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하 트럼프)의 돌변하는 관세정책에 전 세계 금융과 원자재 시장이 널뛰기하고, 글로벌 경기 침체 가능성도 출렁거리고 있다.
도화선은 트럼프가 4월 2일(이하 현지시각) 던진 관세 폭탄이다. 전 세계 국가에 10% 기본 관세를 부과하고, 한국 등 56개국과 유럽연합(EU·27개 회원국)에는 기본 관세에 추가 관세를 얹은 고율의 국가별 상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것. 기본 관세는 4월 5일 부과되기 시작했고, 국가별 상호 관세는 4월 9일 발효됐지만, 발효 13시간 만에 중국을 제외한 75개국 이상에 대해선 90일 유예한다고 방향을 틀었다. 4월 7일만 해도 90일 유예설 보도에 대해 “유예는 검토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부인한 트럼프가 종전 입장에서 선회한 것이다. 관세 폭탄발표 직후 2001년 9·11 테러 당일보다 더 강한 쇼크를 받은 증시는 트럼프의 관세정책 돌변에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최대 폭 상승하는 롤러코스터를 연출했다. 시장은 ‘90일 유예’에 안도하기보다는 예측 불가의 트럼프 관세정책이 야기하는 불확실성을 우려한다. 특히 치킨 게임으로 치닫고 있는 미· 중 관세전쟁은 글로벌 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을 키울 것으로 우려된다.

美 관세정책 돌변에 증시 ‘롤러코스터’
세계 증시는 트럼프가 고율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4월 2일 이후 급락세를 나타냈다.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가 침체할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과거 미국은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발효하며, 2만여 종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의 관세를 부과했다가 대공황이 심화하는 결과를 겪은 바 있다. 캐나다·영국·독일 등 무역 상대국이 즉각 미국에 보복관세를 부과하자, 전 세계로 보호무역주의가 확산하며 세계경제 침체가 나타난 영향이다. 신용평가사 피치는 트럼프의 관세 폭탄으로 지난해 2.5%였던 미국의 평균 수입품 관세율이 올해 22%로 치솟는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1909년(23%)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트럼프가 상호 관세 계획을 발표한 뒤 4거래일 동안 뉴욕증시의 시가총액이 5조8000억달러(약 8516조1000억원) 사라진 배경이다.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3.4배에 해당하는 규모가 증발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1950년 S&P500 지수가 만들어진 이후 4거래일 기준으로 역대 가장 큰 손실이었다. 유럽에선 범유럽 지수인 STOXX 600 지수가 4월 7일 474.01로 마감하며, 약 1년 3개월 만에 최저치로 주저앉았다.
한국에서도 코스피 지수가 4월 9일 장중 2300선 아래로 밀려났다. 코스피 지수가 장중 2300선을 하회한 것은 2023년 11월 1일(2288.64) 이후 1년 5개월여 만이었다. 앞선 4월 7일 오전에는 코스피 선물 지수가 급락해 한국거래소가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하기도 했다. 매도 사이드카는 선물 시장에서 선물 가격이 5% 이상 하락해 1분간 지속되는 경우 발동한다. 매도 사이드카를 발동한 것은 지난해 8월 5일 이후 약 8개월 만이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국가별 상호 관세 ‘90일 유예’ 결정 이후 S&P500 지수는 4월 9일 474.13포인트(9.52%) 폭등한 5456.90에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 위기 시기인 2008년 이후 약 17년 만의 최대 상승 폭이다. 코스피 지수도 4월 10일 2400선을 회복하며 급등해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코스피200 선물 가격이 5% 이상 급등해 1분간 지속됐기 때문이다.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된 것은 지난해 8월 6일 이후 처음이다. 원·달러 환율도 4월 9일 1484.1원에 마감하며 종가 기준 16년여 만에 최고 수준(원화 가치 급락)을 기록했다가, 90일 유예 이후 38.1원 급락(원화 가치 급등)한 1446.0원으로 출발했다.
트럼프의 ‘90일 유예’ 결정 이후 골드만삭스는 올해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철회했다. JP모건은 “무역정책의 영향은 다소 줄어들 가능성이 있고, 따라서 경기 침체 전망은 클로즈 콜(close call·아슬아슬한 위기 모면)”이라고 분석했다.
美 “104→145%”, 中 “34→84%” 치킨 게임
미국은 중국에 애당초 34%의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고 했는데,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관세 34% 부과 및 사마륨 등 희토류 7종에 대한 수출제한 내용의 보복 조치를 취하자 트럼프는 이를 84%로 대폭 상향했다. 펜타닐 유입 책임을 물어 지난 2~3월에 부과한 20% 추가 관세를 더하면, 미국의 대(對)중국 관세를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104%로 올린 것이다. 이후 중국이 미국산 수입품에 대한 추가 관세율을 34%에서 84%로 올린다고 발표하며 재보복하자, 트럼프는 4월 9일 대중국 관세를 125%로 더 올리고 중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에 대해 90일간 상호 관세를 유예한다고 발표했다. 4월10일엔 대중국 관세를 145%로 또 상향조정했다. 중국이 “끝까지 싸울 확고한 의지와 풍부한 수단이 있다”며 강경 대응 의지를 밝히자, 우선 화력을 중국에만 집중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중국이 경솔하게 보복하기로 했기 때문”이라면서 “누구든 미국을 때리면 트럼프는 더 세게 맞받아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는 “희망컨대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시점에 중국이 미국과 다른 나라를 갈취하던 날은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고 용납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콧 베센트 재무 장관도 “중국은 미국이 가진 무역 문제의 가장 큰 원천”이라며 “미국의 관세장벽에 수출 길이 막힌 중국산 제품이 이미 유럽 등으로 유입되면서 전 세계에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는 교역 파트너와 함께 해법을 마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보복관세와 희토류 수출 통제에 이어 위안화 절하로 관세 폭탄에 대응하는 모습이다. 트럼프가 “중국이 위안화를 절하해 환율을 조작했다”고 비난했지만, 중국은 위안화 가치를 4월 8~9일 연속 절하 고시했다. 또 4월 9일 국무원 신문판공실을 통해 미·중 무역 전쟁에 대한 중국 입장을 담은 백서를 발표하는 등 여론전에도 나섰다. 미·중 무역 전쟁이 치킨 게임(두 자동차가 마주 보고 돌진하는 상황 같은 극단적인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글로벌 실물경제 위축 우려는 국제 원자재 시장에도 타격을 주고 있다. 4월 8일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59.58달러로 떨어졌다. 배럴당 60달러 밑으로 내려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과 미·중 갈등이 겹친 2021년 4월 12일 이후 4년 만이다. 세계무역기구(WTO)는 4월 9일 보고서에서 미·중 무역 갈등으로 양국 간 상품 교역이 최대 80%까지 감소할 수 있다고 추정했다. WTO는 “글로벌 무역의 약 3%를 차지하는 양대 경제 대국 간 보복성 맞대응 방식에는 세계경제 전망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는 광범위한 함의가 있다”며 “글로벌 경제가 두 개의 블록으로 갈라지면 전 세계 실질 GDP가 장기적으로 약 7%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막판 협상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는 4월10일 “중국과 협상을 하고 싶다”며 “양국에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매우 존중한다”고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