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송에서 한국의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키워내겠다.”
이명수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KBIO Health·이하 재단) 이사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재단의 비전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2010년 출범한 재단은 충북 청주 오송첨단의료복합단지(이하 오송첨복단지)를 관할하는 핵심 기관이다. 축구장 136개 크기(113만㎡) 오송첨복단지에 신약개발지원센터,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비임상지원센터, 바이오의약생산센터 등 인프라를 마련해 입주 기업 지원을 도맡고 있다. 덕분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연구개발(R&D), 생산, 인허가 등 바이오 기업에 필요한 전 주기적 지원이 가능한게 특징이다. 이 이사장은 “바이오산업은 공공성과 성장성을 모두 갖춘 분야인 만큼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 고 강조했다. 다음은 2024년 10월 3년 임기를 시작한 이 이사장과 일문일답.
전국 곳곳에 바이오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현황이 궁금하다.
“현재 전국에는 오송 외에도 16개 이상 바이오헬스 클러스터가 조성돼 있다. 대학, 병원, 기업, 연구기관이 모여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함께 추진하는 구조다. 단순 집적을 넘어 협력과 인적, 물적, 기술적 자원 순환이 실제로 작동하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바이오 클러스터의 핵심이다. 정부도 올해 1월 국가바이오위원회를 출범시킨 뒤, 바이오산업을 제2의 반도체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클러스터 간 연계 강화, 유망 기술 집중 지원 등 실질적인 기능 재편에 속도를 내고 있다.”
다른 지역 바이오 클러스터와 비교했을 때, 오송의 경쟁력은.
“오송첨복단지는 바이오헬스 분야에 집중 투자해 R&D, 생산, 인허가까지 한곳에서 가능한 국내 유일의 통합형 클러스터다.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여섯 개 국책 기관과 의료· 연구기관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 행정·기술 지원이 빠르고 효율적이다. 현재 260여 개 기업과 기관이 입주해 있고, 백신, 바이오 의약품, 임상시험 등 분야별 특화 사업도 활발히 진행 중이다. 올해 2분기에는 바이오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이노랩스’도 문을 열 예정이다. 이곳에서 이들의 성장을 돕기 위한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시행할 예정이다. 즉, 단순 집적지를 넘어 실질적인 산업화 성과를 낼 수 있는 완결형 생태계를 갖췄다는 점이 오송첨복단지의 최대 강점이다.”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바이오산업 육성이 중요한 이유는.
“우선 전 세계적으로 바이오산업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인구 고령화에 따른 만성질환 증가와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같은 감염병 위험이 커지고 있어서다. 게다가 바이오산업은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라 고부가가치 기술 산업이다. 국민 건강과 직결된 사회적 기반이기도 하다. 바이오산업을 잘 육성한다면 한국엔 제2의 반도체 산업이 될 수 있다. 한국은 IT와 정밀 의료 기술을 빠르게 결합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 유전자 편집부터, 맞춤형 치료, 인공지능(AI) 진단 같은 융합 기술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즉, 바이오산업은 공공성과 성장성을 모두 갖춘 분야로, 국가 전략산업으로 육성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 재단이 앞장서 이를 돕겠다.”
다수의 기업과 인재가 수도권에 몰려있어 애로 사항도 많을 것 같은데.
“재단이 출범했을 당시 관련 제도와 인프라가 부족해 어려움이 많았던 건 사실이다. 수도권에 비해 인재 확보도 어려웠다. 그럼에도 재단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국내 백신 개발을 위한 기초연구를 수행하고, 치매 질환 치료제 공동 연구를 통해 국내 기업에 기술이전을 하는 등 다수의 실질적인 성과를 쌓아왔다. 게다가 바이오 인재 양성에도 앞장서고 있다. 실무 중심의 교육과 바이오 의약품 생산 전문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운용하고 있는데, 올해 3월 기준 누적 취업률이 88.2%를 기록할 정도로 성과가 뚜렷하다.”
보건복지부가 2025년부터 2029년까지 5년간 첨단의료복합단지 육성 정책 방향을 담을 ‘제5차 첨단의료복합단지 종합계획’을 수립할 예정인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이 반영돼야 한다고 보나.
