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9일(이하 현지시각) 국가별 상호 관세를 부과한 83개국 가운데 미국과 협상에 나선 한국 등 75개국을 상대로 이의 시행을 90일 유예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안정을 되찾았지만, 한국의 경기 침체 우려는 여전히 가시지 않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IB)을 중심으로 2025년 한국 경제가 ‘제로 성장(0%대 성장)’으로 추락할 수 있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모든 국가에 대한 10% 기본 관세는 4월 5일부터 부과되고 있다.
국가별 상호 관세 유예 결정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산 수입품에 보복관세를 결정한 중국을 상대로 수입 관세율을 145%로 끌어올리는 등 미·중 갈등은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 미국산 수입품 관세를 50%에서 84%로 높인 중국은 위안화 절하 등을 방법을 총동원하며 맞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미·중 갈등 수위가 높아질 경우, 인접국인 한국은 지정학적 리스크로 인한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질 수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인한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리더십 공백을 겪고 있는 한국은 국내외적 경제불확실성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2024년 2분기 이후 사실상 제로 성장 수준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한국이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의 최대 피해국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트럼프 관세 유예에도 韓 성장률 추락 경고음 커져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유예 결정에도 불구하고, 기본 관세 10%가 유지되기 때문에 미국 경제성장 둔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세 유예 결정 후 경기 침체 가능성을 60%에서 45%로 낮춘 골드만삭스는 2025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5%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 3월까지 유지했던 1.7% 전망치를 대폭 하향한 것이다. 미국의 올해 경기 침체 가능성을 60%까지 높인 JP모건은 한국의 대미(對美) 수출 감소와 투자 위축이 불가피하다며 한국의 올해 GDP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0.9%에서 0.7%로 추가 하향 조정했다. 이는 3월 말 1.3%에서 0.9%로 낮춘 데 이은 것으로, 불과 열흘 만에 0.6%포인트 줄인 것이다. 정부와 한국은행은 올해 1% 중반대 성장을 예상하지만, 미국발 수요 둔화와 무역 환경 악화로 인해 시장에서는 0%대 성장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국은행 뉴욕사무소에 따르면, 미국 웰스파고는 상호 관세 충돌이 한국의 수출 및 투자 심리에 미치는 영향으로 경제성장률이 최대 1.0%포인트 둔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고, 영국 캐피털이코노믹스도 성장률 전망치를 0.9%로 낮췄다.
트럼프발 관세 충돌이 글로벌 무역 전쟁으로 확대할 경우, ‘미국 경기 침체→글로벌 수요 위축→한국 수출 감소 및 성장률 하락’이라는 구조적 충격이 불가피하다는 진단도 있다. 한 민간 금융기관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의 강경한 보호무역 정책이 미국 경제를 침체로 몰고 갈 경우, 한국은 교역과 투자 측면에서 연쇄적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며,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0% 중반으로 낮추는 것을 검토 중”이라고 전했다.
기초 체력 약해진 한국… “관세 충격 더 크게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충격이 한국 경제에 예상보다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배경에는 최근 들어 경제 기초 체력이 약화한 탓이 크다. 2024년 1분기 1.3%였던 분기별 GDP 성장률(전기비 기준)은 이후 세 분기 연속 -0.2~0.1%에 머물렀고, 금융시장에선 4월 말 발표될 2025년 1분기 성장률도 0% 수준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대로라면 한국 경제는 사실상 1년 가까이 제로 성장에 빠지는 셈이다. 기초 체력 약화의 핵심은 ‘총고정자본형성’의 정체다. 공장, 설비, 기계, 인프라 등 자본재 투자를 보여주는 총고정자본형성의 실질 GDP 성장 기여도(계절 조정 기준)는 2024년 2분기 -0.4%포인트, 3분기 0.1%포인트, 4분기 -0.5%포인트로 부진했다. 설비투자는 다소 회복됐지만, 건설투자는 3분기 연속 마이너스, 연구개발(R&D) 등 지식재산생산물투자는 성장 기여도가 1년 넘게 ‘0%포인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는 2023년 정부의 R&D 예산 삭감, 반도체 업황 악화로 인한 대기업 적자, 석유화학· 배터리 등 주력 산업 부진, 프로젝트파이낸싱(PF) 구조조정에 따른 건설업 침체 등으로 민간투자 활동이 동시에 위축된 결과다. 그럼에도 윤석열 정부는 ‘건전재정’ 기조를 고수하며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3년 연속 줄였고, 이에 따라 경기 침체를 사실상 방관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윤석열 정부의 경직적인 재정 운용이 민간 경제의 활력을 살릴 여력을 제약했고, 경기 침체 국면에서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추경 규모 20조원 이상으로 확대해야”… 정책 전환 요구
이 때문에 트럼프발 관세 폭탄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윤석열 정부의 과도한 긴축재정에서 벗어난 유연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4월 8일 “다음 주 초 10조원 규모의 추경안을 발표하겠다”고 했지만 전문가들은 시급한 경기 대응에 충분치 않은 규모라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막혀있던 재정 정책 동력이 대선 국면까지 확대될 것”이라며 “1차 추경이 약 20조원 규모로 단행된 뒤, 하반기엔 미국 관세 충격에 대비한 추가 지출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도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며 정책 기대감이 커지고, 20조원 이상 추경이 이뤄질 경우 경기 모멘텀이 강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역대 최저 ‘2.0% 성장’으로 막 내린 尹 정부… 국가 채무 100兆 증가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인용 결정으로 윤석열 정부는 1060일 만에 막을 내렸다. 집권 기간은 2년 11개월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최단명 정부로 역사에 남게 됐다. GDP 성장률 등으로 나타나는 경제 성적표 역시 역대 정부 중 최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코로나19 엔데믹(endemic·감염병 주기적 유행) 시기인 2022년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임기 첫해(2022년) GDP 성장률 2.7%로 출발했다. 2011년 이후 평균치(2.69%)인 무난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반도체 불황과 부동산 침체, 내수 부진 등이 겹친 2023년 성장률은 1.4%로 급락했고, 2024년에도 2.0% 성장에 그쳤다. 결국 윤석열 정부 3년(2022~2024년) 평균 성장률은 2.0%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출범한 정부 가운데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명박 정부(3.40%), 박근혜 정부(3.15%)에서 유지됐던 연평균 3%대 성장률은 문재인 정부(2.56%)에서 처음으로 무너졌고, 윤석열 정부에서는 사실상 1%대 저성장을 우려해야 하는 상황으로 악화했다.
윤석열 정부는 2022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1%까지 오르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자, 건전재정을 경제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를 위해 문재인 정부 5년간 평균 8.7%였던 예산 총지출 증가율을 대폭 축소했다. 2023년 5.1%, 2024년 2.8%, 2025년 2.5%로 줄이며 초고강도 긴축재정을 단행한 것이다.
그러나 재정지출을 억제했음에도 불구하고, 재정 건전성은 오히려 악화했다.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는 2022년 -64조6000억원, 2023년 -36조8000억원, 2024년 -43조5000억원으로 3년 연속 수십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반도체 불황 여파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의 법인세 납부가 사실상 ‘제로(0)’로 떨어지며 대규모 세수 결손이 발생한 데 따른 것이다. 그 결과, 2022년 1067조4000억원이었던 국가 채무는 2024년 1175조2000억원으로 107조8000억원 늘었다. 이 때문에 경제 여건에 맞지 않은 경직적인 경제정책 기조로 성장과 재정 건전성 모두 놓쳤다는 게 윤석열 정부에 대한 전문가의 대체적인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