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24년 11월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 있는 우주 발사 시설 ‘스타베이스’를 바라보는 모습.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2024년 11월 텍사스주 브라운스빌에 있는 우주 발사 시설 ‘스타베이스’를 바라보는 모습. /로이터뉴스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심복이 된 테크 억만장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대통령과 각자의 길을 가기로 한 듯하다.”

뉴욕타임스(NYT)는 4월 8일(이하 현지시각) 보도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정부효율부(DOGE) 공동 수장을 맡아 트럼프 대통령의 ‘1호 친구(퍼스트 버디)’로 불린 머스크를 이렇게 묘사했다. 머스크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강한 불만을 표출하면서 DOGE 수장 자리에서 몇 주 내 물러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를 위해 2억7400만달러(약 4020억원)를 기부하며 지지한 머스크가 트럼프와 결별 수순에 나섰다는 관측이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반대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머스크는 4월 5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이 주최하는 화상 회의에 참석해 “미국과 유럽이 매우 긴밀한 파트너십을 구축하길 바란다”라며 “이상적으로는 무관세 체제로 나아가 사실상의 자유무역 지대를 실질적으로 창출하길 희망한다”고 했다. 머스크가 트럼프의 관세정책과 반대되는 ‘유럽 무관세’ 주장을 펼친 것이다. 

불매 타깃 된 테슬라

머스크는 트럼프 관세정책의 사령관으로 불리는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 담당 고문과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머스크는 4월 5일 소셜미디어(SNS) 엑스(X·옛 트위터)에 “(나바로가 보유한) 하버드대 경제학 박사는 좋은 게 아니라 나쁜 것이다. 자아(ego)가 두뇌(brains)보다 크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했다. 특히 나바로 고문이 최근 CNBC 방송에서 “우리는 모두 머스크가 자동차 제조 업자라고 알고 있지만, 그는 제조 업자가 아니라 자동차 조립 업자다. 그는 값싼 외국 부품을 원한다”라고 하자 머스크는 “그는 뭐 하나 이룬 게 없다”라고 날을 세웠다. 

머스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나바로는 진짜 멍청이다”라며 “그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명백히 틀렸다”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테슬라는 가장 비싼 미국산 자동차다” “나바로는 벽돌 자루(a sack of bricks)보다 멍청하다”라고도 했다.

머스크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건 그가 운영하는 테슬라가 사업적으로 큰 타격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테슬라 주가는 상호 관세가 발표된 4월 2일 이후 나흘간 21.5% 하락하면서 시가총액 2090억달러(약 307조원)가 사라졌다. 이에 테슬라 주주를 중심으로 머스크의 정치 행보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퓨처펀드액티브 상장지수펀드(ETF) 공동 창립자이자 테슬라 주주인 개리 블랙은 “테슬라의 전기차 연간 인도량과 수익 전망이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크다”라며 “머스크는 결단해야 한다”라고 했다. 3월 29일부터 미국 전역에 있는 200개 이상 테슬라 매장 앞에서 머스크의 행보에 반대하는 ‘테슬라 해체(Tesla Takedown)’ 시위도 머스크에게는 부담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테슬라의 2024년 1분기 전기차 인도량은 33만6681대로 전년 동기 대비 13% 줄었다. 올해 1~2월 유럽 내 전기차 등록 건수는 전년 대비 31% 늘었지만, 테슬라 전기차 인도량은 같은 기간 43% 급감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4월 8일 “테슬라 중고차 가격도 하락하고 있다”며 “머스크의 정치적 활동도 악재로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했다. 트럼프 관세정책의 주요 타깃인 중국과 관계도 머스크가 트럼프의 관세정책에 반대하는 이유로 꼽힌다. 머스크는 중국 상하이에 테슬라 공장을 운영하는 등 중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업해 왔다. 하지만 트럼프가 중국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면서 중국 내 대미(對美) 여론이 악화했고, 중국에서 테슬라는 정치적 불매의 상징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테슬라 주식에 대한 낙관적인 전망으로 유명한 증권사 웨드부시의 댄 아이브스 연구원은 4월 6일보고서에서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관세로 중국 소비자는 테슬라 대신 BYD(비야디), 니오, 엑스펑(샤오펑) 등 중국산 전기차를 더 사게 될 것”이라며 “중국 상하이에 공장을 두고 있는 테슬라가 중국 내 정치적 불매의 상징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머스크 호소에도 관세 부과하자 “정치 활동 끝날 듯” 관측

