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 프랑스 생테티엔 요리학교, 1976년 첫 미쉐린 가이드 스타 획득(프랑스 생테티엔), 프랑스 파리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 영국 런던 ‘스케치’ 레스토랑, 일본 도쿄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레스토랑, 홍콩 ‘피에 레스토랑, 서울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미국 라스베이거스 ‘트위스트’ 레스토랑 개점 /로이터연합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 - 프랑스 생테티엔 요리학교, 1976년 첫 미쉐린 가이드 스타 획득(프랑스 생테티엔), 프랑스 파리 ‘피에르 가니에르’ 레스토랑, 영국 런던 ‘스케치’ 레스토랑, 일본 도쿄 ‘피에르 가니에르 도쿄’ 레스토랑, 홍콩 ‘피에 레스토랑, 서울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 미국 라스베이거스 ‘트위스트’ 레스토랑 개점 /로이터연합

2015년 초 프랑스 유력 미식 전문 매체 ‘르 셰프(Le Chef)’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두 개 이상을 받은 전 세계 유명 셰프 512명을 대상으로 특별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셰프들의 셰프’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한 인물은 바로 ‘요리계의 피카소’라 불리는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75)였다.

가니에르는 2008년 10월, 미쉐린 가이드에서 별 세 개를 받은 세계적인 셰프 가운데 처음으로 한국 시장에 진출했다. 롯데호텔 서울은 70억원을 투입해 서울 중구 본점 34층에 그의 이름을 내건 레스토랑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을 열었다. 외식 업계에서는 이 순간을 한국 파인다이닝(고급 식당)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으로 여긴다.

가니에르는 본거지 프랑스 파리는 물론 영국 런던, 일본 도쿄, 미국 라스베이거스, 아랍에미리트 두바이, 중국 상하이 등 세계 각지에서 10여 개가 넘는 레스토랑을 운영한다. 이름만 걸어놓는 일부 셰프와 달리 그는 매년 서울을 포함, 전 세계 레스토랑을 직접 찾아 점검한다. 새로운 조리법을 전수하고, 현지 식재료를 찾는 일도 병행한다. 그가 각국에 머무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은 발 빠른 예약자로 만석 행진이 이어진다.

올해 프랑스 샴페인 명가 페리에주에(Perrier-Jouët)가 개최한 행사 참석차 한국을 찾은 그를 3월 28일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만났다.

그는 “서울이라는 도시는 굉장히 평온하고 안전하게 느껴진다”면서도 “식문화 쪽으로 보면 반대로 거대하고 생생한 에너지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가 3월 28일 롯데호텔 서울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피에르 가니에르 셰프가 3월 28일 롯데호텔 서울 ‘피에르 가니에르 서울’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하고 있다. /페르노리카코리아

“韓 미식, 17년 동안 빠르게 성장”… 문화로 자리 잡은 파인다이닝

가니에르는 요리 대가(大家)답게 새하얀 조리복을 입고, 은은한 웃음을 띠며 예정보다 10여 분 일찍 등장했다. 손님이 몰리는 점심시간이 막 끝난 참이었다. 대가에게 1년 만에 다시 찾은 서울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서울에 레스토랑을 열었던 2008년에는 주로 나이 들고 재력이 있는 손님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늘 점심만 해도 대부분이 젊은 커플이었다. 그들은 내가 누구인지 먼저 알고, 관심을 두고 찾아온 손님이다.”

가니에르는 서울 파인다이닝 문화가 지난 17년 동안 빠르게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어느덧 일본 도쿄와 홍콩, 싱가포르와 어깨를 견주는 ‘미식 중심지’로 성장했다는 의미다.

그는 전날 페리에주에 앰배서더로 임명된 한국 젊은 셰프들과 만남에서도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꼈다고 전했다.

“한국의 젊은 셰프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서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겠다는 열정과 의지를 보여줬다. 항상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고, 음식으로 자기 의도를 전달하겠다는 자부심이 높다.”

퓨전 음식의 창시자… “한식, 고급 샴페인과도 잘 어울려”

가니에르는 ‘퓨전 퀴진(fusion cuisine)’ 운동을 선도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퓨전 퀴진은 고전적인 프랑스 조리 방식에 여러 나라에서 발굴한 독특한 식재료와 현대적인 조리법을 섞는 요리 기법이다. 우리가 흔히 ‘퓨전 요리’라 말하는 단어의 기원을 찾아 올라가면 가니에르가 나온다.

