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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당시 우리 동네 어선은 대부분 목선이었다. 목선은 나무를 이어 만든 배라 나무와 나무 사이로 물이 스며들어 올 수 있다. 그래서 선박 바닥에 물이 고이면 수시로 퍼줘야 한다. 어릴 적 아버지는 “부두에 있는 우리 어선에 가서 펌프질해 고인 물을 빼내라”고 하셨다. 원통형 피스톤에 물을 한 바가지 넣고 상하로 된 손잡이를 힘껏 당기면 고인 물이 어선 밖으로 나온다. 주기적으로 이런 작업을 했다. 상선에서는 이를 ‘빌지(bilge)’라고 부른다. 펌프라는 기관을 이용해 외부로 배출하는 작업이다. 선창 청소를 하면서도 고인 물이 생기는데, 어릴 적 뱃전에서 형과 같이 펌프질하던 때가 생각났다.
김인현 고려대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김인현 고려대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선장- 한국해양대 항해학, 고려대 법학 학·석·박사, 전 일본 산코기센 항해사·선장

우리 배가 오징어 잡이할 때도 있었다. 그런데 선주인 아버지가 선원에게 보수를 나눠주는 방식이 재밌다. 오징어는 밝은 불빛을 보고 달려들고 이때 낚싯줄에 걸린다. 배에는 선수(앞)와 선미(뒤)가 있고 중앙이 있다. 오징어 잡이 조명은 보통 중앙에 높게 설치돼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징어는 불빛이 더 밝은 배 중앙으로 몰려든다. 선미와 선수에는 아무래도 오징어가 많이 몰리지 않는다. 선장이 배 중앙에 있고 직급이 낮을수록 선미와 선수에 배치된다. 그래서 오징어를 잡는 양도 배 중앙에 있는 선장이 가장 많이 잡는다. 낮은 직급일수록 오징어를 적게 잡는 셈이다. 선장은 자신이 잡은 오징어를 모두 가져간다. 갑판장은 절반을 선주에게 주고, 화장은 4분의 3을 선주에게 준다. 선원은 기본급에 추가로 잡은 오징어만큼 보수를 받는다. 윗사람에게는 후하고 아랫사람에게는 박한 상후하박(上厚下薄)인 셈이다. 직급이 높을수록 적게 가져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와 맞지 않은 방식이다.

반면 상선의 보수는 고정급이다. 미리 정해진 봉급이 있고, 별도로 배 위에서 ‘선상급’ 이라는 추가 보수가 있을 뿐이다. 상선의 선장은 서로 실력도 비슷하다. 어느 대학을 졸업하든 학교에서 배우고 실습한 대로 실무를 행하기 때문에 특별한 차이가 없다. 그런데 어선은 그렇지가 않다. 어선에선 정식 학교를 졸업한 선장이 대세를 이루는 것도 아니다. 실무에서 틈틈이 터득한 기술로 선박을 운항한다. 선장이 고기가 있는 곳을 잘 찾으면 고기를 많이 잡지만, 반대로 고기를 못 잡는 경우도 있다. 상선은 화물이라는 수출입 상품이 있으므로 가시적이다. 그렇지만 어선은 보이지 않는 바다 아래에서 물고기를 잡아야 한다. 선장의 실력에 크게 좌우된다. 그래서 뛰어난 선장을 고용하기 위해 많은 프리미엄이 붙기도 한다. 실제로 1970년대 당시 동해안에선 장달범이란 선장이 가장 유명했다. 그는 수덕(水德)이 있어 나가기만 하면 만선을 해왔다. 그를 초빙하기 위해 선주들은 프리미엄을 기꺼이 지급했다.

원양어선에서도 선장의 권한은 막강하다. 기본 봉급이 있지만, 잡은 어획량 수입의 절반을 선주가 가져가고, 나머지의 절반 가까이를 선장이, 여기서 다시 나머지를 선원들이 나눠 가진다. 원양어선 선장은 선박에 승선할 선원도 자신이 직접 고른다. 선주가 선원을 고용하는 상선과 완전히 다른 구조다. 우리나라 상법에선 ‘선적항 내에서 선장이 선원의 고용과 해고에 대한 대리권을 가진다’고 정한다. 선장이 선원을 채용하면 곧 선원과 선주 사이에 고용의 법적 효과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상선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이를 두고 “현장에서 선장이 직접 선원을 고용하는 경우가 전혀 없다. 선원 채용은 전적으로 회사가 한다”며, 상법 규정이 틀렸다고 말한다. 사실 이건 상법이 틀린 게 아니라 어선 사회에서 관행이 반영됐다고 보면 된다.

어선과 상선을 모두 체험한 나에게 두 선박은 공통점이 많다. 어선은 식량 안보에 직결되고, 상선은 우리 국민이 살아갈 필수품을 공급하는 국가 공급망 구축에 필요하다. 모두 국가와 국민의 생존에 요긴하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어선과 상선에 근무할 선원을 구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는 점도 동일하다. 인구 절벽 시대를 맞이해 선원에 대한 복지 혜택을 늘리고 바다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 꾸준하게 젊은이가 바다를 찾도록 해야 한다. 이들이 해양·수산 분야 지도자로 성장하도록 국가가 지원하는 전 생애 주기적인 교육제도가 잘 마련돼야 한다. 그래야 더 많은 젊은이가 바다를 찾을 것이다. 

김인현 고려대법학 전문대학원 명예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