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브랜드는 고유성이다. 그 브랜드가 아니면 구현할 수 없는 고유한 태도와 가치, 세계관이 브랜드의 본질이다. 브랜딩은 그 고유한정체성을 어떻게 경험으로 번역해 내는가의 과정이다. 소비자는 브랜드 메시지를 잘 듣지 않는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행동과 공간, 인터페이스, 상품과 서비스를 통해 경험으로 브랜드를 ‘느낀다’.
그래서 브랜딩은 디자인이나 광고에 한정되지 않는다. 브랜딩은 고객과 만나는 모든 접점에서 일관된 경험 체계를 설계하고 실행하는 일이며, 브랜드 철학이 실생활에서 느껴지도록 하는 체계적 노력이다. 가치관이 정립돼 있어도 그것을 일관된 고객 경험으로 전환하는 시스템이 없다면, 브랜딩은 성공하기 어렵다. 월마트는 ‘가격 경쟁력’이라는 브랜드 철학을 물류·정보기술(IT)·머천다이징(MD) 시스템으로 구체적으로 구현한다. 일본 최대 잡화점 ‘돈키호테’는 상품 진열, 공간 구성, 운영 방식 전반을 통해 ‘이곳은 특별한 발견이 있는 곳’이라는 일관된 경험을 만들려고 한다.
브랜드 철학을 살아 숨 쉬게 하는 엉뚱한 방식의 브랜딩도 있다. 엉뚱한 브랜딩은 브랜드 경험 체계의 범위를 기존 제품군 너머까지 확장하는 시도에서 많이 발견된다. 소비자로 하여금 ‘여기서 왜 이런 걸 하지?’라는 의문을 품게 하고, 곧 그 안에서 브랜드 철학을 깨닫게 하는 방식이다. 다음의 네 브랜드는 그 철학을 비전통적이고 엉뚱한 방식으로 풀어냈지만, 경험으로 완성했기에 강력한 브랜딩에 성공한 사례다.

1│디젤의 디젤 농장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은 자연 속에서도 실현된다.’ 디젤(Diesel)은 1978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한 프리미엄 데님 브랜드다. ‘Only the Brave’라는 슬로건 아래 대담함, 저항, 비주류 감성을 키워드로 삼아 전 세계 젊은 세대를 매료시켜 왔다. 디젤은 1994년부터 이탈리아 북부 비첸차(Vicenza) 언덕에 ‘디젤 농장(Diesel Farm)’을 운영하고 있다. 포도밭, 올리브밭, 와인 저장고, 숙박 시설까지 갖춘 이 농장에서 디젤은 유기농 와인과 올리브유를 생산한다. 농업과 패션은 전혀 관련 없어 보이지만, 디젤은 이 농장을 통해 디젤 브랜드가 단지 옷이 아니라 ‘삶의 방식’임을 선언한다. 자연, 독립성, 창조성. 이 모든 가치는 디젤이 늘 강조해 온 브랜드 철학이다. 이곳에서 생산된 와인은 한정판으로만 판매하며, ‘디젤 농장의 와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브랜드의 상징이 된다. 소비자는 단지 디젤 옷을 입는 것을 넘어, 디젤이 추구하는 삶을 ‘마시는 경험’까지 하게 된다.

2│이케아의 이케아호텔과 레스토랑
‘가구는 삶의 방식 전체와 연결되어 있다.’ ‘민주적 디자인’을 실현한다는 이케아(IKEA)는 단지 가구를 파는 브랜드가 아니다. 수납 공간 최적화, 조립 방식, 플랫팩 배송, 쇼룸과 레스토랑까지 이어지는 모든 구성은 ‘일상은 더 합리적이고 편리할 수 있다’는 이케아 철학을 공간 경험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스웨덴 엘름훌트(Älmhult)는 1953년, 창업자 잉그바르 캄프라드(Ingvar Kamprad)가 이케아 최초의 매장을 연 장소다.
이곳에 있는 이케아호텔은 이케아의 철학을 얼마나 생활 깊숙이 적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객실마다 용도와 분위기가 다른 이케아 제품이 배치돼 있으며, 쇼룸이 아닌 ‘이케아식 삶’이 구현된 체험형 공간에서 묵는 경험이 가능하다. 이케아호텔은 숙박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 철학이 담긴 실물 세계다. 누군가는 가구가 필요해서, 또 누군가는 ‘이케아답게 사는 법’을 배우고자 이곳을 찾는다. 또한 매장 내 이케아 레스토랑은 브랜드의 미각적 브랜딩 공간이다. 단순한 부대시설이 아니라 스웨덴식 식문화, 합리적 가격, 심플한 조리법 등 이케아 철학을 가장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장소다. 식사 하나조차도 ‘이케아적 삶’을 구성하는 요소가 된다.

