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주도로 추진해 온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러시아 전쟁 휴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졌다. 트럼프는 취임 직후 미국과 러시아 간 직접 회담을 주선하는 등 휴전 협상에 속도를 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크라 재건 사업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최대 1300조원 규모의 우크라 재건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크라 최대 지원국인 미국이 우크라 재건 과정에서 자국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미국 우선주의’를 펼치면서 동맹국인 한국 기업에 기회가 돌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히려 러시아 재건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러시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모스크바국립법학대에서 법학을 공부한 조은진 율촌 러시아 변호사는 “우크라 재건 사업은 정권 변화, 법적 및 제도적 불안정성, 국제 협력 변화, 미국 개입 등 다양한 리스크가 있다”라며 “러시아 재건 사업도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와 맞물려 있는 만큼 신중한 접근법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러시아에서 초·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국에서 공부한 정규진 율촌 미국 변호사는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우선주의 기조는 우크라·러시아 전쟁 휴전 협상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있다”라며 “재건 사업은 국제정치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만큼 정책 연계성, 제재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라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우크라·러시아 전쟁 휴전 협상이 교착 상태에 있는 이유는.

조은진 “군사, 정치, 경제, 외교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먼저 이번 전쟁은 국제사회의 패권 경쟁이 얽혀 있다. 러시아는 중국, 북한, 인도 같은 나라와 협력을 강화하는 반면 서방 국가는 우크라를 지원하고 있다. 국제 세력 균형은 전쟁 휴전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우크라와 러시아가 상반된 목표를 추구하고 있다. 구소련권 국가인 우크라는 완전한 독립국가로, 러시아의 영향권에 있는 자국 영토를 온전히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를 본보기로 삼아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와 유럽연합(EU) 등의 국제사회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자 한다. 미국과 EU를 비롯한 서방국가의 지원으로 우크라는 러시아와 전쟁을 계속할 수 있기에, 서로 전략적 이익을 위해 휴전보다 전쟁에 나서는 것이다.”

휴전 협상에서 미국의 입장은 어떤가.

정규진 “트럼프 취임 후 미국 우선주의 정책 기조는 우크라·러시아 휴전 협상에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 정부에 제시한 ‘광물 협정’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우크라의 주요 인프라와 천연자원 투자 프로젝트에 미국이 우선 참여할 권리를요구하고 있다.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휴전을 넘어 우크라 재건 사업에서도 미국은 비슷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 미국은 우크라 재건 투자를 사실상 독점하고 동맹국조차 부차적인 역할로 밀어내는 구상을 하고 있다. 미국은 우크라 지원의 최대 지원국으로서 재건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과 주도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기업의 이익을 최우선하기 위해 동맹국 기업이라도 배제할 수 있다.”

우크라 정권이 바뀔 수 있다는 전망도 있다. 우크라 재건 사업에 미칠 영향은. 

조은진 “우크라의 경우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에서 전쟁을 치르고 있기 때문에 정권 교체나 정치적 위기가 재건 사업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가령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경우 기존 사업 계약이 재조정되거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친서방 성향의 정부에서 친러 성향으로 정권이 교체할 경우 서방과의 협력이 축소되고 국제 제재 대상이 될 위험도 있다. 재건 사업에 대한 정부의 지원 축소 및 법적 리스크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

휴전 후 우크라에 친러 성향의 정권이 들어설 가능성은.

조은진 “우크라는 휴전이 이뤄진 후 계엄령을 해제하고 대선을 진행할 것이다. 우크라 현행법상 선거는 계엄령 해제 후 60일 이후에 진행될 수 있다. 2025년 4월 중에 휴전이 이뤄지고 곧바로 계엄령이 해제될 경우 대선의 대략적인 시기는 2025년 7월이 될 수 있다. 재선에 도전하는 젤렌스키는 대선을 빨리 치르고자 할 것이다. 선거 준비 기간이 짧아야 본인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면 우크라 야당은 충분한 선거 준비 기간을 요구하고 있다. 야당은 2025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대선이 진행되는 걸 바라고 있다. 여야를 떠나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이들 대부분이 친서방적인 입장을 보이는 만큼 친러 성향의 정권이 곧바로 들어설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반면 러시아는 우크라에 친러 성향의 정부를 수립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미국의 견제로 한국 기업의 우크라 재건 사업 기회가 제한될 경우 러시아 재건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할까.

