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불 레이싱팀 소속 세계적인 스타인 맥스 페르스타펜(벨기에)이 4월 5일 일본 미에현 스즈카에서 열린 F1 경주를 마친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레드불 레이싱팀 소속 세계적인 스타인 맥스 페르스타펜(벨기에)이 4월 5일 일본 미에현 스즈카에서 열린 F1 경주를 마친 뒤 환호하고 있다. /AP연합

경쟁 제품보다 가격이 비싼데도 압도적인 매출로 업계 1위를 달리는 음료 회사가 있다. 한 해 판매하는 음료수가 120억 캔이 넘는다. 미디어 기업도 아닌데 마케팅 비용의 3분의 2 이상을 콘텐츠 제작과 관리에 투자하고, 3시간짜리 이벤트에 700억원이 넘는 돈을 쏟아붓기도 한다. 성분과 제조법은 전부 공개됐지만, 코카콜라를 포함해 훨씬 몸집이 큰 선발 주자도 따라잡지 못한다. 

세계 1위 에너지 음료 업체 ‘레드불’ 이야기다. 출시 첫해인 1987년에 약 80만유로(약 10억7000만원)의 매출을 기록한 레드불은 매년 두 배 가까운 성장을 이어 갔고, 1995년에는 매출 1억유로(약 1628억원)를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112억유로(약 18조2300억원)의 매출로 역대 최고 기록을 갱신하면서 같은 기간 74억9000만달러(약 10조6283억원)를 거둬들인 에너지 음료 업계 2위인 ‘몬스터 베버리지’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몬스터 베버리지는 세계 최대 음료 기업 코카콜라가 투자한 에너지 음료 업체다. 역사가 40년 남짓(1984년 창업, 1987년에 제품 첫 출시)한 레드불의 급성장은 성숙 단계에 접어든 시장에 진출한 후발 업체의 성공 신화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레드불의 차별화 포인트는 제품이 아닌 ‘문화’와 ‘스토리’다. 레드불은 출시 초기부터 경쟁 제품보다 10% 이상 비싸게 가격을 책정했다. 차별화 전략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다. 레드불의 공동 창업자 디트리히 마테시츠 (1944~2022)는 프리미엄 전략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젊은 소비자를 매혹시켜야 한다고 믿었다. 에너지 드링크의 핵심 고객이 젊은 층이란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레드불은 매출의 3분의 1을 마케팅에 쏟아붓지만 ‘마케팅하지 않는 회사’라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자연스럽고 친근한 방법으로 고객에게 다가선다. 크게 세 가지 방법을 통해서다.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2012년 10월 4일 레드불이 준비한 ‘우주 낙하’ 이벤트를 위해 지상 3만9000m 상공에서 지구를 향해 뛰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레드불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가 2012년 10월 4일 레드불이 준비한 ‘우주 낙하’ 이벤트를 위해 지상 3만9000m 상공에서 지구를 향해 뛰어 내릴 준비를 하고 있다. /레드불

성공 비결 1│기상천외한 이벤트

2012년 10월 4일(이하 현지시각) 지상 3만9000m 성층권에 자리 잡은 캡슐 안에서 우주복 차림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스트리아의 스카이다이버 펠릭스 바움가르트너였다. 그의 양 어깨와 헬멧, 다리에는 레드불 로고가 선명했다. 카메라를 향해 경례를 마친 그는 지구를 향해 몸을 던졌고 최고 시속 1357㎞(마하 1.25)로 자유낙하를 시작했다. 4분 19초가 흐른 뒤 낙하산이 펼쳐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무사히 지표면에 안착했다. 인류 최초로 맨몸 초음속 낙하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유튜브로 중계한 초유의 ‘우주 낙하’ 이벤트를 전 세계에서 800만 명이 동시 접속으로 지켜봤다. 레드불은 3시간 동안 진행된 이 행사를 위해 5년간 6500만달러(약 743억원)를 투자했다. 엄청난 비용이지만 이를 통해 거둔 광고 효과는 60억달러(약 9조2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해 레드불의 매출은 전년 대비 16% 늘었다.

레드불이 개최하는 독특한 행사 중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종이비행기 국제 대회인 ‘레드불 페이퍼 윙스’도 있다. 2006년에 시작된 이후 3년마다 개최하며 대회 규모를 점차 확대해 왔다. 2022년 대회에는 60여 개국에서 6만여 명이 참가했다. 국가별 예선을 통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지만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공기역학에 대한 이해와 창의력, 집중력, 신체 능력 등이 필수다. 지금까지 최고 기록은 멀리 날리기 88.31m, 오래 날리기 16.39초다.

서바이벌 프로젝트 ‘레드불 캔유메이크잇’ 도 인기다. 세 명이 한 팀을 이뤄 레드불 24캔만 가지고 물물교환을 하며 유럽을 여행한다. 세계 최고의 발차기 고수가 경합하는 무술 대회 ‘레드불 킥잇’도 있다.