3│이솝의 퀴어 라이브러리
‘감각과 가치가 교차하는 문화적 공간.’ 이솝(Aesop)은 호주에서 탄생한 프리미엄 스킨케어 브랜드다. 제품보다 공간과 대화를 중시하는 브랜드로, 매장 하나하나를 철학의 실험실처럼 운영한다. 로컬 건축가·예술가와 협업해 각기 다른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것도 브랜드의 미학적 정체성을 강화하는 전략이다. 2021년, 이솝은 서울·뉴욕·런던 등에 ‘퀴어 라이브러리(Aesop Queer Library)’ 라는 팝업 공간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화장품을 판매하지 않고, 성소수자(LGBTQ+) 작가의 책을 나눠 주는 도서관 형태의 매장을 운영했다. 매장 내부는 이솝 제품처럼 절제된 컬러와 구조로 구성돼 있으며, 방문객은 책을 읽거나 가져갈 수 있다. 여기에는 ‘우리는 이런 고객을 환영한다’ ‘우리는 이런 세상을 지지한다’라는 가치 기반 메시지가 깔려 있다. 이솝은 감각을 판다. 향·질감·조명·언어·디자인 모두가 경험의 구성 요소다. 그리고 이 퀴어 라이브러리는 그런 감각이 단지 미적인 차원이 아니라, 문화·사회적 가치를 담는 그릇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한 사례다.

4│파타고니아의 철물점과 퀄리티랩
‘가장 친환경적인 옷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옷이다.’ 환경보호를 브랜드 철학으로 삼는 파타고니아(Patagonia)는 이 철학을 광고뿐 아니라 실천으로 증명해 낸 브랜드다. 2013년부터 운영한 ‘Worn Wear 프로그램’ 은 헌 옷을 수선해 다시 쓰게 하고, 중고 제품을 리셀하며, 이동식 수리소 ‘파타고니아 철물점’을 운영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이 캠페인은 제품을 더 많이 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제품을 덜 사게 하는 활동이다. 이 철학은 한국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서울 삼성동 코엑스 파르나스몰에 있는 ‘파타고니아 퀄리티랩(Quality Lab)’은 브랜드 철학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다. 여기서는 파타고니아 제품뿐 아니라 브랜드와 상관없는 의류까지 무상으로 수선해 준다. 방수 의류 전용 세탁, 발수 코팅, 커스텀 자수, 환경 다큐멘터리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운용된다. 파타고니아는 ‘품질은 곧 환경 문제’라는 철학 아래, 오래 입는 것이 지구를 보호하는 일임을 소비자와 함께 실천한다. 그 철학은 지금, 물리적 공간을 통해 소비자와 교감하고 있다.
이상의 네 브랜드는 ‘본업’에 갇히지 않고, 철학과 정체성을 색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단순히 엉뚱한 일을 벌인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본질을 더 잘 전달하려고 의도적으로 ‘다른 방식’을 택한 것이다. 엉뚱한 브랜딩은 단지 놀라움이나 화제를 위한 전략이 아니다. 브랜드 철학이 얼마나 깊은지 또 그것을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지의실험이다. 엉뚱함은 주목을 끌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철학을 감각적으로 번역하는 창의적인 작업이다.
그리고 그런 엉뚱한 브랜딩이야말로 브랜드를 더 오래, 더 깊게 각인시키는 힘이 있다. 브랜드 철학이 깊다면, 브랜드는 자기가 만들지 않는 것에도 정체성을 담을 수 있다. 제품에서 공간으로, 서비스에서 문화로⋯. 브랜드의 언어는 확장된다. 브랜드는 고유성이다. 브랜딩은 그 고유성을 ‘살아 있는 경험’으로 옮기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리고 때로는 가장 그 브랜드다운 순간이, 가장 그 브랜드답지 않아 보이는 엉뚱한 시도 속에서 발견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