로 집계됐다. 이 기간 당기 순이익은 55% 증가한 195억원을 기록했다. 국내에 러닝화 호카를 수입·판매하는 조이웍스 매출도 전년(433억원)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한 1000억원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6월 결산 마감인 나이키코리아는 올해도 부진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2023년 나이키코리아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0.3%, 43% 줄어든 바 있다. 3월 20일(현지시각) 발표된 글로벌 나이키 회계연도 3분기 매출은 113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 감소했다. 순이익은 8억달러로 32% 줄었다. 매트 프렌드 나이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콘퍼런스콜에서 “회계연도 4분기 매출 감소 폭이 10%대 초반이 될 것”이라며 “지정학적 역학, 새로운 관세, 불안정한 환율 및 세금 규정이 불확실성을 조성하는 요인 중 일부”라고 밝혔다. 

김은영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