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산 공장 폐쇄 때 이쪽으로 발령 온 직원도 많았습니다. (부평에서도 철수하면) 부동산 매물이 나올 텐데, 식당 타격이 클 겁니다.”
“이 골목이 다 한국GM 협력 업체이고, 저 큰 차량은 다 GM 공장 들어가는 차들이에요. 부평의 절반이 한국GM이라고 봐야 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하는 외국산 자동차에 관세 25%를 추가 적용하기 시작한 4월 3일 인천 부평구에 있는 한국GM(제너럴모터스) 부평 공장. 축구장 136개 면적을 합한 것과 비슷한 약 100만㎡(30만 평) 크기의 공장 주변에는 많은 직원과 차량이 오갔다.
이곳에서 만난 한국GM 직원들은 미국의관세 부과 소식에 불안감을 내비쳤다. 인근 지역 주민도 한국GM이 관세를 못 버티고 공장 문을 닫을까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이 모든 수입 자동차에 25%로 부과한 관세는 한국 시각 4월 3일 오후 1시 1분부터 발효됐다. 한국GM은 국내 생산량의 80% 이상을 미국으로 수출하는데, 관세가 붙으면 미국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 GM 입장에서는 굳이 한국에서 차를 만들 이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5일(이하 미 동부 현지시각)부터 미국과 교역하는전 세계 모든 국가에 기본 관세 10%, 4월 9일부터는 무역 적자 폭이 큰 57개국을 대상으로 추가 개별 관세를 얹어 11~50%의 상호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가 한국을 포함한 주요 협상국에 상호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다.

GM 공장 車 80%가 수출용… 올 들어 휴일엔 생산 멈춰
공장은 관세 소식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듯 보였다. 정문 안쪽 두 개의 대형 굴뚝과 공장에서는 흰 연기와 수증기가 계속 뿜어져 나왔고, 쉐보레 등 막 조립된 것으로 보이는 6~8대의 차가 대형 트럭에 실려 공장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공장 입구에서 경비 업무를 수행하는 최모(55)씨는 “오늘 하루에만 870대의 차량이 공장 밖으로 나갔다. 대부분 수출용이라 여기서 바로 인천항으로 간다”고 말했다. 공장에 들어가던 또 다른 직원은 “2025년부터 빨간날(휴일)에는 생산을 멈췄다. 작년에 관세 얘기 나오기 전까지는 365일 돌아가던 곳인데, (관세 얘기 나오면서) 생산량을 줄인 것이다. 아무래도 불안하다”고 했다.
공장 서문을 나서던 한 직원은 “내부는 생산과 개발 두 개로 공장이 나뉘어 있다. 아무래도 생산 쪽이 작년 말부터 예민해지고 있고, 개발 쪽 분위기는 아직은 괜찮아 보인다” 고 말했다. 근무복 차림에 안전모를 쓰고 공장을 나서던 한 협력업체 직원은 한국GM이 철수하면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한다고 했다. 조씨는 “다른 곳으로도 근무를 나가지만 한국GM이 메인이라 (철수하면) 일자리가 날아가는 거다. 우리와 비슷한 전기공사 업체는 대여섯 곳이지만 다른 건축·설비 업체가 정말 많아 타격이 클 것”이라면서도 “철수가 상상이 안 된다”고 했다.
관세 함구령, 주변 식당도 ‘쉬쉬’
점심시간이 되자 공장 서문 인근의 식당가로 사람들이 몰렸다. GM 쉐보레 브랜드의 주력 차종인 ‘트레일블레이저’가 적힌 옷을 입은 직원들도 눈에 띄었다. 식사 후에는 유니폼을 입은 직원들이 삼삼오오 음료를 사 들고 공장으로 복귀했다. 인근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점심뿐만 아니라 한 번에 몇십만원씩 매출이 나오는 저녁 회식 자리도 도움이 많이 된다”면서 “만약에 (한국GM이) 빠진다면 하루에 약 300만원, 매출의 30%는 빠져 피해가 아주 크다” 고 했다. 그는 “한국GM이 나가면 다른 기업이 들어올 것이란 말도 있는데, 군산처럼 될 수도 있고 잘 풀리더라도 (음식점이 입점하는) 쇼핑몰이 들어오면 우린 타격”이라고 말했다.
GM은 2002년 대우자동차를 인수하고2011년 한국GM으로 사명을 변경했다. 이후 2018년 군산 공장을 폐쇄하고 한국 정부로부터 8100억원의 지원을 받는 대신 2027년까지 한국GM을 유지하기로 약속했다. 당시 군산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군산 시민의 약 25%가 타격을 받았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국GM 부평 공장 주변에서 한식집을 운영하는 김모(55)씨는 “점심 손님 대부분이 공장 직원”이라면서 “(한국GM 철수설은) 좋은 일이 아니라 다 말을 아끼고 쉬쉬한다”고 했다. 또 다른 한식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김모(35)씨는 “방금까지도 거의 한국GM 직원들이 손님이었다”면서 “10자리 중 절반은 여기 직원들”이라고 했다.
청천동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엄경선(52)씨는 “군산 공장이 폐쇄됐을 때 이곳으로 발령 난 직원이 많아 거래가 늘었었다”며 “오는 고객의 20%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GM이 떠나면) 이 지역 상권에 타격은 확실히 클 것”이라고 말했다.
지자체·시민 부평 공장 철수 현실화 ‘우려’
지방자치단체와 한국GM 거래 기업은 만약을 대비해 현황 파악에 들어갔다. 인천시는 “인천 내 한국GM 1차 협력사만 47곳에 달한다.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이들을) 지원해야 할 수도 있어 현황을 파악하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다른 지역에 있는 2, 3차 협력사까지 포함하면 한국GM 협력사는 약 3000곳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한국GM과 거래하는 인근의 한 금융기관은 “한국GM이 (우리 쪽에) 예치한 자금만 5000억원이 넘는데 다른 기관까지 하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평 시민은 철수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이다. 인근 공기업에서 근무하는 정모(37)씨는 “한국GM은 부지도 크고 협력 업체도 많다. 부평의 5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떠나지 않고 잘돼야 한다”고 말했다. 택시 기사 이모(70)씨는 “직원부터 협력사, 가족까지 합치면 딸린 식구가 수만 명”이라며 “한국GM이 철수한다면 부평과 인천이 아닌 국가 경제가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어 “정치 싸움(탄핵)에 시간·돈을 쓸 게 아니라 국가가 이런 데 돈을 써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GM이 한국 시장에 남을 유인이 적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먼저 시장점유율이 낮고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생산원가가 높은데 일본과 비교해도 15% 인건비가 비싼 탓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게 노조 리스크”라며 “형사 고발까지 당하다 보니 실제로 GM 본사에서는 한국GM 법인장 맡는 걸 꺼리는 분위기”라고 했다. 이어 “GM은 8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철수가 맞다면서 정부 지원을 유도했었다. 관세를 명분으로 철수할 가능성이 꽤 큰 편”이라고 내다봤다. GM 입장에서는 철수가 합리적인 선택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지점이다.
유 교수는 또 “자동차는 전후방 연계가 큰 산업이고, 한국GM이 수출하는 차량이 우리나라 전체 수출 차량의 10%를 웃도는 35만 대 정도라 타격이 크다”며 “일자리를 잃는 것보다 관세와 상계시킬 수 있는 10~20%의 임금 삭감을 받아들이는 게 합리적이고 또 가능한 유일한 선택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