정규진 “러시아와 우크라 재건 사업은 사실상 양자택일의 선택지로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서방국가의 러시아 제재가 완화되기 전에 러시아 재건 사업에 한국 기업이나 정부가 참여하는 것은 법적 및 정책적으로 중대한 리스크를 동반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은 양국의 재건 사업 참여 여부를 결정하기에 앞서 국제 제재 법령, 수출 통제 규정, 금융·결제 관련 리스크를 철저히 검토해야 한다. 또 정부 및 국제사회의 정책 방향을 면밀히 파악할 필요도 있다.”

우크라 재건과 러시아 재건 사업을 병행 추진하면 안 되나.

정규진 “한국 기업이 우크라와 러시아 재건 사업을 병행 추진할 경우 비즈니스적 선택을 넘어 국제·정치적 함의가 큰 사안으로 비화할 수 있다. 현재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우크라 침공을 명백한 국제법 위반으로 규정하고있다. 이에 따라 우크라 재건 사업은 사실상 ‘정치적 연대의 상징’으로 작동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 이익을 위해 러시아 재건 사업을 병행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신뢰가 훼손되고 우크라 재건 사업 참여 자격 제한이라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현실적인 대안은.

정규진 “당장은 러시아에 대한 서방국가의 제재가 완화 또는 해제될 때까지 러시아 진출을 지양해야 한다. 다만 향후 양국 재건 사업이 언제든 열릴 수 있다는 가정하에 제재 법령, 재건 사업을 주관하는 국제기구의 입찰 기준, 윤리 및 지배구조 가이드라인 등 진출 조건을 미리 준비해 놓으면 좋다. 쉽게 말해 규제 충돌 가능성을 미리 줄여놓자는 것이다. 우크라와 러시아 재건 사업은 단순히 사업을 위한 개방된 시장이 아니다. 국제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사업인 만큼 수익성과 함께 국제사회에서의 평판, 정책 연계성, 장기적 제재 리스크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Plus Point

80주년 전승절 앞둔 러시아 우크라전 휴전 협상 나설까

러시아는 매년 5월 9일을 승전 기념일(전승절)로 기념한다. 1945년 당시 소련(현 러시아)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 독일에 무조건 항복을 받아낸 날인 5월 9일을 기념하는 것이다. 특별히 올해는 전승절 80주년이다. 러시아가 올해 전승절에 20개국 이상 국가 정상을 초청하는 등 성대하게 준비하는 이유다.올해 전승절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또럼 베트남 공산당 총서기 겸 국가주석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러시아는 우크라·러시아 전쟁을 시작한 2022년 77주년 전승절에서 우크라 침공의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연설에서 “우크라 사회를 신나치주의자(네오나치즘)가 지배하고 있다”라며 “서방국가와 나토가 우크라를 이용해 러시아를 공격하고 있다”라고 했다. 

일각에서는 올해 전승절을 앞두고 러시아가 휴전 협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 트럼프가 “취임 100일 안에 휴전을 원한다”며 러시아를 연일 압박하는 상황에서도 우크라에 대한 러시아 공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스티브 위트코프 미국 중동 특사가 푸틴 대통령을 만나 휴전 방안을 논의한 지 이틀 만에 우크라 북동부 수미주 도심을 폭격하기도 했다. 미국의 지원을 받은 우크라가 러시아 영토인 쿠르스크에 이어 벨고로드를 점령하자 반격에 나선 것이다.

윤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