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극우 정당 RN의 마린 르펜 원내대표가 2025년 4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프랑스 극우 정당 RN의 마린 르펜 원내대표가 2025년 4월 6일 프랑스 파리에서 자신을 지지하는 집회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2025년 3월 31일(이하 현지시각), 프랑스 1심 법원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원내대표이자 대통령 선거에 세 번 출마한 마린 르펜(Marine Le Pen)에게 피선거권을 박탈하는 중형을 선고했다. 징역 4년(2년 가택 연금과 2년 집행유예), 벌금 10만유로(약 1억6000만원), 5년간 피선거권 박탈 등이다. 르펜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유럽의회에서 의원으로 일하면서 보좌진에게 지급해야 할 400만유로(약 64억원)를 RN 소속 자신의 보좌진에게 지급한 사건을 주도한 것으로 법원은 판단했다. 거기에는 개인적으로 유용한 돈도 포함된다.

비록 1심 판결이지만 결과는 프랑스 정계에 엄청난 폭풍을 몰고 왔다. 그동안 르펜은 30~40%의 지지율을 바탕으로 대선 주자 중 안정적인 1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판결이 대법원까지 유지되면, 프랑스에서 가장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2027년 대선 출마 자격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사법적 판단이 유력 대선 주자를 낙마시키는 형국이다.

RN은 당연히 강하게 반발했다. RN의 현대표인 조르당 바르델라(Jordan Bardella)는 “이 판결은 민주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자 수백만 애국 시민에게 가해진 상처”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거들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3일 “르펜에 대한 마녀사냥은 유럽 좌파가 법률을 이용해 언론 자유를 침묵시키고 정적을 검열한 또 다른 사례”라며 “이번에는 그 정적을 감옥에 가두는 데까지 나아갔다”고 르펜을 옹호했다. 흥미로운 것은 판결에 대한 반발이 RN뿐만 아니라 프랑스 정계의 광범위한 정파에서 나오고 있다는 점이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옥스퍼드대 명예 펠로, 전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 민간자문위원회 위원, 전 대외 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

르펜 판결에 흔들리는 프랑스 정계

르펜을 차기 대선 후보군에서 제거하는 1심 법원의 판결에 대해 중도파와 우파 진영에서는 이 판결이 가져올 파장을 우려하거나 판결 결과에 반대하고 있다. 현직 프랑스 총리이자 중도 정당인 민주운동(MoDem) 대표 프랑수아 바이루(François Bayrou) 총리는 비록 공식 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이번 판결이 그를 불안하게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우파 공화당(LR)의 주요 인사인 로랑 보키에(Laurent Wauquiez)는 이 결과가 프랑스 민주주의의 작동 방식에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며, 이러한 조치가 취해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더 극적인 반응은 극좌 성향의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대표 장-뤽 멜랑숑(Jean-Luc Mélenchon)에게서 나왔다. 멜랑숑은 “선출된 공직자를 해임하는 선택은 오직 국민만이 할 수 있다”며 판결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 이런 발언은 르펜에 대한 법적 판결이 프랑스 정치권에서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정치의 사법화, 법치의 승리인가, 민주주의 위협인가

반면 좌파와 진보 진영에서는 다른 반응이 나오고 있다. 멜랑숑의 발언은 프랑스 좌파 진영에서 큰 분노와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녹색당과 좌파는 그동안 RN이 다른 정당의 부패 사건을 ‘상류 특권계층의 역겨운 작태’ 라고 대중 영합적인 공격을 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며, RN의 추한 민낯이 드러난 횡령 사건으로 칭하면서 이번 판결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멜랑숑의 발언은 그가 차기 대선 출마를 고려하고 있는 상황에서 극우 라이벌의 낙마가 전략적으로 자신에게 불리한 시나리오이기 때문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최근 정당 지지율이 한 자릿수로 떨어진 사회당(PS) 소속 국회의원이자 파리 시장 후보인 에마뉘엘 그레구아르(Emmanuel Grégoire)는 법치를 강조하면서 “여론조사에서 지지를 받는다는 이유로 법을 경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했다. 사회당 소속 전 대통령이자 현 국회의원인 프랑수아 올랑드(François Hollande)도 “바이루 총리는 불안해할 이유가 없다”며 총리는 법의 수호자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법을 위반했다면 정치인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은 자명하다. 이것이 법치주의다. 다만 프랑스 정계는 정치의 과도한 사법화가 법원에 국민의 선택권을 좌지우지하는 상황까지 이른 것에 개탄하고 있다. 또 정치의 사법화가 국민이 지도자를 선택하는 민주주의의 근간을 훼손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삼권분립은 18세기 몽테스키외(Montes-quieu)가 체계화한 이래 민주주의의 근간으로 확립되었지만, 사법부는 국민의 선택을 받은 집단은 아니라는 점에서 국민주권과 조화는 여전히 남겨진 과제가 된다. 정파적 입장을 떠나서 프랑스 정계가 복잡한 심정으로 이 사건을 바라보는 데는 이유가 있다.

프랑스 정계 지각 변동 가능성, 남겨진 과제

르펜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법원은 재판의 진행 속도를 높여 2026년 여름까지 대법원 판결을 끝내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2027년 대선 전에 모든 결과가 나올 것이다. 관심이 가는 대목은 르펜이제외된 상태에서 진행된 여론조사 결과다. 여론조사에서 현 RN 대표인 29세의 바르델라의 지지율이 다른 대선 주자를 제치고 단숨에 1위로 올라섰다는 점이다. 지도자가 누구든지 RN에 대한 프랑스 극우의 지지는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결선투표가 있기 때문에 결과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2027년 프랑스가 이탈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와 같이 유럽 극우 지도자가 있는 나라의 대열에 참여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프랑스는 세계 7위의 경제 규모로 주요 7개국(G7)의 일원이며 유엔(UN)안전보장이사회의 상임이사국이다. 유럽의 주도국으로 핵무장 능력이 있고, 러시아에 대항해 유럽에 대한 핵우산 제공 가능성을 흘리며 유럽군 창설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프랑스가 친러 성향의 RN 소속 대통령을 맞이했을 때 유럽과 세계 질서에 미칠 충격파를 예상해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에 주는 영향도 절대 가볍지 않을 것이다. 

김흥종 고려대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