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I연합, AP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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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 느림보(Mr. Too Late)’이자 ‘대패배자(Major Loser)’가 지금 당장 금리를 내리지 않는다면 경기가 둔화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월 21일(이하 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에 자기 요구대로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는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을 겨냥해 적은 글이다. 연준의 독립성을 흔드는 트럼프 발언에 시장은 즉각 요동쳤다. 이날 미국 S&P500 지수는 2.36% 하락했고, 나스닥 지수(-2.36%)와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2.48%)도 미끄러졌다. 주요 여섯 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 인덱스는 하루 만에 1.09% 떨어졌다. 미국 10년물 국채 금리는 1.93% 오르며 국채 가격도 내려갔다. 이튿날인 4월 22일 트럼프가 황급히 “파월을 해임할 계획은 없다”며 수습에 나섰지만, 연준의 독립성을 우려하는 투자자의 불안은 사그라지지 않는 모양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발언은 중앙은행에 대한 공격의 전조일 수 있으며, 미국 경제에 대한 또 하나의 우려를 더한 것”이라고 전했다.

파월 흔드는 트럼프에 반격하는 시장

트럼프가 파월을 압박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1기 재임 기간(2017~2021년)에도 트럼프는 증시 부양을 이유로 파월에게 기준금리 인하를 노골적으로 요구했다. 올해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한 이후에는 그 빈도와 강도를 모두 높였다. 지난 1월 공개적으로 “파월을 만나 즉시 금리 인하를 요구하겠다”고 발언한 데 이어, 2월에는 “관세 인상과 함께 금리 인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고, 4월에는 “지금이 금리 내리기에 완벽한 시기”라며 연준을 계속 압박했다.

트럼프는 최근 유가 하락과 물가 안정세를 근거로 이제 연준이 금리를 내릴 여지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트럼프가 자신의 관세정책으로 인한 증시 침체를 금리 인하로 만회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보고 있다. 파월 역시 4월 16일 기자회견에서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물가 상승과 경기 둔화를 동시에 초래할 수 있다”며 통화정책에 신중히 접근하겠다고 밝혔다. 연준이 트럼프 압박에 굴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셈이다.

트럼프는 즉각 발끈했다. 4월 17일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와 정상회담에서 “그(파월 의장)와 함께 일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에게 나가라고 전해달라”고 말한 것이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는 ‘파월 의장을 해고할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그가 금리 인하 정책을 바꾸지 않는다면”이라고 답하며, 연준에 대한 압박 수위를 더욱 끌어올렸다.

트럼프의 연준 흔들기에 투자자는 주식과 채권시장을 떠나 금 같은 안전 자산 시장으로 대거 이동하는 추세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4월 21일 기준 금 현물과 선물(6월 인도분 기준) 가격 모두 온스당 3400달러(약 483만원)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트럼프가 4월 22일 파월 해임설을 일축하면서 금값이 안정세를 찾고 있지만, 미국 통화정책을 둘러싼 불확실성은 여전하다는 게 시장의 시각이다.

트럼프 파월 해임? 중앙은행 독립 보장 법 시험대

그렇다면 트럼프가 실제로 파월을 해임할 수는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우선 미국의 연방준비법은 연준의 독립성을 보호하도록 설계돼 있다. 이에 대통령이 연준 의장을 임의로 해임할 수는 없고, 부패 등 명백하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

이는 1935년 미국 대법원 판례에 따른 것이다. 당시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자신의 뉴딜 정책에 반대한 윌리엄 험프리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을 임기 중 해임했다. FTC는 연준처럼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인데, 루스벨트가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다르다는 이유로 해임한 것이다. 험프리 사망 후 그의 유족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은 만장일치로 험프리 해임이 위법이라고 봤다. “독립 규제 기관의 위원을 해임하려면 충분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이 판례는 오늘날까지도 연준 의장 같은 독립 기관 수장의 해임 가능성을 판단하는 핵심 근거로 작용하고 있다.