머스크가 트럼프에게 관세정책 보류를 요청하는 ‘개인적인 호소’를 전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만큼 두 사람의 결별은 예정돼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4월 7일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머스크가 트럼프에게 직접 관세정책 보류를 요청하는 개인적 호소를 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라고 했다. 머스크의 동생이자 테슬라 임원인 킴벌 머스크는 트럼프의 관세정책을 거침없이 비판하고 있다. 그는 4월 7일 엑스에 “(트럼프의) 관세는 미국 소비자를 겨냥한 구조적이고 영구적인 세금”이라며 “트럼프가 모든 세대를 통틀어 미국에서 가장 높은세금을 부과하는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했다. 외신은 킴벌 머스크의 비판에 머스크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킴벌 머스크의 비판은 앞서 머스크의 나바로 비판 직후 나온 것”이라며 “머스크의 뜻도 같을 것”이라고 했다. 머스크와 트럼프의 ‘브로맨스(남자 간 우정)’에 균열이 생기면서 머스크의 정치적 활동이 조만간 마무리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정치 매체 악시오스도 4월 7일 “테슬라 투자자의 관심은 머스크가 트럼프 행정부와 얼마나 빨리 더 거리를 두는가에 있다”라며 “트럼프는 머스크가 몇 주 내 DOGE를 떠나 테슬라로 복귀할 가능성을 언급했고, 머스크도 자신의 역할이 조기에 마무리될 수 있다고 암시했다”라고 했다. 

Plus Point

8년간 냉·온탕 오간 트럼프·머스크 관계, 오랜 친구 힘들 듯

트럼프와 머스크의 인연은 2016년 미국 대선부터 시작된다. 머스크는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 장관을 지지하면서 트럼프에 대한 악평을 쏟아냈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걸 놓고 머스크는 “미국에 좋은 영향을 미칠 만한 성격이 아니다”라고 하기도 했다. 이에 트럼프는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정부 보조금이 없으면 무가치한 존재”라고 쏘아붙였다.

두 사람이 공개적으로 만난 건 2016년 12월이다. 트럼프는 대선 중 테크 업계와 대립각을 세웠는데, 당선 직후 애플,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 수장을 트럼프 타워로 초청했고, 머스크도 함께 불렀다. 이후 두 사람은 수차례 만남을 이어갔고, 머스크는 2017년 1월 트럼프 1기 정부의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에 합류했다. 하지만 트럼프가 2017년 6월 파리기후변화협약을 탈퇴하자 머스크는 반발하며 경제자문위원회에서 사임하면서 두 사람 사이는 멀어졌다. 그러나 2020년 1월 트럼프가 CNBC에 출연해 “테슬라가 포드와 제너럴모터스(GM)의 기업 가치를 앞지른 공을 머스크에게 돌려야 한다”라며 “머스크는 우리의 위대한 천재 중 한 명”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어색함은 깨졌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당시 테슬라 공장 폐쇄를 놓고 캘리포니아주 보건 당국과 머스크가 충돌할 때 트럼프는 그의 편에 서기도 했다. 머스크는 거듭된 트럼프의 러브콜에 화답했다. 미 의회 폭동 사태의 원흉으로 지목된 트럼프의 엑스(당시에는 트위터) 계정이 영구 정지되자 2022년 트위터를 인수한 머스크가 비난을 뚫고 국민투표에 부치면서 트럼프의 계정을 복구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이 완전히 화해한 건 아니었다. 머스크가 2022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트럼프의 팬이 아니다. 그는 파괴적이며 헛소리 세계 챔피언이다”라고 말하자, 트럼프는 “머스크가 과거 나에게 투표했다고 말해놓고는 최근엔 공화당에 투표해 본 적이 없다는 등 오리발을 내밀었다. 머스크는 헛소리의 대가”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둘 사이 브로맨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트럼프가 재선 도전에 나선 2024년부터다. 머스크는 트럼프의 불법 이민 규제 강화 필요성에 공감하는 글을 수차례 올렸고, 트럼프가 2024년 7월 유세 현장에서 총격을 당한 후 주먹을 불끈 쥐며 강한 인상을 남기자 그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드러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머스크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최소 2억7400만달러(약 4020억원)를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의 정치자금 기부자 가운데 가장 많은 금액이다. 머스크는 트럼프 2기 정부 DOGE 공동 수장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두 사람 관계가 얼마나 갈지는 미지수다. 자아가 강한 두 사람이 언제라도 이권에 얽힐 경우 과거처럼 서로를 비난하는 사이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복스미디어는 “두 사람이 오랫동안 친구로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많지 않다”라며 “올해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윤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