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자는 직업병처럼 누구를 만나든 어떤 영상을 보든 그 사람의 피부부터 눈에 들어온다. 최근에는 피부가 맑고 탄력 있는 사람이 많아졌다. 심지어는 정치인 등 중년 남성까지도 연예인처럼 피부가 깨끗한 사람이 많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성에게 피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요소였다. 고(故) 정주영 회장의 얼굴에 핀 검버섯은 세월의 훈장처럼 여겨졌고,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다. 성별과 나이에 상관없이 외모는 중요한 관리 대상이 됐다.
변화의 징후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이마 주름에 필러와 보톡스를 맞았음을 언급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시술 관련 이야기도 오랫동안 회자했다.
최근에는 고령의 정치인이 쌍꺼풀 수술 후 자연스럽게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일각에서는 날 선 비판도 있었지만, 그 또한 시대적 인식의 전환을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피부 미용 의원 원장으로서 필자는 이 흐름을 단지 문화적 트렌드로만 보지 않는다.
40대 이후부터는 실제로 피부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진피층을 지탱하는 콜라겐과엘라스틴 섬유는 점점 분해되고, 피부 세포의 재생 주기는 느려지며 장벽 기능도 약화한다. 여기에 자외선은 가장 강력한 피부 노화 인자로 작용한다. 색소 침착과 잔주름, 탄력 저하를 가속화한다. 그래서 ‘관리하지 않으면 늙는 것’이 아니라 ‘관리를 해야만 늙는 속도를 늦출 수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이런 흐름은 ‘하향 전파 이론(trickle-down theory)’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사회 최상층의 문화가 점차 대중에게로 확산하는 현상이다. 프랑스 루이 14세의 가발과 하이힐이 귀족을 거쳐 평민에게 퍼진 것처럼, 개화기 조선의 고위 관리와 지식인이 입기 시작한 양복과 중절모는 교사, 상점 주인, 도시 중산층을 지나 서민층까지 퍼졌다. 지금의 중년 남성 피부 관리 열풍도 이 같은 경로를 따르고 있다.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 군 장성에 이어 이제는 일반 직장인, 자영업자, 퇴직 후 인생 2막을 준비하는 남성까지 피부과를 찾고 있다.
진료실에서도 그런 변화를 실감한다. 예전엔 아내에게 끌려온 남성이 많았다면, 요즘은 본인이 검색하고 예약한 뒤 구체적인 고민을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늘었다. 눈가 잔주름, 처진 턱선, 칙칙한 피부 톤, 넓어진 모공 등 다양한 문제를 인식하고 실제로 개선에 관심을 두는 사람이 많아졌다.
피부는 꼭 병원에 찾아와 시술을 받지 않더라도, 홈케어 루틴만 잘 지켜도 큰 도움이 된다. 아침저녁으로 세안하고 보습 크림을 발라주고, 매일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특히 한국 남성은 유분이 많고 수분이 적은 피부 타입이 많기 때문에, 끈적이지 않으면서도 수분감 있는 젤 타입의 보습제를 추천한다.
세안을 한 후에는 비타민C처럼 항산화 성분이 들어간 세럼을 바르고, 아침에는 반드시 SPF 30 이상의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는 습관이 중요하다. 주 1~2회의 약산성 필링제나 딥클렌징 마스크도 각질 관리에 도움이 된다.
아직 ‘모든 중년 남성이 피부 시술을 받는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회 리더의 변화는 또래 남성에게 무언의 압박이자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외모 역시 관리의 영역이라는 인식은 더 이상 특별하지 않다.
관리하는 남자가 멋진 시대, 이제는 중년 남성도 피부를 말할 자격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