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오픈소스로 공개한 로봇 의족(義足)의 설계도와 소프트웨어를 활용한다면 누구나, 어디서든, 저렴한 비용으로 손쉽게 제작할 수 있다.”

엘리엇 라우스(Elliott J. Rouse) 미국 미시간대 로봇·기계공학 교수는 2017년부터 자기 팀에서 개발한 로봇 의족을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다. 이른바 ‘오픈소스 레그 프로젝트’다. 의족은 다리 잃은 장애인의 필수 보조 기구인데, 라우스 교수는 여기에 전동 기능을 추가한 로봇 의족을 개발했다. 일반 의족과 달리 전동 모터가 탑재돼 사용자의 움직임에 따라 무릎과 발목을 능동적으로 제어할 수 있다. 덕분에 보다 자연스럽고 안정적인 보행이 가능하다. 제작 비용도 비교적 저렴하다. 일반적으로 상용 로봇 의족은 수십만달러에 달한다. 하지만 오픈소스 방식을 통해 제작 비용을 9000달러(약 1277만원)까지 줄였다. 설계도(CAD 도면), 부품 목록, 소프트웨어 코드를 오픈소스로 무료로 공개하고, 중간 유통 마진도 없어서다. 기술 접근성이 낮은 국가에서도 자체 제작 및 활용이 가능하다. 그의 팀이 이 프로젝트를 ‘의족 연구의 민주화(Democratizing Prosthetics Re-search)’라고 표현하는 배경이다. 라우스 교수에게 기껏 어렵게 만든 기술을 오픈소스로 공개한 이유를 묻자 “기술이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고, 전 세계가 함께 연구 성과를 나눌 때 더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엘리엇 라우스 미시간대 로봇·기계공학 교수 - 노스웨스턴대 바이오메디컬 공학 석·박사,  현 미시간대 뉴로바이오닉스 연구소 소장,  전 알파벳 문샷팩토리 기술 자문,  전 RAI 연구소 연구원, 전 LA다저스 R&D 컨설턴트
엘리엇 라우스 미시간대 로봇·기계공학 교수 - 노스웨스턴대 바이오메디컬 공학 석·박사, 현 미시간대 뉴로바이오닉스 연구소 소장, 전 알파벳 문샷팩토리 기술 자문, 전 RAI 연구소 연구원, 전 LA다저스 R&D 컨설턴트

그간 보조 기구 연구에 애로사항이 많았다고 들었다.

“전 세계 곳곳에서 보조 기구 제어와 생체역학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었지만, 각기 다른 시스템에서 작업해야 했다. 모두가 독자적으로 로봇 의족 하드웨어를 설계하고 제작해야 했으며, 비용이 많이 들 뿐 아니라 서로 호환되지 않는다는 문제도 있었다.연구 환경이 단절된 탓에 서로의 연구 결과를 비교하거나 재현하는 것도 어려웠다. 이런 하드웨어 제약으로 기관 간 협업은 그림의 떡이었다. 과학 발전보다 플랫폼 제작에 시간과 자원이 많이 소모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픈소스 방식을 택했나.

“맞다. 오픈소스 레그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이런 좌절감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고성능 의족이 특정 연구실이나 임상 시험에만 머무르지 않고, 누구나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는 공통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협업’의 가치를 중심에 둔 오픈소스 접근법을 도입했다. 경쟁 위주의 기존 학계 관행을 깬 셈이다.”

어디까지 오픈소스로 공개하고 있나.

“CAD 도면과 소스 코드뿐 아니라, 표준화된 자재 명세서, 주석이 포함된 기계 도면 등 대부분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참조용 제어 전략과 함께 조립 가이드, 설치 튜토리얼, 테스트 사례까지 온라인에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제공 중이다.”

실제로 오픈소스 효과를 체감하고 있나.

“물론이다. 전 세계 흩어진 연구실이 로봇 의족을 더 쉽게 설계하고 재현하고 있다. 작은 대학의 대학원생도 세계적인 연구실에서 사용되는 동일한 다리를 제작할 수 있게 됐다. 의료 시설에서도 구매 전 성능을 직접 실험할 수 있다. 동시에 한 연구실에서 개선한 보행 제어 장치나 CAD 도면 같은 결과물이 다른 연구실에 바로 적용되는 등 서로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있다. 오픈소스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더 많은 기회를 만들어 내는 혁신, 그 자체다.”