그는 이번 방한에서도 프랑스를 상징하는 스파클링 와인 샴페인에 한식 식재료와 조리 방식을 사용해 독특한 시각을 보여줬다. 일반적으로 미묘한 풍미를 중요시하는 샴페인은 맵거나 짠 음식이 많은 한식과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고 여긴다. 

가니에르는 다른 해석을 내놨다.

“점심에 젊은 셰프들이 준비한 자리에서 겉보기에 프랑스 요리지만, 한국 재료를 사용한 음식을 맛봤다. 굉장히 한국적이라 느껴지는 맛이었지만, 조리법을 바꾸니 전형적인 한식 재료에서 오는 생소한 맛 다음에 또 다른 맛이 이어지면서 끊임없이 변화했다. 여기에 샴페인을 곁들이니, 생기 넘치고 청량감 있는 샴페인이 음식 맛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는 한식에서 자주 사용하는 참기름이나 들기름의 고소함이 샴페인 특유의 짭조름한 미네랄리티(무기질)와 잘 어우러진다고 덧붙였다. 특히 발효 음식 중에서 간장이 품은 깊은 맛과 샴페인의 산미(acidity)가 기막힌 균형감을 이룬다고 했다.

15세부터 75세까지… 60년 요리 외길 인생

가니에르는 15세부터 요리를 시작했다. 그는 올해 일흔다섯이다. 요리를 시작한 지 딱 60년이 지났다. 그의 부모는 둘 다 프랑스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였다. 

가니에르는 “내 삶 전체가 음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며 “레시피를 의도적으로 구상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이니 어떻게 요리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고 했다.

가니에르는 21세가 되던 해, 프랑스 남동부 작은 마을 생테티엔에 첫 레스토랑을 열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 미쉐린 가이드 프랑스 편에서 별 하나를 땄다. 1993년에는 별 셋을 달았다. 고작 40대 중반이었다. 

그는 인터뷰 도중 40년 전 프랑스 신문에 실린 인터뷰 기사 사진을 직접 찾아 보여줬다. 그는 “40년 전 인터뷰 기사를 최근에 다시 읽어봤다”고 했다.

“당시 요리 철학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음식 만들기에 온전히 헌신하고, 스스로 세부 사항을 꼼꼼히 챙긴다. 이후 맛을 구성하는 요소에 집착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른다. 이렇게 불현듯 찾아온 생각이 모이면 내가 먼저 만족하고, 궁극적으로 손님을 기쁘게 하는 음식이 탄생한다.”

“예쁜 음식보다 맛있는 음식이 우선”

가니에르는 유달리 아름다운 플레이팅(음식 배치)을 선보이기로 유명하다. 그가 요리계의 피카소로 불리는 이유다.

가니에르에게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SNS)로 요리 사진을 공유하는 현시대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가니에르는 “셰프로서 외관에 치중하는 음식이 많아지는 현상이 아쉽다. 메뉴가 인스타그램에 공개되면 손님은 기대감이 사라진다. 셰프는 따뜻한 음식이 사진 찍는 도중에 식어버리는 상황을 원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코스 중에 그저 눈으로 보기에 좋은 차가운 음식이 많아진다. 나는 화려한 플레이팅보다 음식 본연의 맛과 정직함을 중시한다.”

그는 셰프가 지나치게 음식 겉모습에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가니에르는 “예술적인 시도가 맛보다 우선해서는 안 된다”며 “우리는 화가가 아니라 맛을 만드는 사람이다. ‘플레이팅이 맛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젊은 사람도 버티기 힘든 주방에서 어떻게 60년을 서 있느냐”고 물었다. 가니에르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나라고 별다른 방법이 있었겠는가”라고 되물었다.

“과음하지 않는다. 당연히 담배 피우지 않는다. 담배를 피우면 미각이 망가진다. 그리고 적당히 운동하고, 휴식을 충분히 취한다. 또 물을 많이 마시고, 식사는 채소 위주로 먹는다.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