“이번 종합계획은 첨단의료복합단지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대(大)전환점이 돼야 한다.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R&D 역량 강화, 클러스터 간 협력 체계 구축, 생태계 지원 기능 확대, 인프라 고도화, 인재 양성, 재단 운영의 안정화 등이 핵심 과제라고 본다. 우리 재단 역시 생성 AI, 양자 기술 등 디지털 기술 변화에 대응해 R&D 지원 방향을 새롭게 정비하고 있으며, 글로벌 선진 강국을 향한 여러가지 변화가 계획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논의 중이다.”
최근엔 제약 산업뿐 아니라 첨단 의료 기기 산업 분야도 세계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한국의 경쟁력은.
“오송첨복단지에는 핵심 기능 중 하나로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를 별도로 운영 중이다. 이곳에선 기초연구를 실제 제품으로 전환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설계, 시제품 제작, 제조·품질관리 기준(GMP) 기반 제조, 인허가까지 전 주기를 지원하며, 특히 AI와 디지털 기술을 선제적으로 반영해 시장 진출 가능성을 키우고 있다.
다만 아직 ‘죽음의 계곡’ 문제는 여전하다. 벤처기업이 기술 개발에는 성공했지만, 자금 부족 등으로 사업화에 실패하는 상황을 일컫는다. 현재 재단에서 벤처기업이 죽음의 계곡을 무사히 건너게 도와주고 있다. 지금까지 시각장애인을 위한 증강현실(AR) 글라스 등 60여 개 혁신 의료 기기 상용화를 지원했다. 앞으로도 디지털 헬스케어와 차세대 진단 기술의 제품화를 집중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날로 어려워지는 통상 환경에서 바이오산업이 한국 경제에 어떤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보는가.
“글로벌 보건 산업 시장이 약 13조3000억달러(약 1경9528조4000억원) 규모로 계속 성장하는 가운데, 미국·독일·일본 등 주요국이 바이오 기술 주권을 강화하면서 보호무역기조도 뚜렷해지고 있다. 이런 흐름은 한국에 위기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 디지털 헬스 등 국내 강점 분야는 오히려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의약품 공급망 안정화, 생산공정 개선, 규제 합리화, 신시장 개척 등 민관이 유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완제품 경쟁보다 틈새 전략이 중요하며, 정책과 산업이 함께 속도를 맞춰야 돌파구가 생긴다.”
崔 전 대행 다녀간 첨단의료기기개발센터 가보니
의료 기기 검사 장비부터 CES 혁신상 제품까지
3월 28일 오송첨복단지 내 첨단의료기기개발지원센터. 이곳은 첨단 의료 기기 제품화를 위한 국내 유일의 공공기관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자, 광(光) 유도 약물 주입기부터 척추 임플란트 등 센터의 지원을 받은 첨단 의료 기기 제품이 줄지어 전시돼 있었다. 시각장애인용 AR 글라스도 눈에 띄었다. 지난 2월 이곳을 방문한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 “한국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서 바이오산업 육성이 매우 중요하다”며 착용한 제품이다. 부분적 시력 장애가 있는 이가 착용하면 눈앞에 보정 영상을 보여줄 수 있다. 덕분에 세계 최대 정보기술·가전 박람회 CES에서 2023년부터 올해까지 3년 연속 혁신상을 받았고, 현재 유럽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다.
센터 2층에는 의료 기기 안전성과 성능을 평가하는 ‘인증평가부’가 자리 잡고 있었다. 6.6㎡(약 2평) 남짓한 차폐 시설에 자기공명영상(MRI) 기기를 연상케 하는 장비가 작동 중이었다. 임플란트나 심장박동기 등 인체 삽입형 의료 기기의 MRI 검사 시 안전성을 평가하는 장비라고 한다. 문제는 국내에선 아직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의료 기기의 안전성 검사만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검사 가능 기기의 종류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에 센터에서는 전 세계 아홉 개밖에 없는 전기 사용 의료 기기도 검사할 수 있는 장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센터 관계자는 “의료 기기 안전성 규제 강화로 전 세계적으로 관련 검사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라며 “국내 기업의 해외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장비 도입이 절실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