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매 아버지 둔 딸, 뇌에 타우 단백질 축적
캐나다 맥길대 심리학과 실비아 빌뇌브(Sylvia Villeneuve) 교수 연구진은 “아버지가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경우 자식의뇌에 타우 단백질이 많이 퍼져 역시 알츠하이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4월 9일(현지시각) 밝혔다. 연구 결과는 이날 미국 신경학회가 발간하는 국제 학술지 ‘신경학’에 실렸다.
알츠하이머병은 치매 환자 3분의 2를 차지하는 퇴행성 뇌 질환이다.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와 타우 단백질이 비정상적으로 쌓이면서 발생한다고 알려졌다.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은 원래 신경세포를 보호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에서 떨어져 나와 덩어리를 이루면 오히려 손상을 준다. 타우 단백질 역시 신경세포의 구조를 유지하는 이음새 역할을 하는 단백질이지만, 세포 내부에 쌓이면서 인지 기능에 문제를 일으킨다.
이번 연구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가족이 있는 사람 중 현재 인지력이나 기억력에 문제가 없는 243명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평균연령은 68세였다. 7년간 뇌 영상을 찍고 인지 기능과 기억력을 조사했다. 이 기간에 71명이 알츠하이머병의 전 단계인 경증 인지 장애를 겪었다.
연구진은 여성 참가자가 남성 참가자보다 뇌에 타우 단백질이 더 많이 축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또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둔 사람의 뇌에 타우 단백질이 더 많이 퍼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면 아버지 알츠하이머병이 딸의 발병 위험과 더 관계가 있다고 볼 수 있다.
빌뇌브 교수는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둔 사람이 치매 어머니가 있는 사람보다 타우 단백질 축적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가설을 입증한 것”이라며 “이런 취약성을 더 잘 이해하면 알츠하이머병을 예방할 수 있는 맞춤형 치료법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페인 생의학연구소의 조르디 페레즈-투르(Jordi Perez-Tur) 박사는 이번 연구에 대해 ‘사이언스미디어센터’에 “최근 몇 년 동안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부모가 자식의 발병 위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여러 연구가 있었고 성별에 따라 상반된 결론을 내렸다”며 “특정 시점에서 집단을 분석해 숨겨진 편견이 영향을 미칠 수 있었지만, 이번 연구는 한집단을 7년간 추적했다”고 말했다. 장기 추적 결과여서 신빙성이 높다는 말이다.
페레즈-투르 박사는 질병 연구에서 성차(性差)를 밝히는 일이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를 같은 구조로 간주하는 것은 의학 역사 전반에 걸쳐 특히 여성에게 해로운 단순화”라며 “특정 질병에 영향을 미치는 성별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질병에 대한 지식을 풍부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보다 공정한 과학에 근접하게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치매가 더 영향을 준다는 결과도
이번에 조사한 사람들은 대부분 백인이라는 한계가 있다. 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아버지를 둔 사람이 뇌에 타우 단백질이 더 많이 퍼졌다는 연관 관계는 확인했지만, 아버지의 치매가 대물림되는 인과관계를 확인한 것은 아니다.
앞서 아버지가 아니라 어머니의 알츠하이머 치매가 자식의 발병 위험에 더 관계가 있다는 상반된 결과도 있었다. 미국 하버드대 신경과 양현식 교수 연구진은 지난해 6월 ‘미 의사협회지(JAMA) 신경학’에 알츠하이머병에 걸린 어머니가 있는 사람에게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가 더 높게 나왔다고 발표했다.
연구는 인지 기능에 문제가 없는 65~85세 4413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아버지가 일찍 기억력 장애를 보이면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자식의 뇌에서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가 높았지만, 어머니는 치매 발병 나이와 상관없이 자식의 높은 아밀로이드 베타 단백질 수치와 관계가 있었다. 연구진은 알츠하이머병이 모계 유전되는 경향이 있음을 시사하는 결과라고 밝혔다.
공동 저자인 하버드대의 레이사 스펄링(Reisa Sperling)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는 곧 임상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며 “알츠하이머병의 모계 유전이 아직 증상이 나타나지 않은 환자를 식별하고 예방 치료를 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라고 했다.
기억력 저하, 건망증과 치매는 달라
아직 부모의 치매가 자식에게 대물림되는지는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다만 자식의 뇌 건강과 연관이 있다는 점은 밝혀졌다. 나중에 치매 부모를 돌보는 스트레스가 더 영향을 줄지도 모른다. 확실한 것은 부모의 치매를 예방하고 조기 진단할 수 있도록 잘 살피는 것이 아들딸 자신의 건강을 지키는 길이라는 사실이다.
최근 알츠하이머병 치료 신약이 잇따라 허가받았지만, 한계가 분명하다. 모두 알츠하이머병 초기 환자만 치료하는데, 현재로선 초기 치매 환자를 찾아낼 진단 방법도 뾰족한 게 없다. 전 세계 제약·바이오 업계와 과학계는 알츠하이머 치매를 조기 진단할 새로운 방법을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별도 진단 기술이 없어도 일상에서 부모의 치매 발병 여부를 감지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바로 기억력을 살피는 것이다. 흔히 기억력이 떨어지면 모두 치매 초기 증상으로 여기지만, 건망증과 차이가 있다.
노인성 건망증 환자는 근래 지난 일에 대해 자세한 부분을 기억하지 못할 뿐, 전체적인 것은 알고 있다. 반면 치매 환자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옆에서 힌트를 줘도 기억하지 못한다. ‘작년 어버이날 가족이 모였을 때 무슨 얘기를 했더라’고 하면 건망증이고, ‘작년 어버이날에 모였다고? 그런 적 없다’고 하면 치매에 의한 기억 장애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