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레이반도를 관통해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랜드브리지(Land Bridge) 프로젝트는 규모가 엄청나고 복합적인 개발 사업인 만큼 건설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한국 기업에 참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최근 한국에 온 수티껫 탓피탁꾼(Suthiket Thatpitak-Kul) 태국 투자청(BOI) 부청장은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사업비 약 40조원 규모의 랜드브리지 프로젝트 관련 한국 기업 참여에 대한 기대를 숨기지 않았다.
미·중 갈등의 전방위 확산은 7억 인구의 거대 시장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소속 국가에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다. 트럼프 1기(2017~2020년) 정부 시절부터 중국산 제품에 부과된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중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은 물론 중국 기업도 아세안 시장으로 생산 기지를 이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 상무부에 따르면, 아세안 제조업으로 유입된 외국인직접투자(FDI) 가운데 중국 자본 규모는 2018년 45억달러(약 6조3855억원)에서 2023년 91억달러(약 12조9129억원)로 급증했다. 그중에서도 아세안에서 인도네시아에 이은 역내 2위 경제 대국인 태국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 있다는 지리적 장점을 십분 활용해 전기자동차와 데이터센터 등을 중심으로 FDI가 최근 몇 년간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2024년 태국의 FDI는 245억달러(약 34조7655억원)로, 전년 대비 25% 늘었다. 특히 한국은 지난 5년간(2020~2024년) 태국에 140건 이상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총 18억달러(약 2조5542억원) 이상을 투자했다. 전기·전자, 의료, 기계· 자동차순으로 투자 규모가 컸다.
탓피탁꾼 부청장은 “한국 제품 품질은 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한다. 차세대 자동차 산업과 스마트 가전, 의료 등 BOI가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투자 유치 분야는 예외 없이 한국에 강점이 있다”며 양국 협력에 기대를 표했다.
BOI는 1966년 설립한 태국 총리실 산하 기관이다. 본부는 수도 방콕에 있고, 서울·뉴욕·베이징·파리·도쿄·프랑크푸르트·시드니·타이베이 등에서 해외 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서울사무소는 2009년 업무를 시작했다. 한국에 투자하는 태국 투자자와 태국에 투자하는 한국 투자자를 양방향으로 돕는다. 탓피탁꾼 부청장을 4월 22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탓피탁꾼 부청장은 주한 태국대사관이 4월 22~23일 주최한 ‘이그나이트 한·태 경제협력 포럼(IGNITE Thai-land-Korea Business Forum)’ 참석차 방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태국의 투자 매력은 무엇인가.
“태국은 중국·인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원재료 수급 등에 유리하다. 역내 2위 경제 대국이면서 인구가 약 7000만 명으로, 구매력도 상당하다. 국경 지역 투자 활성화를 위해 태국 정부는 10개 특별 경제구역(SEZ· Special Economic Zone)을 조성해 운영 중이다. SEZ에 진출한 업체를 포함해 BOI가 승인한 사업에 참여하는 해외 기업과 투자자는 산업군에 따라 최대 13년 동안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그 밖에 한국 기업과 자본 유치를 늘리기 위한 BOI의 노력 소개 부탁한다.
“친환경 기술을 도입하거나 태국인을 고용할 경우 인센티브를 지급하는 식으로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 투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투자 관련 문제와 장애물을 해결하고 경쟁력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태국의 다른 정부 기관과 폭넓게 협력한다. 태국의 대기업, 중소기업과 외국인 투자자를 연결(매칭)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태국에 이미 진출한 한국 기업이 계속해서 원활하게 사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세미나도 개최한다. 새로운 한국 기업이 태국에 오면 기존 한국 기업과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할 수 있다.”
한국 기업이 아세안 시장 진출 교두보로 태국에 우선 진출하는 건 좋은 전략일까.
“해외 투자 시에 투자 환경은 물론 생활환경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특히 가족이 함께 해외 생활을 할 경우 그런 부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태국은 아세안의 다른 나라에 비해 쇼핑과 스파·마사지 시설, 골프장 등 여가 시설이 잘 갖춰져 있다. 국제학교의 경우 교육 수준이 높으면서도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에 비해 학비가 저렴하다. 여러모로 아이를 키우며 지내기 좋은 환경이다.”
태국의 경제협력·투자 파트너로서 한국과 한국 기업을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 제품의 품질은 태국은 물론 전 세계가 인정한다. 삼성과 LG, 현대차 등 한국의주요 기업은 이미 태국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태국과 비슷하게 1980년대 초부터 본격적으로 경제성장을 시작했고,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는 점에서 태국은 한국을 통해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 차세대 자동차 산업과 스마트 가전, 의료 등 BOI가 특별히 공을 들이고 있는 투자 유치 분야는 예외 없이 한국에 강점이 있다. 한국과 태국이 다양한 분야에서 ‘윈윈 협력’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처음 태국에 진출하는 한국 기업이나 투자자에게 조언을 한다면.
“태국에 진출해 회사나 공장을 세울 때 용도에 맞는 토지를 구입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주거용이나 농경지로만 허용된 토지를 공장을 짓기 위해 구입하면 낭패를 볼 수밖에 없다. 산업단지에 입주하면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방지할 수 있다. 또한 태국에서는 지역사회, 환경과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지인을 직원으로 고용하면 도움 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관련해서 소개할 만한 현지 진출 한국 기업의 사례가 있는지.
“화장품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 코스맥스가 3월 27일 태국 방플리에서 신공장 기공식을 진행했는데, 지역 주민을 초청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지역 주민은 코스맥스가 현지 문화에 깊은 관심을 보인 것과 이경수 회장이 직접 참여한 것에 좋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1992년 설립된 코스맥스는 전 세계 화장품 ODM 1위 업체다. 2024년 매출 2조1600억원을 돌파하며 업계 최초로 2조원을 넘어섰다. 태국은 아세안 최대 화장품 시장이다. 코트라(KOTR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태국의 화장품 시장 규모는 7억2890만달러(약 1조343억원)로 전년 대비 14.7% 증가했다. 코스맥스는 15억밧(약 642억원)을 투자해 연면적 3만5940㎡ 규모로 신공장을 조성한다. 2026년 9월부터 정식 가동할 예정이다. 공장 가동을 시작하면 코스맥스 태국 법인의 생산능력은 기존 대비 세 배까지 늘어난다.
태국 정부가 추진 중인 랜드브리지 프로젝트를 소개해달라.
“랜드브리지 프로젝트는 말레이반도를 관통해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대규모 복합 운송로 건설 사업이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중하게 접근 중이다. 현실화할 경우 믈라카해협을 우회하는 것보다 운송 시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규모가엄청나고 복합적인 개발 사업인 만큼 건설업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의 한국 기업에 참여 기회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태국 정부는 랜드브리지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36년까지 춤폰과 안다만에 항구를 건설하고, 약 100㎞ 구간을 고속도로와 철도 등으로 연결한다는 계획이다. 랜드브리지를 통하면, 기존 믈라카해협을 활용하는 것과 비교해 시간은 4일, 비용은 약 15%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믈라카해협은 연간 8만5000척 이상의 선박이 통과하는데, 2030년이면 수용 한도를 초과할 것으로 보인다. 랜드브리지를 통해 남부 지역의 농업 생산물과 중부 지역의 해산물 수출이 많이 늘어날 것으로 태국 정부는 기대한다.