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몸에는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항체를 만들어 방어하는 면역 기능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에도 마음을 힘들게 하는 일이 발생하면 스스로 마음을 보호하는 시스템이 작동한다. 이것을 정신의학에서는 방어기제라고 한다.
우리는 ‘내가 잘못했다’ ‘내가 못났다’ ‘내가 문제다’라는 생각이 들 때 괴롭다. 자존감도 손상되고 자신감도 떨어진다. 내가 무너질 거 같다. 그래서 나는 문제없다고, 나는 괜찮다고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방어기제는 나의 불안을 안정시키고 내 자존감을 지키는 자동 시스템이다.

그런데 내 마음을 지켜준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나에게 이로운 긍정적인 방어기제도 있지만 오히려 내게 해가 되는 부정적인 방어기제도 있다.
가장 좋은 방어기제는 ‘승화’다. 사람들이 손가락질할 수 있는 나의 단점을 세상 사람이 인정해 주는 결과로 만드는 것이다. 공격성이 강한 남성이 유능한 격투기 선수가 되고, 자신의 강한 성적 욕구를 뛰어난 예술품으로 만들어 내는 것을 모두 승화라고 할 수 있다. 또 다른 긍정적인 방어기제의 하나가 ‘보상’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라는 말처럼 자기 약점을 보충하기 위해서 다른 능력을 키우는 것이다. 학벌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남보다 더 열심히 일하려는 심리도 보상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방어기제도 있지만 안 좋은 방어기제도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부정적인 방어기제가 ‘투사’다. 남 탓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건 너 때문이야’ 하면서 내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다. 선거에서 진 이유를 상대방의 흑색선전 탓이라고 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매일 술 마시는 이유를 바가지 긁는 아내 때문이라고 한다.
또 다른 안 좋은 방어기제로 ‘합리화’가 있다. 자기의 문제 행동에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선거기간이 충분하지 못해서 인지도를 높일 기회가 적었다느니 선거 자금이 적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느니 하면서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 알코올 중독자가 자기는 술 마시고 싶지 않은데 사업상 회식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술 마시는 것이라고 한다.
가장 병적인 방어기제는 ‘부정’이다. 아예 인정을 안 하는 것이다. 선거에서 패배하고도 이 정도 표 차이면 이긴 것과 다름없다고 만족해한다. 알코올 중독자가 나처럼 술 마시는 사람이 많다면서 자기는 알코올 중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좋은 방어기제는 나를 안정시키고 성장시킬 수 있다. 하지만 부정적인 방어기제는 당장은 마음 편할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나에게 피해를 준다. 투사, 합리화, 부정은 구렁텅이에 빠져있으면서 귀 막고 눈 감고 자기는 문제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마음은 편할지 모르지만 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부정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려는 순간,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실패했다면, 나에게 문제가 있다면 인정하고 아파해야 한다. 아파야 원인을 찾고 치료할 수 있다. 성찰하고 인정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어기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