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과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회담을 통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다. /셔터스톡
결과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회담을 통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다. /셔터스톡

2022년 2월 24일(이하 현지시각)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3년 넘게 계속되고 있다. 계속될 것 같았던 양국의 전쟁은 올해 1월 2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큰 변화를 맞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24시간 이내에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강조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개최된 우크라이나 평화 회담을 통해 가시화됐다.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배제하고 러시아와 미국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간 진행된 평화 회담은 강대국이 일방적으로 약소국을 짓눌러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과거로의 회귀를 상징하는 장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한편으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 대가로 우크라이나 광물자원 등에 대한 통제권을 미국이 갖도록 하는 협정을 체결할 것을 강요했다. 하지만 백악관에서 개최된 회담은 J.D. 밴스 미국 부통령의 도발적인 언사와 이에 대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반발로 격화되면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취소됐다. 2025년 4월 초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특사인 키스 켈로그 미 우크라이나·러시아 특사가 평화협정의 일환으로 우크라이나를 분할하는 방안을 언급하기도 했다. 제안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를 크게 삼등분으로 나눠 서부 지역에는 영국과 프랑스군, 현재의 전선과 드니프로강 동쪽 사이에는 우크라이나군이 주둔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지역은 러시아가 통제하도록 하는 방안이다. 양국 군의 충돌을 막기 위해 양측이 각각 9마일(약 14.5㎞)씩 후퇴해 폭 18마일의 비무장지대를 만들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은 파병하지 않는 조건이다. 당연히 우크라이나는 여기에 대해 반발했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 서울대 환경대학원 공학 박사, 전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연구관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머지않은 시점에 우크라이나 평화협정이 합의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 대체적인 우세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4월 18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휴전에 대한 명확한 합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 한 며칠 내에 평화협정 협상을 포기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 장관 역시 “조속한 시일 내에 돌파구가 나오지 않으면 평화 회담을 당분간 중단하고 다른 현안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미국의 태도가 바뀐 것은 러시아가 미국이 수용하기 곤란한 과도한 요구를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러시아 크렘린궁 대변인은 회담에 대해 그동안 논의를 통해 일부 진전은 있지만 어려운 논의가 많이 있다고 언급하면서 평화 회담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음을 내비쳤다. 러시아는 단순한 분쟁 종식을 넘어 우크라이나 병력 및 군 장비에 대해 강력한 제한을 둠으로써 실질적인 비무장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는 군대를 유지하고 육성할 능력을 보장받기를 희망했고 미국으로서도 러시아가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여기게 됐다. 러시아는 미국이 중재한 에너지 시설에 대한 공격 중단 조치를 무시하고, 우크라이나 민간 에너지 시설 및 대도시에 대한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또 러시아는 서방의 제재가 해제되지 않을 경우 흑해 안전보장에 대한 어떠한 협정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같은 러시아의 태도가 불만족스러울 수밖에 없다.

미국과 광물 협정 서두르는 우크라이나

이런 틈을 타고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광물 협정 체결을 서두르고 있다. 서명을 앞두고 결렬됐던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양측이 철저한 물밑 협상과 단계적 합의를 통해 매끄러운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은 요구 조건을 완화한 것으로 알려졌고, 우크라이나 역시 공동 경제 파트너십을 위한 과정으로 포장하면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4월 18일 양측 실무진은 임시 합의안에 대해 가서명했으며, 현재 양측 법률팀이 세부적인 사항에 대한 검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4월 24일 서명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 장관이 4월 26일까지 서명을 마무리하는 것이 목표라고 언급하면서 아직 다뤄야 할 현안이 많음을 암시하기도 했다.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으로서는 벼랑 끝 전술을 통해 일단 미국을 묶어놓는 데 성공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평화협정 이탈 가능 발언 이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활절 연휴 동안 30시간의 휴전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2023년 1월 정교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기 위해 휴전을 선포한 이후 두 번째 일방적 휴전 선언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휴전 선언을 준수하지 않고 공격을 이어갔다. 이런 이유로 젤렌스키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군에 대한 완전한 통제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거나 진정으로 전쟁을 끝낼 마음이 없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러시아의 일방적 휴전 선언에 대해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 대해 30일간 지속되는 휴전을 제안하면서 응수했다. 일단 민간 시설에 대한 드론과 미사일 공격을 멈추자는 제안에 대해 러시아는 반응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끝나는 걸 모두가 반기는 건 아니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 3국 국방 장관은 러시아가 휴전 후에도 계속해서 우크라이나 문제에개입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발트 3국은 러시아가 자국과 국경 지역에 군비를 증강하고 있으며, 병력을 추가 배치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이 일단락되면 러시아는 빠르게 병력을 발트 3국과 접경 지역으로 배치할 것이며, 이는 발트 3국의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우크라이나와 휴전이 러시아에 군사력 증강을 위한 시간으로작용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러시아가 새롭게 150만 명의 병력을 충원해 핀란드 및 발트 3국 인근에 새로운 군단을 창설하는 등 병력을 두 배로 늘릴 수 있다는 것이다. 러시아 전선에 배치된 60만 명 가운데 최소 30만명이 전환·배치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또 발트 3국은 휴전 후 우크라이나에 배치될 평화유지군으로 현재 자국에 있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군이 이동하는 것에 반대하고 있다. 자국에 주둔한 프랑스 및 영국군 등 나토군이 빠져나가면 러시아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러시아의 회담을 통해 신속하게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을 종식시킨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실패했다. 러시아로서는 전선에서 유리한 상황임을 고려할 때 원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굳이 빠른 휴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미국 입장에서는 광물 협정까지 체결한 우크라이나를 방치할 수는 없을 것이며, 이에 따라 빠른 전쟁 종식 가능성은 작아지고 있다. 물론 관세전쟁으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큰 반발과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분위기 반전을 위해 의외의 합의와 결과를 도출해 낼 가능성도 있다. 다만 시간이 흐를수록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빠른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종식’은 멀어져만 갈 것이다.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