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명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 대표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화성양조장
김기명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 대표가 경기도 화성시 송산면의 포도밭에서 포도를 수확하고 있다. /사진= 화성양조장

2024년 9월 23일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경기 화성시 송산면 막걸리 양조장을 찾았다. 송 장관이 찾아간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은 송산면 특산품 포도를 이용해 다양한 막걸리를 만드는 곳이다. 송산면에는 포도 농가가 많고, 포도즙을 만드는 가게도 많아 길을 걷기만 해도 포도 향이 배어난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양조장을 찾은 건 우리 쌀과 농산물의 소비 촉진을 위한 돌파구로, 막걸리 같은 전통주를 주목했기 때문이다. 김기명 화성양조장 대표와 정덕영 팔팔양조장 대표, 고성용 한강주조 대표 등 국내 전통주 업계를 대표하는 젊은 양조인과 만난 송 장관은 “우리 쌀 소비 촉진을 위해 전통주 산업 진흥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고 약속했다.

포도밭 사이에 자리 잡은 화성양조장은 송산면의 특징을 살린 포도 막걸리로 유명하다. 우리 쌀과 포도가 함께 쓰이는 포도 막걸리는 쌀과 농산물 소비 촉진이라는 목표에 딱 들어맞았다. 김 대표는 “지역에서 나오는 재료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에 송산 포도를 이용한 막걸리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김기명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 대표가 포도를 이용한 막걸리 제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화성양조장은 지역인 송산 포도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화성= 이종현 기자
김기명 화성양조장(마스브루어리) 대표가 포도를 이용한 막걸리 제조 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화성양조장은 지역인 송산 포도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 /화성= 이종현 기자

포도 1만t 쓰는 포도 막걸리…개발에만 2년

화성양조장의 대표 제품인 ‘로제’는 캠벨 품종 포도를 넣어서 만든 막걸리다. ‘사워’는 청수 품종을 넣었다. 두 제품 모두 골드퀸(고품질 향미 쌀로, 밥을 지을 때 팝콘 향과 누룽지 향이 나는 것이 특징) 3호인 수향미라는 우리 쌀을 사용하고, 송산면에서 재배한 포도를 쓴다. 이 양조장에서 1년에 사용하는 포도만 1t에 달한다. 

화성양조장의 포도 막걸리는 포도 향이나 색소만 넣은 막걸리가 아니다. 실제 포도를 이용한다. 그만큼 향이나 색소를 사용하는 다른 막걸리보다 비싸고, 맛과 향도 다르다. 

국내에도 청수 품종 포도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은 있지만, 막걸리를 만드는 곳은 화성양조장이 거의 유일하다. 김 대표는 “이벤트성으로 포도 막걸리를 내놓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처럼 1년 내내 포도 막걸리를 지속적으로 생산하는 곳은 없다”며 “그만큼 포도를 이용해 막걸리를 만드는 게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도 막걸리가 세상에 나오기까지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제품 개발을 시작한 건 2021년이었고, 첫 제품이 나온 건 2023년이었다. 포도를 넣어서 막걸리를 빚으면 갈변하면서 색이 탁해지기 때문에, 갈변을 막는 방법을 찾는 게 가장 중요했다. 김 대표는 포도를 일정 온도로 높여서 가열한 뒤 착즙해 쌀 발효조에 넣고 막걸리를 만드는 방식으로 갈변을 막았다. 와인은 포도를 으깨서 만드는데, 화성양조장 포도 막걸리는 포도즙을 사용한다. 이후 저온에서 숙성하면서 포도 특유의 색을 지켰다. 

막걸리를 만들 때 빠질 수 없는 누룩을 배합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화성양조장은 서로 다른 네 가지 누룩을 섞은 뒤 이를 물에 불려서 사용하고 있다. 김 대표는 “발효 온도와 시간, 급수량을 바꿔가면서 어떤 누룩을 어떻게 섞는 게 과일 맛에 가장 어울리는지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화성양조장처럼 막걸리에 과일을 넣는 곳은 꾸준히 늘고 있다. 경북 문경의 문경주조가 2000년대 중반 오미자를 넣은 막걸리로인기를 끈 이후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젊은 소비자와 여성 소비자가 늘어난 것도 과일 막걸리의 인기 덕분이다.

송미령(오른쪽)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024년 9월 23일 경기 화성시 화성양조장에서 김기명 대표로부터 생산 전통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송미령(오른쪽)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024년 9월 23일 경기 화성시 화성양조장에서 김기명 대표로부터 생산 전통주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농림축산식품부

과일 넣은 막걸리가 맛과 영양 모두 앞서

과일을 넣은 막걸리는 맛과 향, 영양에서 일반 막걸리보다 나은 모습을 보인다. 손홍석 동신대 교수 연구진은 2014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파인애플을 넣은 막걸리의 품질 특성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는데,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막걸리보다 유기산 함량이 많았다. 유기산은 막걸리 맛과 산미를 결정하는 주된 성분이다. 이원종 강릉원주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연구진이 2011년 한국식품영양과학회지에 발표한 블루베리 첨가 막걸리에 대한 논문도 마찬가지다. 연구진은 블루베리 함량을 5%, 10%, 20%로 나눠 아예 넣지 않은 막걸리와 성분을 비교했는데, 블루베리를 10% 넣은 막걸리가 당도와 산도에서 아무것도 넣지 않은 막걸리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이대형 경기도농업기술원 지방농업연구사는 “과일은 당류가 있어서 맛을 좋게 할 뿐만 아니라 유기산·폴리페놀·플라보노이드 같은 기능성이 다양한 성분도 있어서 (과일을 넣은 막걸리는) 영양학적으로도 좋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막걸리에 과일을 넣지 않고 과일 맛이나 향을 내는 향료나 색소만 첨가해도 과일 막걸리로 인정하는 정책이 추진되기도 했다. 기획재정부가 2024년 7월 세법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탁주(막걸리) 제조 시 첨가 가능한 원료에 향료와 색소를 추가하겠다고 밝히면서 막걸리 업계의 찬반 논쟁이 시작됐다. 지금은 향료나 색소를 첨가하면 막걸리가 아닌 ‘기타주류’로 분류돼 일곱 배 정도 높은 세금을 내야 한다. 기획재정부는 막걸리 대중화를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지만, 전통주 업계에서는 강하게 반발했다.

실제 과일이 아닌 향료와 색소만 써도 막걸리로 인정하면 화성양조장처럼 오랜 기간 연구와 노력을 거쳐 과일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이 피해를 볼 것이라는 우려였다. 김 대표는 “향료 한 방울로 포도 막걸리라는 이름을 붙이면 몇 톤씩 포도를 써가면서 포도 막걸리를 만들 이유가 없다”며 “프랑스에서는 와인에 첨가하는 재료를 까다롭게 관리하는데, 한국은 오히려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결국 기획재정부는 올해 초 세법 개정 후속 시행령 개정안을 발표하면서 이 내용을 제외했다. 전통주 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 실제 과일을 넣은 막걸리만 막걸리로 인정할 수 있게 현행 제도를 유지한 것이다. 이 연구사는 “주세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일을 넣고 발효를 통해 술을 만드는 어려운 과정 대신 향료와 색소를 넣어 쉽게 만드는 과정을 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지역 특산주를 만들 때 지역 농산물을 100% 사용하지 않고 향료와 색소로 빈 부분을 채우면, 농산물 소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조선비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