엘리엇 라우스 교수 연구팀이 로봇 의족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엘리엇 라우스
엘리엇 라우스 교수 연구팀이 로봇 의족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엘리엇 라우스

오픈소스가 기술 발전을 촉진하는 원리는.

“오픈소스는 설계 방식과 소스 코드를 공개함으로써 다양한 사람이 오류를 빠르게 발견하고, 개선하며, 안전성을 높인다. 이러한 투명성은 단순한 기술적 성과를 넘어 사용자와 개발자, 대중과 신뢰를 쌓는 기반까지 형성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참여는 더 많은 변화를 일으킨다. 기술에 접근할 수 있는 문을 열어둠으로써 시스템이 더 빠르게 발전하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닿으며, 더 널리 쓰이는 기반이 되기 때문이다.”

공익에도 상당히 기여하는 셈이다.

“그렇다. 특히 의족 같은 보조 기구처럼 인간 삶과 밀접한 분야에서 그 가치가 더욱 두드러진다. 과거에는 첨단 보조 기구 기술이 특정 연구실에만 국한돼, 소수 기관이 사실상 독점하는 상황이었다. 그 결과, 자원이 부족한 지역의 연구자, 의료진, 최종 사용자는 기술을 활용하거나 발전에 참여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다. 오픈소스는 이런 장벽을 허물었다.”

동시에 책임감도 느낄 것 같다.

“실제로 더 명확하고 접근 가능한 문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이 생겼다. 그래서 기술적 장벽을 느낄 수 있는 사용자를 위해 온보딩(초기 적응) 과정을 개선하고, 사용자 수준에 맞는 도구를 설계하려고 노력 중이다. 관련 기술이 필요한 사람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수 있다는 확신이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다.”

오픈소스화 과정에서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의 도움을 받았다고.

“일명 ‘오픈소스 생태계 조성(Pathways to Enable Open-Source Ecosystems)’ 프로그램으로 지원받아 우리 연구 결과를 더 많은 사람이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발전시켰다. 구체적으로 인프라 구축, 사용자 피드백 반영, 소통 방식을 개선했으며, 이과정에서 우리는 파이썬을 활용해 소프트웨어 도구도 개발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부품 및 센서 연결 방법과 코드 오류를 자동으로 찾아내는 시스템을 확장해 안정성까지 높였다.”

오픈소스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다른 분야는.

“보조 기구 분야뿐 아니라 로봇공학, 생체역학, 공학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도 오픈 소스 개발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센서와 기계 부품을 연결해 작동시키는 도구인 ‘소프트웨어 개발 키트(SDK·Software Development Kit)’를 만들어 공개했다. 이 도구를 통해 연구자는 로봇공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 기술을 활용할 수 있다. 이외에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여러 도구를 한데 모아 제공하고 있다.”

지속 가능 오픈소스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단순히 코드를 공개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들이 믿고 기여하며 발전시킬 수 있는 공통 기반이 필요하다. 이 기반을 구축하려면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마련하고, 명확한 문서를 작성하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할 테스트와 지원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사람들이 공유하는 목표와 협력 문화가 어우러져야 한다. 오픈소스 의족은 인간과 로봇의 상호작용을 연구하기 위한 플랫폼이자, 전 세계 사람이 협력해 서로의 기여를 활용하고 혜택을 나누는 공유 환경을 만든 사례다.”

오픈소스의 진정한 가치는.

“모두가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협력과 혁신을 촉진하는 데 있다. 이는 로봇공학이나 보조 기구 같은 분야에서 특히 중요하다. 오픈소스 의족은 단순한 제품이 아니다. 커뮤니티가 함께 성장시키는 플랫폼이다. NSF의 지원 덕분에 사용자 중심적이고 투명한 방식으로 발전을 이어가며, 커뮤니티 필요를 충족시키고 있다. 이런 모든 요소가 모여 오픈소스를 더 지속 가능하고, 접근 가능하며, 영향력 있는 존재로 만든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