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2월 27일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 해상 풍력 보급 촉진 및 산업 육성에 관한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같은 날 약간의 시차를 두고 통과된 에너지 3법의 인연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국회 문턱을 나서 법제처에 다다른 에너지 3법은 3월 25일 같은 날에 공포되었다.
고준위 특별법은 ‘법률 제20843호’, 전력망 특별법은 ‘법률 제20844호’, 해상 풍력 특별법은 ‘법률 제20845호’로 같은 날 관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에너지 3법 제정은 에너지 법제의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세 가지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고 할 것이다.

1│특별법이 일상화되는 시대
에너지 법제는 1950년 대한석탄공사법과 1951년 광업법이 제정되면서 그 계보가 시작되었고, 1961년 전기사업법이 제정과 함께 전기·석유·가스·재생에너지 등 본격적인 에너지원별 개별법의 시대가 열렸다. 작년 6월 분산에너지 활성화 특별법이 탄생하기 전까지는 에너지 분야에 이렇다 할 특별법이 없었다. 에너지산업융복합단지 특별법이 있지만, 에너지의 생산, 전환, 수송, 판매 등과 직결된 규범이 아닌 산업 육성을 위한 지역 지원의 성격이 강한 규범이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이 있지만, 정작 원전의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 필요한 고준위 방폐장을 위한 규범은 아니다.
그러나 에너지 3법이 제정되면서, 전기사업법, 신재생에너지법 등 개별법의 적용이 배제되면서, 특별법을 통해 특례로 취급해야 할 영역이 넓어졌다.
물론 특별법이라는 외관이 법률의 내용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것은 아니고, 소위 ‘특별법의 전성시대’라 불리는 법규범 체계가 일반법을 압도하면서 법체계에 혼란을 초래한다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에너지 요금 문제의 정치 쟁점화, 왜곡된 전력 시장 구도, 전력 수요와 전력 공급의 불일치(mismatch)라는 전력 산업의 고질적인 현상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전력 계통의 포화, 주민 수용성, 산업 경쟁력과 에너지 안보 이슈가 더해지면서, 전력 산업은 단순 접근법으로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되어가고 있다. 전력 산업 생태계 붕괴 직전이라는 위기감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백척간두의 시국에서 일련의 특별법 제정은 어느 정도 예견 가능한 조치이자 골든타임에서 응급 처방이었을지도 모른다.

2│보다 완결된 에너지법 규범을 향해
에너지 3법 제정으로 에너지법은 보다 완결된 법규범 체계를 갖추게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과거 에너지법을 독립된 법규범 체계로 인정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던 시절도 있었다. 분야별로 상당히 촘촘한 규제 시스템을 일찍이 구축한 환경법의 하위 분야로 파악하는 시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에너지원별 또는 정책 분야별 개별법과 기본법, 특별법의 방대하고도 완결된 체계를 갖춘 분야로 성장했다. 2006년 에너지기본법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이 그 위상은 다소 부족했지만, 에너지 분야의 사실상 기본법의 역할을 도맡아 왔다. 에너지기본법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고, 기후변화라는 메타 담론이 글로벌 경제·사회를 지배하면서 2010년 저탄소 녹색 성장 기본법이 배턴을 이어받았다. 최근 탄소 중립이 중심 화두가 되면서, 저탄소 녹색 성장 기본법의 확대 개편으로 2022년부터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법이 에너지법의 맹주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특별법의 등장으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에만 머물렀던 방사성폐기물 관리 체계의 마지막 퍼즐 조각이 맞춰졌다. 국가 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은 국민 경제의 대동맥 역할을 하게 될 간선 송·변전 설비의 적기 건설을 위한 정부 및 한전의 역할에 힘을 실어 주었다. 해상 풍력 특별법은 미래 세대의 에너지원으로 성장하게 될 해상 풍력 보급의 이정표가 될 전망이다. 에너지 3법은 아니지만, 정부의 전기 산업에 대한 지원과 육성 의지를 천명한 전기산업발전기본법도 에너지법규범의 간극을 메우는 중책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3│탄소 중립과 지속 가능성을 위한 담대한 도전
사내 변호사로 약 7년간 몸담았던 한국에너지공단을 떠나 한국전력공사 법무실로 적을 옮기면서, 당시 아직 초등학생이던 딸에게 이직 계획을 알렸다. 이제는 전기를 아껴 쓸 필요 없이 아낌없이 쓰는 것이 좋은지 묻는 딸에게 필자는 그래도 아껴 써야 지구가 좀 더 천천히 병들지 않겠냐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전력 산업은 이미 담대한 도전에 직면해있다. 우리나라가 농어촌 전화 사업과 석탄 및 중유 발전소 건설을 통한 안정적 전력 공급에 여념이 없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중앙 급전 발전기의 열량 단가에 배출권 거래 비용이 반영되는 등 환경성과 지속 가능성이 경제급전의 원리를 수정해 나가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과 발걸음의 속도에는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전력 산업에서 탄소 중립이라는 방향성을 애써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이제 에너지 3법의 제정으로 전력 산업은 탄소 중립이라는 보다 손에 잡히는 이정표를 바라보게 되었다.
반도체 같은 국가 첨단 전략산업의 경쟁력 확보와 대규모 재생에너지 프로젝트의 보급 확산은 대규모 전력망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공허한 목표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 앞으로도 기저 전원의 소임을 다하게 될 원전도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체계가 없다면 지속 가능한 운영이 불가능하다. 제1차 국가 탄소 중립, 녹색 성장 기본 계획과 제11차전력수급기본계획상 무탄소 전원 확대의 가장 핵심적인 이행 수단이 될 해상 풍력은 법정 계획에 따른 정책적 일관성까지 충분히 고려하면서 입지 선정과 개발이 이루어질 것이다.
에너지 3법의 성패는 이제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마련해야 하는 행정부의 몫으로 남겨졌다. 앞으로도 에너지 3법이 전력 산업이 지향하는 담대한 도전의 성공 사례로 계속 회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