변수는 있다. 트럼프가 최근 전국노동관계위원회(NLRB)의 민주당계 위원을 해임했고, 현재 이 사건이 미국 대법원에서 심리 중이다. NLRB 역시 독립성이 보장된 기관인데,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1935년 판례가 뒤집힐 수 있다. 만약 대법원이 트럼프 손을 들어준다면, 대통령이 독립 규제 기관 위원을 보다 자유롭게 해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셈이다. 그렇게 되면, 파월 해임 역시 완전히 불가능한 시나리오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미국 현지에선 이 시나리오가 실현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고 보고 있다. 시장에 미칠 충격을 우려해 트럼프 참모진이 이를 막을 수 있고, 대법원 역시 트럼프 해임 권한을 인정하면서도 연준은 예외로 둘 수 있어서다.

트럼프 폭주 막는 베센트 역할론 주목

트럼프는 이 때문에 파월을 해임하지 않고도 연준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하나가 일명 ‘그림자 연준 의장(shadow Fed chair)’ 시나리오다. 파월 임기가 내년 5월까지로, 아직 1년가량 남았지만, 파월 후임으로 유력한 인물을 내세운 뒤 공개적으로 파월과 배치되는 발언을 하게 하는 게 골자다. 파월 발언권을 무력화해 트럼프 의도대로 시장을 움직이겠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 역시 연준 독립성을 크게 흔들 수 있는데, 특히 스콧 베센트 미 재무 장관이 트럼프를 만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그는 블룸버그TV와 인터뷰에서 “(연준의 독립성은) 우리가 존중하고 보존해야 할 금과옥조”라며 시장에 가해질 충격을 우려했다. 미 국채 금리 안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베센트는 이전부터 트럼프 폭주를 막아 내는 모습을 보였다. 트럼프가 4월 9일 중국을 제외하고 상호 관세를 90일 유예하겠다고 발표했는데, 그 배경에도 베센트의 오랜 설득이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베센트의 브레이크 역할에도 불구하고 트럼프가 파월을 계속해서 흔든다면, 시장은 큰 충격을 받을 전망이다. 글로벌 투자 회사 ‘에버코어ISI’의 크리슈나 구하 부회장은 “트럼프가 진짜로 파월 의장 해임에 나설 경우 미국의 채권 금리 상승과 달러 가치 하락, 주식 투매 등 강한 시장 반응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Plus Point

美 중앙은행장 수난史
멈추지 않는 연준 흔들기

미국에서 현직 대통령이 연준을 압박했던 사례는 과거에도 수차례 있었다.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1960년대 린든 B. 존슨 대통령과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윌리엄 마틴 사이의 충돌이다. 존슨은 경제성장을 위해 금리 인하를 원했으나, 마틴이 인플레이션 상승을 우려하며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1965년 존슨은 자신의 텍사스 농장으로 마틴을 불러 강하게 금리 인하를 요구했지만, 마틴은 끝까지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았고,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냈다.

1970년대 초 리처드 닉슨 대통령 시절에도 유사한 갈등이 있었다. 당시 재선을 앞둔 닉슨이 경제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강하게 원했는데,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가 경제 과열과 인플레이션 문제를 이유로 금리 인하를 거부했다. 그러나 닉슨의 압박 끝에 번스는 결국 금리를 인하했다. 그 결과, 1973년 닉슨의 재선 직후 인플레이션이 재발했고, 오일쇼크까지 겹치면서 미국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기 침체를 동반한 물가 상승)에 빠지는 결과를 낳았다.

1992년 조지 H. W.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재선을 노리던 시기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부시는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에게 금리 인하를 재촉했지만, 그는 이를 거절했다. 부시는 결국 재선에 실패했고, 훗날 방송에 나와 자신이 임명한 그린스펀을 두고 “은혜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공개 비난했다. 부시의 후임 빌 클린턴 대통령은 연준의 독립성을 지켜줬고,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직접 언급하는 것을 거부해 왔다. 결과적으로 그린스펀 재임 기간인 1987년부터 2006년까지는 미국 경제의 대(大)안정기로 평가받는다.

김우영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