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개입과 간섭에 불만이 쌓여온 이라크는 대외 여건의 변화를 계기로 독자적인 행보를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이란이 자국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라크와 관계를 새로이 정립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올 1월 미국의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후 중동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이스라엘이 노골적으로 영향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은 알아사드 정권이 붕괴한 시리아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면서 골란고원을 넘어선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하마스와 다시 전쟁을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의도가 100% 관철될 때까지 상대를 밀어붙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암묵적으로 정해졌던 각종 제약과 한계를 넘어선 이스라엘은 확고부동한 친이스라엘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재임 동안 최대한의 이익을 확보하기 위해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중동 국가는 2023년 이후 이스라엘이 보여준 압도적인 군사력과 탁월한 정보력 그리고 이스라엘 지도부의 노골적인 새로운 중동 질서 구축 시도에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은 이란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사진= 셔터스톡
국경을 접하고 있는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하는 것은 이란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사진= 셔터스톡

이스라엘에 밀려 힘 빠진 이란

이스라엘의 영향력 및 세력 확대는 이란의 영향력 축소로 이어진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 및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를 유지해 왔다. 1980년대 초반부터는 독자적으로 미국에 맞서는 것을 넘어 주변 국가에 동맹 세력을 구축하는 방식으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대한 저항 전선을 구축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를 시작으로 가자 지구의 하마스,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 등은 이란의 지원을 통해 권력을 확보하거나 강화할 수 있었다. 이란에서 지중해까지 이어지는 친이란 세력의 축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런데 2024년이 되면서 상황은 완전히 바뀌었다. 2023년 하마스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그동안 자국을 괴롭히고 압박하던 친이란 세력에 대한 전면적인 공세를 펼쳤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삐삐폭탄 등 직접적이며 다양한 수단을 활용한 끝에 이스라엘은 레바논 무장 정파인 헤즈볼라를 거의 무력화하는 데 성공했다. 이란과 러시아의 지원을 받아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해 오던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은 튀르키예의 지원을 받는 수니파 세력인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에 의해 붕괴했고, 친이란 성향으로 정권 핵심 세력이던 알라위파는 이제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에 몰리게 됐다. 하마스의 경우 이스라엘의 지속적인 공격으로 핵심 지도부가 붕괴하면서 이란의 영향력은 급속히 감소했다. 오랫동안 공들여 구축해 온 중동 지역 내 거점이 한꺼번에 붕괴한 것이다. 이란에 마지막 남은 영향권은 이라크다. 이라크는 오랫동안 소수 수니파가 국가 요직을 독점하면서 다수 시아파를 지배해왔다. 하지만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이후 다수파인 시아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됐다. 이란은 다양한 방법으로 시아파 세력을 지원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라크를 자국 영향권으로 포섭하는 데 성공했다. 이라크라는 나라는 분명 존재하지만 이란의 꼭두각시 같은 역할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는 이라크 정규군과 별개로 활동하면서 미군을 공격했고, 이라크 정부의 명령을 무시하고 이란의 뜻에 따라 시리아에서 활동했다.

다수 시아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이라크 정치인은 노골적으로 이란의 뜻을 따랐다. 이란은 2018년 아델 압둘 마흐디가 총리가 되도록 영향력을 행사했다. 2021년 의회선거에서 친이란파가 패배하자 민병대를 동원해 상대를 공격했고, 정부 구성 절차와 원칙을 변경하도록 압박했다. 결과적으로 친이란 세력은 소수 세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정부를 장악할 수 있었다. 이란은 자국을 지지하는 이라크 국민에게 다양한 형태의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지원 세력을 확대했다. 물론 여기에 드는 비용은 이라크가 부담했다. 남의 돈으로 생색을 내왔던 것이다.

정치적 영향력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도 이라크는 이란에 소중한 존재다. 미국의 강력한 경제제재가 계속되면서 최근 1년 사이에 이란 리알화 가치는 62% 하락했고 인플레이션은 32%에 달했다. 합법적인 방법으로는 원유를 판매할 수 없는 이란은 이라크를 우회 창구로 삼아 원유를 판매하고 외화를 조달하고 있다. 이라크는 세계 9위의 산유국으로서 제재 없이 에너지자원을 수출할 수 있는 만큼 이란은 자국의 원유를 이라크산이라 속여 세계시장에 수출하고 있다. 

이란의 지원을 받는 이라크 민병대는 이라크 유전을 장악하고 이를 밀수출해 이익을 거두거나, 이라크 정부의 각종 보조금을 허위로 수령하면서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 이라크 민병대는 30억달러(약 4조41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지원받는데 이는 25만 명에 이르는 민병대의 급여로 대부분 지출되고 있다. 이라크 정부로부터 군사 산업을 포함한 운송, 통신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란 공화국 수비대는 각종 보조금 및 인허가에서 노골적인 특혜를 받고 있다. 이란은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 이란은 이라크의 부와 자원을 활용해 왔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이란 간섭에 불만 쌓여가는 이라크

국경을 접한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 상실은 이란 입장에서는 엄청난 타격이다. 이라크와 이란 국민은 긴밀하게 결합돼 있으며 활발하게 상호 교류가 진행되고 있다. 이란이 이라크에 대한 통제력을 상실할 경우 이란 국민에게 금방 알려질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이란 정부의 국민 통제력 상실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이라크를 지원한다는 명분하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이라크가 내전으로 붕괴할 경우 이슬람국가(IS) 같은 급진적 세력이 정권을 장악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 2기 정부는 다른 접근 방식을 택하고 있다. 2월 4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재무부는 이란에 대한 제재를 위반하는 모든 사람에게 즉각적으로 제재를 가하거나 적절한 집행 조치를 취할 것을 발표했다. 3월 7일에는 이라크가 이란의 전기를 구매하는 것을 허용했던 제재 면제 조치 갱신을 거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적대시하던 세력의 약화 및 붕괴가 발생한 상황을 이용해 이란에 대한 압박을 최대한 높이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중동의 또 다른 강국인 튀르키예도 이라크에서 이란 영향력 축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튀르키예는 자국과 이라크를 연결하는 교역로를 구축, 유럽과 아시아를 연결하는 새로운 경로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이란은 국제 무역로에서 배제되는 동시에 그동안 페르시아만과 인도양에 접하고 있는 자국 항구를 이용해 아시아와 유럽 국가를 연결하는 무역 허브로서 성장하겠다는 기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이란은 위기 상황을 돌파하기 위해 국내 상황을 안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2024년 12월 이란 정부는 여성에게 머리카락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위반했을 경우 징역 및 여행 금지 등의 처벌을 부과하는 법률의 시행을 중단했다. 국내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외부 압력에 대응하겠다는 계산이다. 이와 더불어 그동안 금기시되던 언론 매체와 온라인의 자유로운 토론을 허용하고 있다. 조만간 트럼프 2기 정부로부터 더욱 강력한 제재와 압박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는 상황에서 이란 지도부는 국내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미국의 압력에 대응할 수 있는 단결된 힘을 만들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란의 의도가 달성되기 위해서는 이라크를 계속 자신의 영향권에 붙잡아 놓아야 한다. 하지만 이란의 개입과 간섭에 불만이 쌓여온 이라크는 대외 여건의 변화를 계기로 독자적인 행보를 확대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과 이라크의 연결을 약화하기 위해 이라크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에 나서고 있다. 불리한 상황에 놓인 이란이 자국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이라크와 관계를 새로이 정립할 것인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