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차트를 들고 상호 관세 부과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 로이터연합

“경제 독립을 선언하겠다. 오늘 미국의 황금시대가 열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일(이하 현지시각)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교역 상대국의 관세·비관세장벽을 고려해 산출한 상호 관세 발표 행사를 진행하며 한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 등 57국에는 기본 관세에 징벌적 관세를 추가로 얹는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차트를 보면 한국은 미국에 50% 관세를 부과하고 있고, 미국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돼 있다.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은 20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중국에 대해서는 34%, 유럽연합(EU)은 20%, 일본 24%, 인도 26%, 대만 32%, 베트남 46% 등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 발효 시점은 10% 기본 관세가 4월 5일, 국가별 상호 관세가 4월 9일부터다. 

철강·알루미늄·구리·자동차·의약품·반도체·목재 등 기존에 다른 관세가 부과된 품목은 상호 관세가 추가로 적용되는 대상에서 제외됐다. 미국은 4월 3일부터 자국으로 들어오는 모든 수입 자동차에 25%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했다. 

자료=미 무역대표부(USTR)
자료=미 무역대표부(UST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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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자동차의 81%는 한국산” 비난

트럼프 대통령은 자동차 부문에 대해 “한국에선 자동차의 81%가 한국산이고, 일본에서는 94%가 일본산”이라고 꼬집으면서 미국에서는 100만 대의 외제 차를 판매하고 있고, 어떤 미국 기업도 다른 나라에 진입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또, 미국산 쌀에 대해 물량에 따라 최대 5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언급하며 “어떤 경우는 적국보다 우방이 더 나쁘게 우리를 대우했다”고 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튿날인 4월 3일에는 반도체 분야 관세 도입이 “아주 곧”(very soon) 이뤄질 것이라고 예고했다.

백악관 공동취재단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마이애미로 이동하는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반도체(관세)가 아주 곧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제약(관세)은 별개의 범주”라면서 “가까운 미래에 발표할 것이며, 현재 검토 과정에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외국산 자동차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기 시작한 데 이어 반도체 관세까지 조만간 도입하겠다고 밝힘에 따라 한국의 대미 수출 1, 2위 품목이 모두 ‘트럼프발 관세 태풍’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됐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수출액은 전년보다 10.4% 증가한 1278억달러(약 147조8660억원)였고, 대미 무역수지는 557억달러(약 81조8790억원) 흑자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과 다른 무역 파트너에 악의는 없다”면서도 “그들은 미국을 약탈하고 강탈했다. 수십 년 동안 지속된 미국에 대한 불공평한 대우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중국에 대해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서도 “그들은 우리를 엄청나게 이용하고 있다”고 했다. 

자료=백악관
자료=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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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中 ‘강력 단호 보복’⋯日·英 ‘협상’

각국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4월 1일 “우리는 보복을 원치 않지만, 강력한 보복을 계획하고 있으며 필요하면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도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통신과 인터뷰에서 “미국의 압박과 협박이 계속되면 단호하게 반격할 것”이라고 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이 자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제한하는 조치에 돌입했다고 4월 2일 보도했다.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최근 몇 주간 미국에 투자하려는 중국 기업에 대한 승인을 보류하고 있다는 것이다. 마크 카니 캐나다 총리는 4월 1일 “미국 노동자보다 캐나다 노동자가 불리하게 두지 않겠다”며 “캐나다를 대상으로 (관세) 추가 조치가 취해진다면 보복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은 4월 2일 정례 기자회견에서 “(상호 관세) 발표가 나오더라도 미국 제품에 곧바로 관세를 매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우리 정부 관심사는 오로지 멕시코 경제를 강화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일본과 영국은 협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일본 총리는 “미국에 자동차 관세 면제를 강하게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국익을 위해 차분하고 침착한 접근이 필요하다”며 즉각 강경한 대응에 나서진 않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세계 경제 타격 우려, 증시 급락

트럼프 대통령이 전 세계를 상대로 상호 관세 계획을 뉴욕 증시 마감 직후 발표한 다음 날인 3일 S&P 500 지수와 나스닥 지수는 각각 4.84%, 5.97% 급락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관세 폭탄이 월스트리트를 강타했고 글로벌 성장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며 주식 시장이 코로나 팬데믹 최고조 때 이후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월 1일 미국이 전 세계에 25%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고 상대국이 동일한 보복 조치에 나설 경우를 가정해미국의 수출이 66.2% 감소하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어 멕시코(35%), 캐나다(32.6%), 일본(7.6%)순으로 수출 감소율이 높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의 수출 감소율은 7.5%로 세계 주요국 중 다섯 번째였다. 경제 전문 매체 CNBC는 미국에서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Plus Point

한미 FTA 무력화 美 관세 폭탄
韓, 긴급 대응 회의 열었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4월 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미국의 상호 관세 발표에 대응해 ‘긴급 경제 안보 전략 TF(태스크포스) 회의’를 개최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미국의 관세 폭탄 발표 1시간여 만이다. 회의에는 최상목 경제부총리,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이 참석했다. 한 권한대행은 안 장관에게 “지금부터 본격적인 협상의 장이 열리는 만큼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미 협상에 적극 나서달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상호 관세율을 산정하는 근거가 되는 상대국의 대미 관세율이 엉터리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미국과 협상이 쉽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언 브레머 유라시아그룹 회장은 소셜미디어(SNS)에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를 미국에 대한 수출로 나눠서 미국산에 대한 관세율을 산정했다는 글을 올리고 “끔찍이도 멍청하다(incredibly stupid)”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각국이 미국에 부과하는 관세의 절반만큼을 부과하는 것”이라고 시혜를 베푼 듯이 언급하기도 했다. 또 트럼프가 제시한 한국에 대한 상호 관세율 25%와 백악관 발표 26%가 달라 혼선을 빚다가 25%로 정리되는 해프닝이 빚어지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의 대미 수출 기지 역할을 하는 베트남이 중국(34%)보다 높은 46%의 상호 관세를 부과받게 돼 타격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