성공 비결 2│전방위 스포츠 마케팅

젊은 소비자를 열광하게 하는 데는 스포츠만 한 것도 없다. 레드불의 스포츠 마케팅 활동은 인기·비인기 종목을 가리지 않는다. 가장 공을 들이는 종목은 축구와 모터스포츠 포뮬러원(F1)이지만 야구와 농구, 자전거 BMX, 스케이트보드, 카누, 요트, 클라이밍, 웨이크보드, e-스포츠에 이르는 폭넓은 종목의 행사와 선수를 후원해 왔다. 마테시츠는 개인 자동차 경주 트랙을 보유하고 있을 만큼 F1에 애정이 남달랐다. F1은 2023년 TV 시청자 수(누적 기준)가 15억 명을 넘어설 만큼 광고 효과가 좋은 스포츠다. 엄청난 속도로 진행되는 F1 레이싱의 이미지가 에너지 드링크와 잘 맞아떨어지기도 했다. 2004년 레드불은 재규어 레이싱팀을 인수해 2005년 데이비드 쿨사드를 레이싱팀 리더로 고용, 레드불 레이싱팀을 꾸렸다. 팀 등장 5년 만인 2010년 첫 우승을 거둔 후 2013년까지 4년 연속 왕좌의 자리를 지켰다. 레그불은 전 세계 3대 스포츠 중 하나인 축구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05년 SV 카지노 잘츠부르크를 인수해 ‘FC 레드불 잘츠부르크’를 창단했고, 2006년에는 뉴욕·뉴저지 메트로 스타스팀을 인수해 ‘뉴욕 레드불스’로 이름을 바꿨다. 또 독일 프로 축구 5부 리그 SSV 마르크란슈테트를 인수해 ‘RB(레드불) 라이프치히’로 개명했다. 독일 프로 축구 리그는 팀 이름에 기업명 넣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RB’란 이름으로 대체한 것이다. 뉴욕 레드불스의 경우 인수 가격은 2500만달러(약 354억7500만원)였지만, 지금은 3억달러(약 4257억원)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성공 비결 3│공격적인 미디어 활용

마테시츠는 종종 “레드불은 어쩌다 에너지 드링크를 팔게 된 미디어 회사”라고 농을 하곤 했다. 마케팅 비용의 3분의 2 이상을 콘텐츠 제작 및 관리에 투자하는 것을 생각하면 우스갯소리로만 받아들일 수 없다. 레드불은 2007년 설립한 자회사 레드불 미디어하우스(RBMH)를 통해 레드불과 관련된 모든 콘텐츠를 생산하고 관리한다.

RBMH가 주최하거나 후원하는 모든 이벤트 영상은 페이스북 공식 계정과 유튜브 계정, 별도의 ‘레드불TV’ 등을 통해 서비스한다. 레드불TV는 익스트림 스포츠를 다루는 전문 채널로, 레드불 후원 행사를 중계해 열혈 시청자층을 확보했다. 완성도 높은 영상물은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SNS)를 타고 더 많은 사람이 보게 된다. 그런 방식으로 브랜드와 제품의 인지도를 자연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다. RBMH가 제작한 레드불 관련 영상은 170여 개국에서 10억 명이 넘는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Plus Point

레드불의 시초는 태국산 ‘붉은 물소’

레드불의 시초는 1970년대 태국에서 만들어진 ‘크라팅 다엥(Krating Daeng)’이라는 에너지 드링크다. 크라팅 다엥은 태국어로 ‘붉은 물소’라는 뜻이다. 마테시츠와 함께 레드불을 공동 창업한 태국인 찰레오 유비디야가 설립한 제약 회사의 인기 제품이었다. 

마테시츠는 오스트리아 빈 경제경영대에서 마케팅을 전공했다. 독일의 제이콥스 커피, 글로벌 생활용품 제조 업체 유니레버에서 일한 뒤 프록터앤드갬블(P&G)의 전신인 브렌닥스에서 글로벌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다.

태국 출장 중 크라팅 다엥을 마신 마테시츠는 피로가 씻은 듯 사라진 것을 느끼고 찰레오를 찾아가 유럽에서 판매할 것을 제안했다.

의기투합한 둘은 1984년 각각 50만달러를 투자해 오스트리아에 회사를 세웠고 유럽인의 입맛에 맞게 음료 레시피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주원료인 타우린, 카페인, 글루쿠로노락톤 등은 그대로 사용하되 설탕을 줄이고 탄산수를 첨가했다. 1987년 청색과 은색으로 디자인한 레드불을 오스트리아에서 출시했다. 

레드불은 출시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면서 마테시츠와 찰레오는 엄청난 부(富)를 거머쥐었다. 2022년 사망 당시 마테시츠의 재산(포브스 추산)은 274억달러(약 38조8800억원)였다. 

찰레오는 2012년 89세로 세상을 떠났다. 사망 당시 그의 재산은 50억달러(약 7조950억원)였다.

이용성 국제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