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파리 파리’ 표지. 김진영
‘파리 파리 파리’ 표지. 김진영

이탈리아 피사에 피사의사탑을 보러 갔던 적이 있다. 너무나 유명한 이 사탑을 보기 위해 전 세계에서 온 사람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하나같이 희한한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기울어진 피사의사탑 앞에서 몸은 뒤로 기울이고 두 손은 앞으로 뻗은 어정쩡한 자세였다. 알고 보니 이렇게 사진을 찍으면 기울어진 피사의사탑을 손으로 받쳐 들고 있는 듯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이 모두 같은 행동을 한다는 게 참 이상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이 장소에서 어떤 사진을 남겨야 하는지 모두가 알고 있는 듯했다. 암묵적인 약속처럼 말이다. 누가 처음 이런 포즈를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피사의사탑을 방문한 이라면 거의 예외 없이 한 번쯤은 시도하는 포즈가 돼버린 것이다.

코린 비오네(Corinne Vionnet)는 이러한 관광객의 행동과 시선에 흥미를 느꼈다. 관광객은 유명 여행지를 방문할 때 그곳을 새롭고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보기보다 익숙한 장면을 그대로 답습해 바라보고 경험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미 봐서 알고 있는 그대로 대상을 다시 보는 것이 여행의 일부가 된 것이다. 

그것은 사진 촬영에서도 드러난다. 비오네가 흥미롭게 여긴 점은 관광객이 유명 여행지를 방문해서 사진을 찍을 때도 ‘사진을 통해’ 이미 본 적이 있거나 집단적 상상 속에 자리한 기존 이미지를 찍으려 한다는 점이었다. 사람은 자기 눈으로 새롭게 대상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사진을 찍기보다 이미 머릿속에 익숙하게 자리 잡은 어떤 ‘상’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경향이 있다.

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정형화된 구도의 사진 100장을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레이어를 활용해 우선 겹쳐 놓았다. 포토샵에는 이미지를 평소처럼 선명하게 할지 아니면 흐릿하게 보이게 할지 조정하는 ‘투명도(opacity)’라는 항목이 있는데, 각 이미지의 투명도 항목을 낮춰 흐릿하게 만들었다. 각각은 선명했던 사진의 투명도를 낮춘 후 100장을 겹쳐 놓자,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김진영
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정형화된 구도의 사진 100장을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레이어를 활용해 우선 겹쳐 놓았다. 포토샵에는 이미지를 평소처럼 선명하게 할지 아니면 흐릿하게 보이게 할지 조정하는 ‘투명도(opacity)’라는 항목이 있는데, 각 이미지의 투명도 항목을 낮춰 흐릿하게 만들었다. 각각은 선명했던 사진의 투명도를 낮춘 후 100장을 겹쳐 놓자,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김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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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곧 여행이라는 행위 자체가 ‘발견’이 아니라 ‘재현’에 가까운 행위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는 낯선 장소에 도착했을 때조차도 그곳을 새로운 시선으로 마주하려 하기보다는 이미 알고 있는 어떤 이미지에 맞춰 그 장소를 소비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진짜 피사의사탑을 보기보다는 이미 수없이 보아온 ‘기울어진 사탑을 받치고 있는 사람’ 의 이미지를 위해 그 자리에 서는 것이다.

이 점에 주목한 비오네는 웹에 업로드된관광객의 사진을 수집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다양한 온라인 관광 여행 사이트에서 에펠탑, 센강, 개선문, 루브르박물관, 노트르담대성당, 퐁피두 센터, 그랑팔레 등 파리의 유명 장소를 찍은 동일하게 표준화된 상징적인 장면이 발견됐다. 이런 장면을 ‘파리 파리 파리(Paris Paris Paris)’에 담았다.

한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작가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은 정형화된 구도의 사진 100장을 포토샵 프로그램에서 레이어를 활용해 우선 겹쳐 놓았다. 포토샵에는 이미지를 평소처럼 선명하게 할지 아니면 흐릿하게 보이게 할지 조정하는 ‘투명도(opac-ity)’라는 항목이 있는데, 각 이미지의 투명도 항목을 낮춰 흐릿하게 만들었다. 각각은 선명했던 사진의 투명도를 낮춘 후 100장을 겹쳐 놓자, 흐릿하고 뿌연 이미지가 만들어졌다.

파리의 상징적인 장소가 사진적 기반을 가지면서도 회화적 요소와 개념적 깊이를 지닌 새로운 이미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같은 장소, 같은 구도, 같은 각도에서 찍힌 사진이 한자리에 모여 이 장소가 어떻게 집단적 기억 속에 고정돼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듯 보인다.

이 작업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던진다. 우리는 과연 진짜 장소를 ‘보고’ 있는가. 아니면 머릿속에 자리한 이미지를 ‘확인’ 하고 있는 것일까. 여행지에서 사진을 찍는 행위는 개인의 기록이자 표현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익숙한 이미지의 반복, 소비, 복제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국 여행이란 행위마저도 정형화된 틀 안에 가두는 건 아닐까.

비오네는 관광의 ‘이미지화 현상’을 강조하기 위해 관광객 모습도 함께 책에 담았다. 관광객의 모습은 장소 사진과 달리 다양한 구도의 사진이 겹쳐 완성되었다. 작가가 관광객의 모습 중 강조해 담은 장면은 단연 사진을 찍는 행위다. 관광객은 열심히 사진 찍는 행위에 몰두한다. 그런데 이들이 찍은 사진은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화되어 있다. 책은 관광지의 모습과 관광객의 모습을 번갈아 가며 보여줌으로써, 오늘날 여행이 ‘낯선것을 경험하고 발견하는 여정’이 아니라 ‘익숙한 이미지를 재현하는 의식’으로 변모했음을 드러낸다.

그 결과 여행은 더 이상 개별적이고 고유한 체험이 아니라, 집단적으로 정해진 시선과 방식에 따라 수행되는 하나의 문화적 관습처럼 보인다. 우리가 바라보는 장소, 우리가 남기는 사진, 우리가 기억하는 여행은 결국 이미 만들어진 이미지의 궤적을 따라 걷는 반복의 행위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반복 속에서, 진짜 여행의 의미는 점점 희미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이 작업은 웹 기반 이미지 문화가 가진 역설을 보여준다. 인터넷은 자유와 새로움을 약속하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현실 인식에 강력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비오네의 작업은 집단적 상상력과 공유된 이미지가 어떻게 우리 경험에 영향을 미치는지 시각적으로 증명해 내는 듯하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 서울대 미학과 박사과정

비오네는 이렇게 말한다. “같은 장소 여러 장의 사진을 하나의 이미지로 모아서, 우리가 간 장소의 사진을 찍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무엇이고, 관광객으로서 우리 경험은 어떤 것인지 질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사진은 편재하며,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다.” 

‘파리 파리 파리’는 오늘날 관광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웹을 통한 이미지의 대량 유통이 우리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에 관해 질문을 던진다. 여행은 더 이상 낯선 것과의 조우나 예기치 않은 발견이 아니라, 예측 가능한 이미지의 재현이 되어 버린 게 아닐까. 오늘날 이미지의 풍요 속에서 여행은 어쩌면 다소 빈곤해졌는지도 모른다. 

김진영 사진책방 ‘이라선’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