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월 28일(이하 현지시각)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마트 직원이 휴대폰 조명을 밝히고 고객의 물품 구매를 돕고 있다(큰 사진). 이날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포함하는 이베리아반도 전역과 스페인과 국경을 맞댄 프랑스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전기로 움직이는 도시 기반 시설 대부분이 멈추면서 수십만 명이 전차·지하철 등에 갇혔고, 도로에선 신호등이 꺼져 큰 혼란이 벌어졌다. 휴대폰과 신용카드 결제는 먹통이 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중심가에서 아름다운 조명으로 밤늦도록 관광객을 맞이하던 세계적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걸작 ‘카사밀라’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혀버렸다(사진 1).
정전은 오후 12시 33분에 갑작스럽게 발생했다. 비행기 이착륙에 차질이 생기면서 이날 포르투갈 리스본의 움베르투 델가두 국제공항에서 승객들이 복도에 주저앉아 운항 재개를 기다리고 있다(사진 2).
아직 대규모 정전 사태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크게 세 가지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 지역의 재생에너지 발전이 순간적으로 과도해지거나 부족해져 전력 시스템 불안으로 정전이 발생했거나, 급격한 기온 변화로 공기 중 활발해진 분자 활동이 전류 흐름을 방해해 송전선에 영향을 줬을 수도 있다. 외부 세력의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거론된다. 스페인 전력망 관리 업체인 레드엘렉트리카(REE) 측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남서부에서 태양광 발전소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는 두 건의 전력 생산 중단 사고를 확인했고, 이로 인해 전력 시스템이 불안정해진 것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정전 사태는 하루 만인 4월 29일 해소됐지만, 스페인 주요 기업 연합회인 CEOE는 이번 정전 사고로 경제적 손실이 약 16억유로(약 2조6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스페인 국내총생산(GDP)의 0.1%에 해당하는 규모다. 하지만 투자은행 RBC는 경제적 손실이 그보다 훨씬 큰 22억5000만~45억유로(약 3조6000억~7조3000억원)에 이를 수 있다고 추정했다. RBC는 스페인 정부가 태양광발전에 의존하면서도 인프라 관리에는 소홀했다고 비판했다. 스페인 전력망 데이터에 따르면, 정전 당시 전력 75% 이상이 재생에너지로 공급됐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그러나 “정전 당시 전력 수요는 적은 편이었고 공급량도 충분했다. 이번 사태는 일상적인 상황에서 발생한 예외적인 사건”이라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